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만춘(晩春)의 날
산돌배 조성구
아무도 차마 마주칠 수 없는 곳으로
하루쯤은 메마르도록 쉬고 싶은 날
그 바닷가에는
억울하게 속 뺏긴 고동이 엎어 훌쩍거리고
아직은 겨울 음지의 수행으로
직립하지 못한 갈대들
바람의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있다
관계에 관계를 덧칠하고픈 여심
봄 바다 찾아온 여인이
역광에 부드러운 저녁 빛,
물기슭 아래 핀 해(海)나리
손품 가득 노을꽃을 쥐고 있었다
현실 속 환상을 휘저어
미혹한 은둔의 사랑을 찿아냈는지
지금껏 섬기던 꽃잎을 떨구어 버렸다
해 부름에 돋아난 풀꽃 사이사이
둥근 돌멩이 밑으로 봄물이 지나갔다
막 뭍에서 내려온 이팝 꽃향내가
여린 눈주름 위 기억 속으로 들어가더니
미소를 되물고 나온 것은 사과향이다
그날엔
고깃배 고동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뉘엿한 하늘엔
어느새 별들 곱게 자리를 잡고
손 놓으면 쓸려갈 듯 들썩거리던 해조음
해녘 내 아쉬움을 귓전에 담고 있었다
어느 만춘의 날
아무도 차마 마주칠 수 없는 곳 벤취엔
누가 놓고 갔는지
돌모스 한 송이 놓여 있다
2012.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