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

화병/김기주

향기로운 재스민 2013. 1. 1. 20:20

 

 

 

화병      한국 경제  시 당선작

 

김기주

 

 

절간 소반 위에 놓여 있는

금이 간 화병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물을 더 부어 봐도

화병을 쥐고 흔들어 봐도

물은 천천히, 이게

꽃이 피는 속도라는 듯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아무  일 없는 외진 방안

잠시 핀 꽃잎을 바라보느라

탁자 위에 생긴 작은 웅덩이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꽃잎보다 키를 낮출 수 없는지

뿌리를 보려하지 않았다

 

 

 

한 쪽 귀퉁이가 닳은 색 바랜 소반만이

길 잃은 물방울들을 돕고 있었다

서로 붙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물방울들에게,

가두지 않고도 높이를 갖는 법을

모나지 않게 모이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릎보다 낮은 곳

달빛 같은 동자승의 얼굴이

오래도 머물다 간다

 

 

 

 

2013. 01. 01     청년 신춘 문예  - 시

 

 

김기주 :  "앞으로 100명이 한 번 읽는 시보다  1명이라도 100번을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4학년  심사위원(신경림 최승호 김기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