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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걸림돌/ 공광규

향기로운 재스민 2014. 3. 28. 21:00

 

 

 

걸림돌/ 공광규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 되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 계간『황해문학』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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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스님의 저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이면서 속된 표현으로 출세작이 수필집 <무소유>이다. 그 무소유의 표제작은 4년 전 스님이 입적했을 당시 조문을 간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아는 체 하며 언급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 글은 스님께서 난초 두 화분을 기르셨는데 좋은 난을 기르기 위해서 노심초사 집착하면서 외출을 해도 그것에 신경이 쓰여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없었다며 결국 그것을 누군가에게 줘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말씀을 잇는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다.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흔히 들어왔던 ‘행복은 느끼는 자의 몫’이란 말과도 통한다.

 

 특히 부족하고 덜 가진 자에게 유용한 잠언이긴 하지만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래서 가진 자는 좀 더 겸손하고 덜 가진 자는 좀 더 당당할 수 있어야 세상은 큰 틈이 없이 삐걱거리지 않고 돌아간다. 개인의 가치관과 도덕성의 문제지만 사실 국가가 그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해주어야 한다. “모자라고 텅 빈 그 속에서 넉넉한 충만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스님의 ‘텅 빈 충만’의 말씀이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말과 함께 예리하게 박힌다. 사람 하나 더 거두는 것이 수행자로서는 일상의 불편보다 더 감내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중생들에게 가족이란 내 안의 필연이어서 ‘처자식’은 걸림돌이 아니라 나를 풍성하게 존재케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며, 디딤돌이 되어 저 아래로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는 것이다.

 

 ‘덜 되먹은 후배 놈’은 처자식만 없으면 날개라도 달 것처럼 호언하며 푸념하지만 그 ‘걸림돌’ 때문에 그나마 지금껏 큰 화 없이 무탈했을지도 모른다. 부양할 처자식으로 인해 삶이 진지해지는 것이고 방만하게 뻗어가려는 원심력을 제어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장미, 희경이 엄마, 지연이 엄마와 함께 다시 보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