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

Le Cygne_Andre Rieu와 화이트 크리스마스 를 들으며/향기로운 재스민

향기로운 재스민 2014. 12. 24. 16:47

 

 

 

순수하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오늘은

취한 날개를 쳐서, 떠나 버리지 못한

비상(飛翔)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로 위협하듯 찾아드는

이 모진 잊혀진 호수를 찢어 줄까!

 

흘러 간 시절의 백조는 이제 기억한다.

모습은 찬란하나, 불모의 겨울 근심이

서슬 푸르게 번쩍거리도록

찾아가 살아야 할 악사를 노래하지 못한 죄로,

헤어나려고 애쓰나 희망이 없는 저의 신세를.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저에게 내리는

이 백색의 죽음 같은 고뇌를,

새는 저의 목을 다 늘여 빼고 뒤흔든다.

그러나 저의 날개깃이 매여 있는

이 땅의 혐오를 어이 뒤흔들랴.

 

저의 순수한 빛이 이곳에 지정해 준 유령의 모습,

무용한 유형 속에서, 백조의 신세로 하여 얻어 입은

차디찬 모멸의 꿈에

가만히 멈추어 몸을 맡긴다.

 

 

 

번역 김화영

 

 

 

 

화이트 크리스마스/ 나태주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시집<슬픔에 손목 잡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