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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설픈 가이드

향기로운 재스민 2011. 6. 22. 16:43

 

 

 

 

 

 

 

                

                 여주 능현리 명성황후기념관 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어진

 

 

 

 

 

 

 

 

 

 

          어설픈 가이드

 

 

 

 

 

                                                                                                                                                  - 여강 최재효

 

 


 “여주의 인구는 10만 명이 조금 넘고, 면적은 610.92k㎡이며, 동쪽으로는 강원도

주시, 서쪽으로는 이천시, 남쪽으로는 충청북도 음성과 안성시, 북쪽으로는 양평

군과 맞대고 있습니다. 여주의 특산물은 질 좋은 쌀, 고구마, 땅콩, 도자기 등이 있

고, 유명관광지는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83-1번지 북성산(北城山)에 조선 제4대

임금이신 세종대왕(世宗大王)님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인 영릉(英陵)이 있습니

다.

 

 또한 영릉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병자호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8년만

에 돌아와 형님인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로 세자가 되어 인조를 이어 왕이 되

청나라를 징벌하기 위한 북벌계획을 세웠다가 실현하지 못하고 승하(昇遐)하신

조선 제17대 효종대왕(孝宗大王)의 능인 녕릉(寧陵)이 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천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효종임금은 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한 동

구릉(東九陵)내 영조임금과 정순왕후가 영면하고 있는 원릉(元陵)에 계시다가 현종

14년인 1673년 여주로 천장하게 됩니다.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250-2번지에 고종황제(高宗皇帝)의 비(妃)인 명성황후(明星

皇后)탄생지가 있습니다. 명성황후께서 1851년 이곳에서 태어나 8살 때까지 거주

하셨습니다. 제가 현지에 도착하면 명성황후의 탄생 배경과 시아버지인 흥선대원

군과의 정치적 대립관계 등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또한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282번지 봉미산(鳳尾山) 남쪽 기슭에는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대사(元

曉大師)께서 창건하신 신륵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의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懶翁和尙)께서 중수(重修)하였

고, 당초 서울 서초구 내곡대모산(大母山)에 영면해 계시던 세종대왕께서 예종

1년인 1469년 여주로 천장(遷葬)되면서 세종대왕의 명복(冥福)을 비는 조선왕실의

원찰(願刹)이 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또한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411-1번지에 신라 경덕왕 23년에 창건된 고달사지(高達寺址)가 있습니다. 고달사는 고려시대에는 왕실의 보호를 받는 대가람(大伽藍)이었습니다.

 

 지금은 폐사(閉寺)되어 지금은 황량한 절터만 남아있는데 이곳에 국보 제4호인

고달사지부도와 보물 제6인 원종대사혜진탑비(元宗大師慧眞塔碑)의 귀부(龜趺)

와 이수(螭首), 보물 제7호인 원종사혜진탑 그리고 보물 제8호인 고달사지석불

좌(高達寺址石佛座)가 있습니다. 이밖에 강천면 이호리395-2번지에 무형문화재

제108호인 목조각장(木彫刻匠) 목아(木牙) 박찬수 선생이 1990년에 세운 목아 박

물관이 있습니다. 

 

 전통 불교미술의 올바른 이해와 전통 목조각과 목공예의 기법을 전승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설립된 박물관은 야외조각공원과 지하1층, 지상3층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시관에는 불상, 불화, 불교 목공예품 등의 유물과 더불어 목

아 박찬수 관장의 불교 목조각과 목공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야외 조각

공원에는 미륵삼존대불, 비로자나불, 백의관음, 삼층석탑 등이 조화롭게 자리 잡

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4대 나루터 하면 마포나루, 광나루, 조포(潮浦)나루, 이포(梨浦)나루

는 이 중 조포와 이포나루가 남한강이 흐르는 여주에 있습니다.“ 나는 마치 녹

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내 고향 여주에 대한 소개하였다. 나의 설명을 듣는 사람

들의 눈빛이 예전의 나를 대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나에 대하여 신기해 하면서 신

들린 듯 고향 소개를 하는 나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했다.


