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넘기신 언니가 땅거미 그물 헤집고 들기름 한 병 마구설기 네 덩이 단단히 영근 조선배추뿌리 열댓 개를 낡은 유모차에 의지해 싣고 오셨다 귀먹고 허리 아파 코가 땅에 닿는 노파가 집성촌 사돈마을 사돈에 팔촌까지 존댓말로 공대하는 분이 내 언니여서 하루 내내 흙 밭에서 뒹구는 언니여서 또래 노인들 모이면 밥해주시는 언니가 병원도 마다하고 누워 있는 언니라서 밥맛없다고 막걸리만 드시는 언니라서 열다서 살 나이테 더 감으신 맏언니에게 열다서 살이나 어린 동생이 괜히 열불이 나서 상거지가 따로 없다고 구박하고 아프면 병원 가라고 면박 주고 밭일하지 말라고 타박하며 저렇게 고생하시느니 편히 하느님께 가시라고 마음속 고해성사를 올리는 독하고 모진 피붙이 동생에게 -죽는 날이 내 날인데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