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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즈마 캐피탈/ 송기영

향기로운 재스민 2013. 1. 29. 15:55

 

 

오즈마 캐피탈/ 송기영

 

그 별에는 수십억의 얼굴이 살아요. 모두 백 년 안팎으로 모인 얼굴인데, 살아요. 머리맡에는 흙으로 만든 태양이 쟁글쟁글 얼굴을 달구고요. 입들은 모두 빵 굽기에 알맞은 온도로 벌어져 있어요. 탐스런 구두끈을 당기면 중력이 조금씩 준다던가요. 흘린 땀이 당신을 지우는 일이 없어서, 산다던가요. 그래요, 왜 사지 못하겠어요. 그게 뭐든 동글납작 부푸는 시공을 지나, 한번 만나요. 살 수만 있다면

이 별에도 수십억의 얼굴들이 서로의 표정을 배우며 살아요. 해 아래 새로운 목숨을 빚은 건지 빚진 건지 몰라도, 살아요. 똑같은 얼굴을 서로 돌려 막으며 오늘도 해가 지네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 경매로 낙찰받은 달에다가 나를 심었어요. 다만 그게 무엇의 얼굴인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해요.

 

- 시집『별은 시를 찾아온다』(민음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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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2009년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그 기념으로 별과 우주에 대해서 노래한 50편의 시를 모아 엮은 시집 가운데 한 작품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50명의 시인 모두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가 쏘아 올려진 1957년 이후 출생자라고 한다. 여기 실린 시들은 ‘자연과학과 시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들이라지만, 내 보기에 과학이나 우주와는 별 상관없이 단지 ‘별’이니 ‘달’이니 하는 시어 한 두 개 포함된 인연으로 수록된 시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그런 가운데 ‘오즈마 캐피탈’은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비교적 충실하게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담은 작품이라 하겠다.

 

 우주를 광활한 바다라고 가정한다면 수십억의 얼굴이 살아가는 지구별은 독도 옆에 삐죽 솟은 돌멩이 바위보다도 작은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의 ‘입들은 모두 빵 굽기에 알맞은 온도로 벌어져 있’고, ‘탐스런 구두끈을 당기면’서 중력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우리 인류의 모습이다.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쳐 잠시 그 기능이 마비될까 싶어 정확한 비유를 삼갔지만, 사실 우리는 해운대 백사장의 모래알보다 더 작은 태양계속에 있으며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서 무려 25,000광년 이상 떨어져 있다.

 

 인류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채 100년이 못된다. 우주는 시간이 흐르면서 팽창에 팽창을 거듭해 140억 년이 흘렀고 빅뱅을 통해 광대한 크기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 우주에 정말 우리밖에 없는 걸까?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트가 한 말처럼 ‘이 거대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는 것은 공간의 낭비’가 아닌가. 인류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해오는 동안 저 광활한 우주를 쳐다보고 늘 품어왔던 의문이며 호기심이다. 누군가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고 막연한 느낌을 가졌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구체적인 몸부림은 1960년에야 시작되었다.

 

 미국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기 위해 우주로 전파를 쏘아 올리면서부터였고, 그 프로젝트에 붙인 이름이 오즈마(Ozma)다. 마치 병속에 편지를 담아 바다 한 가운데로 띄어 보내듯이. 그 계획은 실패였으나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 뒤에도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시공을 지나, 한번 만나요’라며 프러포즈는 이어졌다. 우주적 질서기준으로 ‘나로호’ 발사는 손바닥 위에서 공깃돌을 던져 올리는 것처럼 미약한 몸짓이지만, ‘똑같은 얼굴을 서로 돌려 막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외계지적문명을 향한 작은 손짓이기도 하다.

 

 

권순진

 

 

When you wish upon a star-Olivia Newton John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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