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영혼의 합일을 꿈꾸는 지리산 시인
권순진
도연명 이래 번잡한 도회를 떠나 초야에서 자연을 벗 삼아 시 쓰기에 몰두한 시인들이 적지 않다. 도연명은 29세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하다가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관직을 관두고 낙향해 시 짓기로 일관한 삶을 살다 63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를 두고 중국문학사를 통 털어 가장 조화롭고 담백하며 순리적인 삶을 살다간 시인이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생 동안 그의 대표작 ‘귀거래사’를 포함 일백 여 편의 시와 열한 편의 산문이 남아있는 정도지만 오늘날까지도 도연명은 전원시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를 얼핏 은둔자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세상을 등지고 도피한 은둔자는 아니었다. 그가 정작 기피하고 외면했던 것은 현실의 답답하고 혼탁한 정치와 어지러운 사회였지 인생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관직을 그만둔 뒤에도 여러 번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땀 흘려 부지런히 농사짓고 자연과 벗하며 천하의 근본인 땅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기를 원하였고 또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작품 또한 세속의 티끌을 벗어나 모나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구속됨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를 노래한 것들이어서 전원의 삶에서 우러나온 심성과 심상의 산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인에게 있어 어디에 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는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이며, 이는 창작의식이나 가치관과 결부되어 작품에 절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삶의 거처는 자기 동일성이 형성되는 실존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날에도 흙냄새를 맡으며 전원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다. 물론 그 가운데는 예술인과 시인들도 적지 않다. 갖출 것 다 갖추고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즐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소박하게 두어 평 텃밭을 가꾸면서 자연과 더불어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맨땅에 머리 박는 각오로 돌연 깊숙한 자연의 품으로 들어와 안긴 ‘자연인’도 종종 목격한다.
그러나 가야지, 돌아가야지 마음속으로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로 도회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아이들 교육이 걸리고, 자식들 출가 시킨 뒤에 보자며 기약 없이 밀쳐두고, 팔다리 힘 빠진 늘그막엔 고생길이 염려되어 물러서고 만다. 막상 결행하자니 용기가 안 나고 세상에 지는 거 같아 다시 망설여지고 가족의 반대로 발목이 붙들린다. 누구라도 비슷한 상황이 없을까만 이원규 시인은 가방 하나 달랑 꾸려 팍팍한 도시의 얽매인 틀을 과감히 박차고나와 지리산과 섬진강의 품으로 스며들었다. IMF 위기 직후인 1998년이었으니 얼마간 세상과의 불화와 환멸도 없진 않았을 터이다.
몇 차례 기회를 엿보았으나 차마 살아계신 어머니를 두고는 못할 짓이다 싶어 미루다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주저 없이 보따리를 쌌다. 지리산으로 찾아든 경위에서부터 도연명과 많이 닮았다. 무위자연 가운데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면서 소유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구가했다. 처음 몇 년은 아무 하는 일 없이 세상에 등 돌린 채 빈둥빈둥 놀기만 했다. 다만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는 법정 스님의 주석에 힙 입어 필요한 몇 가지를 마련했다. 21세기를 사는 시인인지라 노트북 컴퓨터는 있어야겠고 지금은 그의 브랜드가 된 오토바이크와 뒤늦게 장만한 카메라가 그것이다.
덕분에 지리산과 그 둘레의 이곳저곳을 속속들이 누비며 돌아다닐 수 있었겠다. 물과 구름과 바람, 꽃과 나무와 자연스레 ‘절친’이 되었다. 어떠한 흐름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니 그리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가 없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란 나옹선사의 시가 절로 가슴에 와 박혔다. 비로소 도연명이 그러했듯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조화를 분명한 신념으로 각인하였다. 도연명이 꿈꾸었던 무릉도원을 스스로 내면으로부터 조금씩 싹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생활은 시가 되어 지극히 순리적이고 자연적이며 따뜻한 인간의 본성에 바탕을 둔 인류애와 자유를 지향하고 있다.
그의 시 <접사>와 <단 하나의 천수천안> 그리고 <족필> 등은 모두 그러한 자연과의 친화를 주조로 하여 빚어낸 풍경들이다. 그 가운데 <접사>는 당연히 카메라와 부속장비를 갖추고 피사체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야 얻어낼 수 있는 표정이다. 그러자면 자연히 무릎도 꿇고 배를 땅에 붙여 엎드리기도 하였을 것이다. 촉수가 가 닿으면 이미 ‘연리목’이 되었고 ‘엎드려 자세’로 아랫도리의 불알에 압박이 가해질 때는 ‘큰개불알풀’과의 야한 ‘화간’도 성립이 되는 것이다. 비록 ‘100mm 접사렌즈’가 중매를 선 형국이지만 자연과 내가 은밀한 내통으로 하나 되어 짜릿한 영혼의 결합을 경험하는 것이다.
