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탄불을 갈며/ 홍신선
연탄불을 갈며/ 홍신선
컨테이너 간이함바집 뒤 공터에서
연소 막 끝난 헌 연탄재 치석 떼듯 떼어버리고
윗 것 밑으로 내려놓고
십구공탄 새 것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하나하나 생식기 맞춰 넣고 아궁이 불문 열어두면
머지않아
자웅이체가 서로 받아주고 스며들어
한통속으로 엉겨 붙듯
연탄 두 장 골격으로 활활 타오르리라
둥근 몸피 속속들이 푸른 불길 기어 나와
단세포 목숨처럼 탄구멍마다 솟구치리라 꿈틀대리라
왜 통합이고 통일인가
연탄불 신새벽녘 갈아보면 모처럼 너희도 안다
후끈후끈 단 무솥 안에서
더 요란스럽게 끓어 넘치는
뭇 사설의 뒷모습들.
- 시집『우연을 점찍다』(문학과지성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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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연탄불을 갈아 본 사람이라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처음엔 하루에 한번 연탄불을 갈았지만 정부에서 서민 물가부담을 고려해 탄값을 인상해주지 않자 연탄 회사에서는 탄의 구멍을 더 뚫고 석탄의 함량을 줄여 나중엔 하루에 두 번 이상 갈아야만 했다. 한겨울 연탄 가는 일은 어느 집에서나 매우 중요한 일과로, 때를 놓쳐 꺼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옆집에서 종자불을 빌려 오거나 번개탄을 피워놓고 부채질을 하는 등 한바탕 수선을 떨어야했다. 당시 우리 지역의 대표적 브랜드가 ‘대성연탄’으로 이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캠프의 선대위원장으로 활약한 김성주씨 부친이 경영하는 연탄공장이었다.
이 시는 그 시절 불구멍을 맞추려고 끙끙대던 일, 딱 달라붙은 윗 불과 다 탄 연탄재를 분리하기 위해 삽으로 탁탁 쳐 내던 일, 꺼진 연탄불을 급하게 붙이기 위해 한겨울에 찢어진 부채를 열나게 부치던 일 따위를 추억하게 할 뿐 아니라, ‘십구공탄’ ‘생식기’ ‘불문’ ‘자웅이체’ ‘한통속’ ‘엉겨 붙듯’ ‘후끈후끈’ 등의 시어에서 사뭇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연상케 하는데 조금은 외설적이기 까지 하다. 구멍 맞추는 일이 사실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보다는 일단 한번 붙고 나면 뭉근하게 타오르는 그 불길로 아랫목이 뜨끈하게 데워지는 그 온돌방이 좋았고 그립다.
그런데 생뚱맞게 ‘통합’과 ‘통일’은 무엇인가. 연탄 두 개가 뜨겁게 들어붙는 그 과정과 현상을 통합으로 은유할 수 있겠으나 ‘야합’이나 ‘화간’을 갖다 붙여도 할 말은 없겠다. 때가 때인지라 여야 정치권에서 그간 숱하게 내뱉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대통령 당선인께서도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국민의 마음을 통합해야 하는 과제가 가장 시급하다며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화해와 탕평으로 풀겠다고 강조했다. 이제 곧 대통령직인수위가 가동될 것이고 인선은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전문성과 적합성의 고려 없이 덮어놓고 상징적인 인물이나 특정지역의 인사를 내세울 것은 아니라고 본다.
‘탕평’은 영조와 정조가 당쟁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당파 간의 정치 세력에 균형을 꾀하던 정책이다. 친소에 휘둘리지 않고 늘 공정하고 공평한 탕평의 정치를 염두에 두었는데, 우리가 대통령당선인에게 잘 하리라 믿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그 대목이다. 영조가 즐겼던 ‘탕평채(蕩平菜)’란 음식이 있다. 청포묵에 고기와 나물을 섞어 무친 탕평채를 신하들에게 내놓으며, 여러 가지를 함께 먹으니 맛이 조화를 이루듯, 조정도 여러 당파가 함께 참가하여 조화를 이루어야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인사는 능력은 물론 청렴하고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분이 많이 선임되어 잡탕이 아닌 진정한 탕평채 같은 맛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