 나는 이달 들어 벌써 세 번이나 고향엘 다녀왔다. 팔순이 훨씬 넘은 어머님이

계신 고향에 자주 가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여주에 가면 지척에 게신 어

머님을 뵙지 못하고 돌아와야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친목단체, 문학

단체 등에서 나는 내 고향 여주를 소개하고 홍보하는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회사에서 내 고향 여주로 테마 여행을 가는 날이다. 한편으로

는 반갑고 기쁘면서도 ‘또 어머님에게 불효를 하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

다.

 

 여주가 경기도 여러 시, 군 중에 일일 여행지로 각광을 는 이유는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사통팔달의 편리한 교통망과 볼거리먹을거리

가 많기 때문이다. 10년 전 친목단체에서 여주 신륵사(神勒寺)로 야유회를 간 적

이 있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마치 집에 드나들 듯 했던 신륵사에 대하

여 문화해설사를 자청하며 함께 간 동료에게 신륵사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사

찰 내 전각들, 전탑(塼塔), 강월헌(江月軒)에 대하상세하게 설명하자 동료들은

나에게 전문 여행가이드로 직업을 바꾸라는 농담 섞인 권유를 하기도 했다.

 

 그때 신륵사에서 야유회를 마치고 시간적 여유가 있자 일행은 영릉을 들리자고

하였다. 나는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의 릉(陵)이 여주로 천장하게 된 사실과 두

임금에 대한 업적함께 설명하자 동료들은 즉석에서 ‘가이드’에서 ‘교수’로 격

을 높여 주었다. 그 이후 주변에서 여주로 야유회나 여행을 가면 꼭 나를 초빙하

여 가이드를 맡겼다. 물론 하루 수고에 대한 대가는 소주 한 잔이면 족하다.

 

 나는 회사에서 부서를 옮기면 일 년두 세 차례 있는 야유회 때 회사 동료들을

반드시 내 고향 여주로 데리고 간다. 물론 처음에는 ‘웬생뚱맞은 여주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의 치밀한 홍보와 설득으로 결국 여주로

행선지를 정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지갑에 세종대왕 초상화가 있는 만 원권 지

폐는 늘 담고 다니면서도 정작 세종대왕께서 어디에 영면하고 계신지 대부분 모르

고 있다.

 

 처음에는 고향을 자랑하고 홍보하는 일이 재미있었지만 차차 정확한 역사 인식

과 연구가 없으면 곧 나의 짧은 지식이 들통 날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명절 때

나 어머님 생신날이면 하루 전에 고향에 내려가 가보지 못했던 장소를 직접 가

보았다. 영릉(英陵), 녕릉(寧陵),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生家), 목아박물관, 조포

나루, 이포나루, 천서리 막국수촌, 파사산성, 대신면 도자기촌, 황학산 수목원,

도자기 상설전시장, 영월루, 여주박물관, 세종천문대, 대로사, 서희장군 묘, 흔암

리 선사유적지, 이완대장 묘, 여주 향교, 여강(驪江) 둘레길, 고달사지, 여주 유명

쌀밥집,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등을 다니며 다리품을 팔아야 했다.

 

 가이드 역할로 수시로 고향을 다녀오면서도 일행들을 안내해야 하는 임무 때

문에 관광버스 안에서 어머니가 계신 집을 바라만 봐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불

효막심한 막내아들을 용서해 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빌어야 했다. 내가 여주에

가이드로 초빙되어 갈 때마다 아내는 나의 이러한 행동에 이해할 수 없다며 불쾌

한 표정이다. 봄,가을이면 주말마다 고향엘 내려가는 남편을 보며 불편한 심사를

감추지 못하는 아내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아내의 따가운 시

선을 뒤로 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올 때면 가슴에 바위 하나가 더 얹어진다.

 

 내가 수시로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내 고향 여주로 안내하니까 어떤 사람은

내가 여주군으로부터 홍보대사로 위촉을 받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영동 고속도

로를 타고 귀가하기 전에 으레 마지막 코스인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안내하

면 사람들은 나에게 아울레에서 커미션을 얼마나 받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받기

도 한다. 아울렛에는 내 고향 선후배들이 근무하고 있고 내 고향분들이 삶을 꾸

려가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가이드 역할을 맡은 이상 여주의 지역경제에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어떤 비아냥을 듣더라도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다. 

