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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계급의 발견 / 류근

향기로운 재스민 2013. 9. 24. 21:25

 

계급의 발견 / 류근
술이 있을 때 견디지 못하고
잽싸게 마시는 놈들은 평민이다
잽싸게 취해서
기어코 속내를 들켜버리는 놈들은 천민이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술 한 잔을 다 비워내지 않는 놈들은
지극히 상전이거나 노예다
맘 놓고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놈들은
권력자다
한 놈은 반드시 사회를 보고
한두 놈은 반드시 연설을 하고
한두 놈은 반드시 무게를 잡고
한두 놈은 반드시 무게를 잰다
한두 놈은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한다
슬슬 곁눈질로 겉돌다가 마침내
하필이면 천민과 시비를 붙는 일로
권력자의 눈 밖에 나는 비극을 초래한다
어디에나 부적응자는 있는 법이다
한두 놈은 군림하려 한다
술이 그에게 맹견 같은 용기를 부여했으니
말할 때마다 컹컹, 짖는 소리가 난다
끝까지 앉아 있는 놈들은 평민이다
누워 있거나 멀찍이 서성거리는 놈들은 천민이다
먼저 사라지는 놈들은 지극한 상전이거나 노예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 가지도 않은 놈은
권력자다
그가 다 지켜보고 있다 
- 시집『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사, 2010)

탈무드에는 "악마가 인간을 찾아가기가 너무 바쁠 때 술을 대신 보냈다"고 하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술에 관한 우호적인 말도 무수히 많다. 술은 건강에 해롭다고들 하지만

정말 한두 잔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겠다고 말하는 시인은 자타가 수긍하는

술꾼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몇 달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모아 산문집을 펴냈는데,

기록들에 의하면 술에 관한한 시인은 술꾼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무수한 일탈의 스펙들을

쌓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가 관찰한 술자리에서의 계급이 흥미롭다.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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