배려 1

[스크랩] 만촌동의 하늘....안용태

향기로운 재스민 2012. 7. 7. 06:33

안용태

 

 

 

 

 

 

 

맘 여린 사람들이 울 없이 살던

도시 변두리

척박한 땅 일구어

고추도 심고 호박도 심고

발바닥 뜨겁도록 살아 온 나날들,

비 오는 날은

늙은 수양버들 무릎에 앉아 낚시를 했지

월척 한 놈 잡으면 떠나리라

미끼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이십여 년 찌를 지킨 만촌동,

지금은 메꾸어져 공원이 된 연못가에

화석이 된 붕어 가시가 울타리로 자라고

머리에 무스를 바른 개구쟁이 녀석들

덜 익은 호박을 따서 공차길 한다

고추밭을 짓밟고 도심이 한 발씩 물러와

벽돌을 쌓아 담장을 높일 때,

벽과 벽 사이

이웃은 모르는 사람으로 와서

모르는 사람으로 살다 가고

저절로 갇혀 버린 우리 안에서

올려다보는 빠끔한 하늘,

하늘은 깊은 우물처럼 우수에 젖어

거기 우물 속에 빠져 있는 작은 별 하나

만촌동 하늘에 깜박이고 있다

- 시집몽돌(학이사, 2012)

.............................................................

얼마 전 등단 12년 만에 첫 시집 <몽돌>을 낸 안용태 시인의 원래 고향은 성주지만 만촌동에서 수십 년 째 살고 있다. 예로부터 만촌동은 달성하씨, 달성서씨 등이 문호를 차려놓고 학문을 숭상하고 강학에 힘쓴 나머지 생업은 등한시하여 농사철이 되어도 가을걷이 등 늘 이웃마을보다 농사일이 늦어져 인근마을에서 이곳을 늦이라고 불렀던 게 나중 만촌이라는 동네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이 되었다.

지금은 어디에도 그 탱자탱자 하던 옛 사람들의 숨결은 느낄 수 없고 밭뙈기 다닥다닥 늘어서 있던 산비탈엔 알록달록 주택이 줄지어 들어섰고 구릉은 깎이어졌으며 수양버들 늘어졌던 연못은 메꾸어져 공원이 되었다. ‘고추밭을 짓밟고 도심이 한 발씩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면서 벽돌을 쌓아 담장을 높일 때’ ‘벽과 벽 사이 이웃은 모르는 사람으로 와서 모르는 사람으로 살다갔다.

그런 도시 변두리였던 만촌동이 어느새 썩 괜찮은 수성구 안의 한 품위 있는 동네로 자리매김 되었다. 시인 자신도 필경 처음엔 그 변두리 셋방에서부터 둥지를 털었을 터인데, 현재는 반듯한 이층양옥 주인으로, 만촌동의 터줏대감으로 겨운 삶이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고향을 떠나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가 바라보는 만촌동의 원경은 여전히 푸석푸석한 회색빛이다.

벽과 벽 사이에 갇혀 푸 깊은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깊은 우물처럼 우수에 젖어' 있다. 머지않은 고향과 철없을 때의 그 시절을 돌아보자 우물 속에 빠져 있는 작은 별 하나가 눈 안으로 들어온다. 하릴없이 맺힌 눈물이 시인의 가슴을 데우자 만촌동 하늘이 온통 별빛으로 깜박인다. 생이 충전중이다.

권순진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향기로운 쟈스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