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錦江)이 되어 흐른다/김순진
금강(錦江)이 되어 흐른다/김순진
이른 아침 금강 강가로 내려가 강을 바라본다
처음 세상이 열리고 강은 저 멀리 보이는 산처럼 흐르기 시작하
였으리 산이 우리에게 군불을 넣어 따뜻이 안아준 것처럼 어미가
젖을 주듯 그렇게 풍만한 유방을 꺼내 우리를 먹였으리 단 한 번의
손찌검도 없이 우리를 키웠으리 그래도 우리는 젖을 빨면서도 머리통으로
어미의 젖을 들이받는 송아지처럼 앙탈을 부렸으리 아비의
핏물이 녹아든 줄도 모르고 풀빵구리에 쥐 드나들듯 드나들며 퍼가고
빨래를 하며 그 강에서 멱을 감았으리 혈관을 터 곡식을 키우고
그러면서도 고마움을 모르고 거기에 뛰어들어 물고기 밥이 되고
여보게 저 강을 강이라 부르지 말게 여느 강처럼 강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거룩해 오, 당신의 물길에 젖어드는 한반도의 오르가슴이여
저 강은 강이 아니라 그냥 흐르는 '걍'일세. 아파도 흐르고 즐거워도
흐르는 저 강을 좀 바라봐 수천억만 마리의 물고기와 풀랑크톤처럼
차마 셀 수 없는 어느 잣대로도 깊이를 잴 수 없는 어느 바가지로도
퍼낼 수 없는 사연으로 궐기하며 덤벼드는 세월의 소용돌이를
애써 고요와 수평의 의지로 흐르지 않나
누에고치가 그 작은 몸짓으로 일곱 번의 잠을 설치며 비단실을
뽑아낸다는데 우리 한반도는 몇 번의 잠을 설쳤던가? 설친 잠의
수만큼 아름답기에 비단이 강〔錦江〕이라네 누에가 한마리가 천오백여
미터의 비단을 짜낸 것만큼 대대로 수억의 사람들에서 나온
수천억 갈래의 사연이 모여 이룬 비단의 강이라네 장수에서 발원하여
군산으로 흘러들도록 머리카락에서 발톱까지 시시콜콜〔細細骨骨〕
아우르며 '어화둥둥 내 사랑' 사랑가를 불러대는 비단의 강이라네
강이 우는 걸 보았나? '그까짓 낚싯바늘 몇 개쯤 드리우는 것쯤이야,
그까짓 오물 조금 떠내려 보내는 것쯤이야'라며 우리는 강을
이유 없이 해하지만 강은 그냥 웃지 아무 말 없이 바라보지 오히려
떡 하나 더 준다며 그네들의 농토에 물을 대주지 밤새 아우성치는
혼귀魂鬼들을 자중시키고 다독이며 자장가를 불러 재워놓고 새벽이
되면 머리에 지진이 날 것처럼 악이 받쳐 강은 소리 없이 울지
임진왜란을 동학농민운동을 일제강점기를 육이오를 견디며 얼마나
울었겠나 얼마나 악이 받치겠나 나는 이제야 그 차가운 강도 열을
받는 다는 걸 알았네 아,너무나 약이 올라 피어오르는 저 안개 좀봐
김이 퐁퐁 나네
이른 아침 금강 강가로 내려가 강을 바라본다 저 백여 미터 넓이로
천리 길을 달려오면서 어느 자식 하나 어느 동생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데리고 오는 포용! 말하지 않고 몸소 흐르며 자중하는 슬기!
그 많은 삶의 소용돌이를 다독이며 평면을 유지하는 평정심! 부모에
대하여 스승에 대하여 조국에 대하여 절대 그스르지 않는 거룩한
복종! 아, 눈물이 난다 오, 미천한 나의 눈물이여!
이른 아침 금강가로 내려가 나는 처음으로 금강이 되어 흐른다
이제부터 거역하지 않고 흐른다 유순한 양으로 주는 젖 받아먹으며
*관찰발상법 강의중에서.....
2013. 05. 07 향기로운 재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