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귀(未歸) 산돌배 조성구
상처난 저녁 붉은 피가 흐르듯
어머니 엎드려 있던 땅 자락 서녘 하늘은
노을을 한껏 들이키고야 별이 돋았네
물이끼 돌 징검다리 짚어 건너던
흰 수건 머리 위, 됫박 보리쌀 자루 너머로
어긋난 세상, 미풍진 푸념이 흔들릴 때
어둠의 시작 한 단(湍)에는 작은 유년이 있었네
울 섶 귀뚤소리 시작되는 저녁 두레상
일미(逸味)라 젖혀 놓는 어미 마음결을 모르는 듯
몸통 꼬리는 노친, 새끼들의 놋수저에 잡히고
멀뚱거리던 생선머리 눈알만 맥없이 누워 있었네
어느 지상의 날에도
고운 주름 펴 드릴새 없이
스스로 종일의 아픔을 밤 신음으로 처방시켜도
이마를 동여 맨 뗄 수 없는 가난의 끈
아, 오늘 -
가을이 채 오기 전 산마루 딛고 오른 별
촘촘한 벼포기 사이 메뚜기 숨던 다락논,
곱기만 한 들판 ...
채색할 물감찾아 생각의 붓 마구 갈겨댄
유채색 풍경 똑 닮은 추억이 나를 이끄네
천둥이 몰려 사는 먹장 하늘, 비는 내리고
예감이 맞아 멀어져간 날들
엷은 파문에 번져 드는 그리움에 오돌 떨던 날이
왜 그리운 것인지 조차 묻는 것도 잊었네
부챗살 펴진 산노을이 그것을 짐작하고 있을 뿐
그것은 또다른 떠남의 시작이었네
돌아선 길은 휘어져
새벽 안개 회오리 일던 언덕 좁은 신작로
차는 떠나는데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물고
매미 고함치던 갈나무 가지마다 엔
연민을 헹구어
지워져간 빈 하늘만 오도카니 ...
오늘도 이냥 그대로
등불이 골목 아래를 쳐다보고 있을 때
아늑한 다락방 한 구석엔
뒹구는 낡은 시집 한 권이 울고 있네
20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