 

 “대개의 한국 사찰 내 조사당 그 사찰을 중건(重建)하거나 중수(重修)하는데

큰 공을 세운 큰 스님이나 덕이 많은 대사(大師)를 모시는 전각입니다. 신륵사

조사당은 보물 제180호로 세종대왕의 영릉이 여주로 천장되면서 신륵사가 세

종대왕의 원찰(願刹)로 지정될 시기인 예종(睿宗) 때 지어진 건물로 추정됩니다.

본 조사당은 낮은 기단 위에 앞면 1칸, 옆면 2칸으로 세웠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기

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데, 이러한 구조를 다포양식(多包式)이

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조사당은 조선 초기의 건축 양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좋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자, 조사당 내부를 보세요. 바닥에 마루를 깔고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만들

었으며, 불단(佛壇) 뒷벽에는 세분의 고승대덕(高僧大德) 영정이 모셔져 있습

니다. 맨 좌측 영정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이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왕사

(王師)가 된, 속성(俗姓)이 박씨이며 속명이 자초(自超)인 그 유명한 무학대사(無

學大師)님 영정이고, 가운데 영정은 15세기 초 인도(印度) 마가다국 만왕(滿王)의

아들로 태어나 승려가 되어 원나라 연경(燕京)에 왔다가 무학대사와 나옹화상에

게 가르침을 전한 지공선사(指空禪師)의 영정입니다. 스님인데 마치 왕처럼 관을

쓴 영정 속 지공선가가 어딘가 낯설지 않나요?

 

 지공선사는 1326년부터 1328년까지 고려에 머물면서 선종(禪宗)에 대하여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맨 우측 영정은 나옹화상(懶翁和尙)입니다. 나옹

화상은 1320년 경북 영덕에서 출생하였으며 성은 아(牙)이며 초명은 원혜(元慧)

입니다. 법명(法名)은 혜근(惠勤)이며 호은 나옹(懶翁), 당호(堂號)는 강월헌(江月

軒)입니다. 공민왕(恭愍王)의 왕사(王師)로 고려말 불교의 중흥에 힘썼으며, 무

학과 더불어 지공선사의 문도(門徒)로써 양주에 있는 회암사에서 주로 활동하

셨습니다.

 

 말년에 회암사를 떠나 경남 밀양에 있는 영원사(塋源寺)로 가던 중 이곳 신륵

사에서 입적하게 됩니다. 나옹화상은 저 기있는 강월헌 자리에서 다비되어 그

의 사리는 이 조사당 뒤에 있는 부도탑에 안치됩니다. 자, 그러면 나옹화상의

부도탑으로 가 보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세요. 부도탑을 보고 내려오면 강월헌

과 전탑 드리고 명부전을 관람하겠습니다. 특히 강월헌은 사진 촬영하기 좋은

장소 입니다. 강월헌 좌측에 있는 삼층석탑 옆에서 서서 동쪽의 여강을 배경으

로 촬영하면 기가막힌 작품이 될 겁니다." 6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나는

동행한 사람들을 안내하였다. 


 훗날 회사에서 정년퇴직하면 고향에 초가라도 한 채 짓고 낮에는 텃밭을

일구고 밤에는 청풍명월(淸風明月)과 더불어 한  세상 살아보려고 한다. 비록

단돈 1원도 받지 않고 주말을 내 고향 알리는데 헌신(獻身)하였으니 얼마나 기

쁜가. 나는 나옹화상의 부도탑에 지난번 보다 더 파랗게 빛을 발하고 있는 천년

이끼를 보며 나와 나옹화상이 어인연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여주

관광에 시장기를 느낀 일행을 안내하여 여군청 뒤에 있는 여주 쌀 밥집으로

향하면서 오늘도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그냥 인천로 돌아가야 하는 이 어설

픈 가이드 처지를 한탄해야 했다.

 

 

 

 

                                                                                   - 창작일 : 2011.6.18일 13:00
                                                                                                    여주에서

              
    

 

 

 

 

 

 

 

 

 

 

 

 

 

 

 

 

 

 

 

 

 

 

 

 

 

 

 

 

 

 
 

 

 



 

 

 

 


 

출처 : 시인의 파라다이스
글쓴이 : 여강 최재효 원글보기
메모 : 늘 산책 같이하는그녀가 이 역사를 좋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