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

[스크랩] 일 년 중 그때/ 윌리엄 섹스피어

향기로운 재스민 2012. 6. 28. 04:46

 

 

 

일 년 중 그때/ 윌리엄 섹스피어

 

그대 내게서 이런 때를 보리라.

한 때는 달콤한 새들이 노래했지만,

지금은 앙상한 저 합창단, 나뭇가지에

누렁잎 몇 개 매달려 있는 그런 때를.

그대 내게서 이런 노을을 보리라.

일몰의 저녁 하늘에 물든 노을을,

죽음 속에 모든 걸 감출 죽음의 검은 밤이

언젠가는 빼앗아갈 그런 노을을.

그대 내게서 이런 꺼지다 만 불씨를 보리라.

태워버린 젊음을 주검삼아 누워있는 그런 불씨를,

생명의 젖줄이 다하는 날

임종의 자리에서 꺼져갈 그런 불씨를.

그대 이런 걸 깨달을 때, 사랑 더 강해져

버리고 떠날 모든 것을 힘껏 사랑하리라.

 

― 섹스피어 <소네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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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대문호 섹스피어는 극작가로 더 잘 알려졌지만 적지 않은 시도 남겼다. ‘사랑은 시간의 놀림감이 아니니라. 장밋빛 입술과 뺨은 시간의 굽어진 낫에 베어지더라도 사랑은 시간의 짧은 일월에 변치 아니 하고 최후 심판의 날까지 존속하리라‘며 사랑의 영원성을 강조한 소네트는 유명하다. 그는 시를 쓰고 사랑을 하는 것이 다 그러한 신봉에 바탕 된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것이 틀린 말이고 그렇게 증명된다면 나는 애당초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고,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으리라’는 단호함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사랑의 영원성에 대한 환상과 믿음을 오랫동안 지녀왔지만 사랑의 현주소는 늘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위치해 왔다. 그렇게 붙들어 매지 못할 사랑이기에 지금껏 사랑시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비극은 현실과 이상이 분리되어 구체적인 삶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시작된다. 이 시는 섹스피어의 애틋한 사랑과 고뇌를 애잔한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 사랑과 죽음에 접근하며 늙어가는 보편적인 인간의 비극에 연루되어 있다. 프랑스 시인 랭보가 영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쓰면서 ‘상처 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며 사랑의 벌거벗은 모습을 꿰뚫어 보았듯이.

 

 ‘그대 내게서 이런 꺼지다 만 불씨를 보리라.’ 오래전 죽음의 문턱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의 사형수가 생각난다. 물론 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사랑 이야기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상을 증오하며 죽는 날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세 차례나 자살을 기도한 대학 강사의 가슴 절절한 사랑은 ‘임종의 자리에서 꺼져갈 그런 불씨’였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살아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고 ‘버리고 떠날 모든 것’까지도 ‘힘껏 사랑’하게 만든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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