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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름다운 책/ 공광규

향기로운 재스민 2013. 4. 27. 07:05

 

 

아름다운 책/ 공광규

 

어느 해 나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책상이 아니라 식당에서 등산로에서 영화관에서 노래방에서 찻집에서

잡지 같은 사람을

소설 같은 사람을

시집 같은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겼다

아름다운 표지와 내용을 가진 책이었다

체온이 묻어나는 책장을

눈으로 읽고

혀로 넘기고

두 발로 밑줄을 그었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이 아닐 것이다

 

사람, 참 아름다운 책 한 권

 

- 계간 <문학나무> 201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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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말입니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렇듯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만이 아닌’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겨 읽음으로써 ‘참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 관심과 사랑 없이는 불가합니다. 여기서도 알면 보이고, 보이면 느끼게 되고, 느끼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통하지요. 사람을 쓱 한번 보고 건성으로 악수하고 곧장 데면데면 모드로 들면 사람을 알 재간이 없습니다. 누구든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관심이나 흥미, 매력 따위가 깜박거려야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내게 별 볼일 없어’ ‘이 사람 알아봤자 내게 덕 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이렇게 속단하고 말면 책의 겉표지가 열리는 건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사람만이 아닙니다. 고영민 시인의 ‘독서’란 시에서는 하늘에서 나무에서도 책을 빌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귀뚜라미에게서도 둥근 애기무덤에게도 책을 빌린다고 했습니다. 그것들이 늘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들이라 합니다. 돌무더기에서 젖은 돌을 골라 책장을 눌러놓고 깜박 잠이 들기도 한답니다. 빗소리에 깨어 돌을 치우고 다시 애기무덤을 꺼내 읽기도 하고요. 그렇게 사람이나 자연 그 어떤 대상도 경전이 되며 책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그냥 받아 적어 시를 쓴다는 시인들도 여럿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일찍이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입니다. 배우기만 하고 도통 사유하지 않는 것도 멍청한 일이지만, 배움을 통한 새로움의 유입 없이 생각만 한다면 그 역시 공허해지고 한계에 부딪히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새로움의 유입이 없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며, 그 독서는 반드시 책을 통해 얻어지리라 믿습니다. 이론적 공부와 경험적 사고가 조화되지 않고는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지 않으며, 진정한 사람과 자연 읽기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입니다. 스페인의 까탈루니아 지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의 날’에서 유래된 이날은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되어 올해 19회째를 맞이합니다. 또한 이 날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기도 합니다. 책의 날을 맞아 모처럼 서점 나들이를 한번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소중한 사람에게 꽃과 함께 책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입니다.

 

 

권순진

 

 April come she will- Simon & Garfunkel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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