유럽과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큰개불알풀’은 여름에 열리는 열매의 모양이 개의 불알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쪽에 피어나 양지꽃, 노루귀를 닮아서 노루귀, 돌돌 말려 피어난다고 해서 꽃마리이듯이 큰개불알풀이란 민망한 이름도 그리해서 얻은 이름일 따름이다. 큰개불알이 있다면 사이즈가 그보다 더 작은 토종 개불알도 물론 있다. ‘큰개불알풀’과 그냥 ‘개불알풀’ 그리고 ‘변산바람꽃’ 이 모두는 한반도의 봄소식을 맨 먼저 알리는 야생화들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산야에서 자연 상태로 자라는 이들과 우리는 다같이 ‘지구의 둥근 우리에 갇힌 한집살이 씨짐승’들임을 어쩌랴.
봄부터 시작해서 한겨울까지 이 땅에서 피고 지는 들꽃만도 4천여 종이나 된다. ‘바다’라는 낱말이 모든 걸 다 ‘받아’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문학적 재해석이 있듯이 산과 들과 강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꽃들도 마다하지 않’으며, ‘절대로 분별하지 않는다.’ ‘천개의 손 천개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리산은 넓은 품을 가진 어머니의 산이 아닌가. 시인도 말했듯 ‘유정, 무정의 생명체들이 깃들어 살기에 가장 크고 높고 깊은 산’이 바로 지리산인 것이다. 그곳에 봄비라도 올라치면 가녀린 꽃처녀 ‘얼레지’는 온몸이 입이 되어 혀를 내밀고, ‘누군가 살며시 입산하면 꽃송이 통째로 코를 벌름거린다.’
시시때때로 그 상황의 필요에 의해 부위가 확장되어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입이 되고 손이 되기도 한다. 까맣게 잊고 지내서 그렇지 사람도 매한가지다. ‘첫 키스 때는 겨우 혀만 살아있었’고, 어느 땐 귀만 큼지막하게 쫑긋 세웠으며, 눈만 확장되어 전력으로 기능할 때도 있다. 지혜와 자비의 상징인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눈이 천개라 온 몸이 그대로 눈이라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도 된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손이 천개라면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러나 꼭 천 개의 손과 눈이 있어야 ‘천수천안’인 것은 아니다. <단 하나의 천수천안>만으로도 능히 사람의 고통을 살피고 뭇 생명들을 쓰다듬고 보살필 수 있을지니.
‘노숙자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볼 수 없으리’ 지리산으로 찾아들어온 사람치고 풍찬노숙의 삶을 겪어보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지리산의 불문율 또한 은근히 그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루저’가 되어보지 않고는 낮은 곳을 잘 알지 못하며 낮은 곳을 보지 못한다면 풀꽃을 넘볼 수도 없으리. 이름 없이 낮고 질기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민초의 고통을 어찌 살필 것이며, 뭇 생명들의 안위를 염려할 수 있으랴. 하지만 여기서 ‘루저’란 단순한 패배자이거나 불량품의 의미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를 덮어놓고 신뢰하지 않으면서 자본의 질서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편에 선 사람을 뜻한다.
시인은 지난 십여 년간 책상물림이 아니라 순례와 참회의 방식으로 길 위에서 ‘족필’을 써왔다. 길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생을 꿈꿔온 것이다. 실상사의 수경스님과 태백산에서 을숙도까지 낙동강 1300리 길을 도보 순례하였으며, 문규현 신부 등 종교인들과 “무분별한 개발중심주의를 경계하라”는 목소리를 내며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한 바 있다. 그리고 지리산 도보순례, 생명평화탁발순례, 대운하 저지를 위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 4대강 3천리 도보순례 등 걸으면서 몸소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며 깨달았다. 그는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며 낮은 몸가짐의 경청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특히 ‘한 자루 필생의 붓’인 ‘족필’에다 나날이 날개를 달고 있다.
