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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꽃이졌다는 편지 / 장석남

향기로운 재스민 2018. 4. 18. 07:23

 

꽃이 졌다는 편지 1. 이 세상에 살구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복숭아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꽃이 만들던 그 섭섭한 그늘 자리엔 야윈 햇살이 들다가 만다고 쓰고 꽃 진 자리마다엔 또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살구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복숭아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그러니까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써야 할까 내 마음속에서 진 꽃자리엔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다만 흘러가는 구름이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달이 뜨면 누군가 아이를 갖겠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고 그대로 써야 할까

 

2. 꽃 진 자리에 나는 한 꽃 진 사람을 보내어 내게 편지를 쓰게 하네 다만 흘러가는 구름이 잘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그 바람에 뺨을 기대 보기도 한다고 나는 오지도 않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앉아서 꽃 진 자리마다 애기들 눈동자를 읽듯 읽어 내고 있네 [장석남]
 
 
 

장석남(張錫南, 1965~ )의 시에는 손끝이 닿기만 해도 부스러질 것만 같은 고요가 서려 있다. 젊은 시인들의 내용 없는 요설, 언어의 발작, 광란에 질려버린 이들에게 그의 시는 깊고 따뜻한 위안과 평화를 준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에 어느 순간 박하향처럼 싸하게 그의 시로부터 건너온 쓸쓸함이 번진다. 세상의 변경으로 물러앉아 시를 쓰거나 석판화를 새기며 세상의 외풍을 묵묵히 견디는 그의 시는 온갖 소음과 현란한 간판들에 점령당한 도시 한복판에서 찾은 ‘고요의 정원’이다. 1965년 인천 덕적도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1991년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문학과지성사 1995년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문학과지성사 1998 <젖은 눈>솔 2000년 산문집 <물의 정거장>이레 2001년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비 2005년<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문학과지성사 2008년 산문집<물 긷는 소리>해토 1992년 김수영문학상. 1999년 현대문학상 수상 [옮긴글]

 

 

 

장석남 - ‘순진한 눈’의 시인, 아름다운 문학가

출처 : 시와 시와
글쓴이 : 강미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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