시인이 길에서 만난 인연은 무수히 많다. <죽염처사>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성큼 난바다에서 걸어 나와 지리산 대숲 속으로 사라진 사람’은 서해에서 생산된 천일염 소금을 말한다. 시인은 이렇게 무생물에도 숨결을 불어넣는 활유법을 즐겨 구사한다. 얼핏 생명 없는 것들이라 여기는 무생물까지를 포함하여 모든 생명은 결국 하나라는 인식 때문이다. ‘아홉 번의 다비식’을 치룬 뒤 ‘비로소 흰 뼈에 무위의 그늘이 들어’선 ‘죽염처사’는 유명한 ‘인산죽염’일 것으로 짐작되는데, 소나무 장작불로 여덟 번 제련한 다음 아홉 번째는 송진을 사용하여 고열로 응용시켜 완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참으로 고결한 처사의 염결한 다비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두개골에는 부위별로 많은 명칭의 뼈가 있는데 진짜로 눈물뼈(누골)란 것이 있다. 눈구멍의 안쪽 벽 앞부분에 위치해 있는 이 뼈는 얼굴의 뼈 가운데 가장 작고 잘 깨지는 뼈라고 한다. 하지만 시인은 처음부터 이 눈물뼈를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눈물의 염전’에서 ‘안구건조증’으로 인해 소금기가 굳어 생긴 ‘소금 뼈’를 뜻하였다. 물론 찔릴 만큼의 위협적인 뼈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은 살면서 눈물 흘릴 일에 충분히 누선을 가동시키지 못한 것을 ‘지천명의 벼랑 끝에’ 서서야 탄식한다. 하지만 이 무렵엔 지리산에 들어온 지 10년 만에 만난 사랑스런 아내가 굳건히 곁을 지키고 있었으니 후로는 눈물뼈에 찔리는 일이 그리 빈번하지는 않았으리라.
시 <월하미인>과 <달빛을 깨물다> 그리고 <북극성>은 제목 그대로 달과 별에 관한 이야기다.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편평한 숲에서(등짝에 짱돌이 배기면 곤란하므로) 아무렇게나 벌러덩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시인은 홀로 그러고 드러눕는 일이 더러 있었나보다. 길게 몸을 누이면 아닌 게 아니라 북극성을 향해 몸을 파르르 뜨는 그 형상이 ‘나침반’의 바늘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몸은 팽그르르 돌아 정신이’ 혼미할 지경인데 ‘극과 극의 사랑’을 위해 ‘단 하룻밤만이라도’ ‘두꺼비집을 내리고 싶다’는 마음. 몸을 활짝 열어 재치고서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는 환상의 그림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보름달을 매우 길하고 복된 징조로 여겨왔다. 우리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보름달 같다’는 말은 요즘으로 치면 ‘자체발광’미인과 비슷한 의미를 가졌다. 요즘에야 그런 말을 하면 인상부터 짜부라트릴 터이지만 여성의 미를 두고 그보다 더한 칭송은 없었다. 반면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생물의 광기를 조절한다는 미신이 있다. 미치광이를 뜻하는 Lunatic이란 단어도 달(루나)에서 기원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도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는 꼭 만삭의 보름밤에 출현하여 뭔가 일을 꾸밀 것 같은 어시시한 예감을 주곤 했다.
<월하미인>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자아내는 <달빛을 깨물다>는 슬픈 가족사의 이면이 고스란히 달빛사이로 흘러나왔다. 우주 속 한 생명이 어느 특정 시공에서 잉태되는 것은 그 영혼이 어느 순간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우주적 흐름과 조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질세계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우주 에너지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카르마의 원인에 의해서 그 영혼의 환생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그 우주적 계산법에 의한 질서 속에서 진행된다는 과학적 주장도 있다.
특히 인간의 임신과 가장 관계가 있는 것은 달인데, 달이 갖고 있는 인력은 바다의 만조와 간조뿐 아니라 인체 내의 액체 상태에 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적 에너지와 달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어쩌면 운명이란 것도 그 틀 안에서 지배받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까지 든다. ‘기우는 달의 한쪽을 꽉 물고 있는 어머니의 틀니’도 그렇고, 시인이 그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 지리산 시인이 되어있는 것조차도 달빛의 거스르지 못한 그 무엇으로 인한 운명은 아닐까. 또 그가 자연에 대한 합리적인 이치를 폭넓게 구현하는 휴머니스트가 된 것도 실은 어머니가 깨무신 달빛 때문은 아니겠는지.
시인이 길 위에서 만난 숱한 사람 가운데서도 노골적으로 애정을 드러내는 대상이 시장 사람들이다. 장날 장바닥에서의 인정과 흥정 사이에 오가는 낯익은 사투리들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그걸 주워 다듬지 않고 탈탈 털기만 하고서 그대로 시로 엮는다 해도 시래기 국 같은 시가 한 편 되겠다. <겁나게와 잉 사이>도 그런 날 것들을 주워 담아 잘 말려 끓인 시래기 국 같은 작품이다. 전라도 사투리는 대체로 ‘허벌나다.’ ‘으매 이게 누구여 권 선상 아니다요 겁나게 방갑소잉’ 동행한 한 여인에게는 '나짝이 쪼까 반반허요' 입담 좋은 다른 한 친구에게는 ‘주댕이가 허벌라게 양글구만이라이’ 오래 전 일인데 그때만 해도 ‘겁나게’의 속뜻을 몰랐고, ‘겁나게와 잉 사이에’ 무엇이 날아다니는 줄은 더욱 알지 못했다.
전라도 말의 ‘겁난다’는 많다는 뜻이다. 많으면 왜 겁날까. 뭐든 많으면 덜컥 겁부터 나는 데엔 모르긴 해도 무슨 역사적 배경이나 속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전라도 곡성이 고향인 작가 공선옥의 어느 글에는 ‘집안에 물건들이 쌓여 가면 겁나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겁나고 내 지갑에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기면 겁나고....’라는 구절이 있다. 많고 크다고 맥없이 입이 벌어질 일은 아닌 모양이다. 삶의 순간마다 겁나는 일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 생에서 이 ‘겁나게’란 예방주사 같은 말로 면역되고 감당해야할 무게도 만만찮지 싶다.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을 통해 민초의 삶이 어루만져지고 헹구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문학적 순교를 각오하고 썼다는 이병주의 장편소설「지리산」에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고 지리산이라 읽는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지리(智異)’는 ‘사람의 지혜가 각기 다르다’는 말이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불교적 뜻이 내포돼 있기도 하다. 작가 자신이 모델인 소설의 전반부 주인공 ‘이규’란 이름의 통로로 시인 ‘이원규’와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 그대로 연결된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에게 그냥 산이 아니다. 백두대간의 등뼈를 세워 쭉 뻗어내려 오다가 한반도 아래에서 호남과 영남의 지평을 거머쥐고 우뚝 일어서 높고 험준한 봉우리들과 산마루를 펼쳐놓은 산이 지리산이다. 그러나 경관의 수려함만으로 특별한 산이라 하진 않는다. 동족상쟁을 겪으면서 ‘빨치산’이 이곳으로 들어가 전선을 펴고 저항을 한 민족사에 또 다른 이름을 낳게 한 산이기 때문이다.
이원규 시인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등산(登山)이 아닌 입산(入山)하는 마음으로 오라고 한다.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기에 그렇단다. 색안경 쓰고 껌을 쫙쫙 씹어가며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고 빡빡 산에 오를 거면 아예 오지 말란다. 기어이 오려거든 모든 걸 내려두고 출가자의 마음으로 오란다. 그때 지리산은 어머니처럼 부처님처럼 품으리라. 정복할 것은 마음 속 욕망의 화산이지 몸 밖의 산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리산의 골과 물과 바위들의 만유합일을, 그 한결같은 겸손과 첫 마음을 진작 알아차린 시인이 넌지시 건네는 말이다. 그래서 변덕 심한 인간들에게 사는 일이 ‘행여 견딜 만하면 제발 오지 마시라’고 한다. 마치 전향하여 출가한 마지막 빨치산의 아름다운 순교적 목청처럼 들리는 까닭은 왜일까.
지금까지 읽은 10편의 그의 시에서 이상과 현실이 잘 조화된 그의 인생관을 엿보았다. 그는 자본의 질서에 종사하지도 않거니와 선망하지도 않는다. 그의 깜냥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취할 뿐 자본의 산물을 탐한 적도 없다. 다만 자유로운 삶과 자연에 대한 짙은 사랑만이 그가 소망하고 갖고자 하는 것들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하는 삶을 사느냐가 그의 관심사다. 도연명과 같이 가장 조화롭고 담백하며 순리적인 삶을 꿈꾼다. 시인 이원규는 지금 가장 그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의지대로 자연스레 살아가는 그 삶에 행복해 하고 있다.
요즘 늘어가는 사람과의 ‘관계’를 조금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지만,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방이란 뜻의 ‘피아산방(彼我山房)’에 살고 있는 그로서는 그 관계 속에서 거듭거듭 행복하길 바란다. 길 위에서 ‘족필’을 써가며 깨우친 것도 결국 사람으로 인한 희망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 먼저 자연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더불어 함께하지 않으면 언젠가 생명의 땅은 죽음의 땅이 될 것이기에 그렇다.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귀거래사’의 신호를 통해 탐욕과 거짓에 찌든 우리들 삶을 새삼 되돌아보며 우리네 또한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해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