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시 중국으로 출장을 간다는 너에게(땡구)
며칠 동안의 여름 휴가를 푸켓을 잘 다녀와서 출장이 당분간은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 다시 비행기를 타야 된다니 피곤하겠구나
싶어 좀 걱정이 되는구나.
()친 저 별명 너 알지? 백일안에 낮에는 놀며 안자고
밤에는 잠을 안자고 놀자고 해서 밤만 되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때 처음으로 산 천호동 집에서 큰 삼촌이 군대 제대하고
나서 서울서 취직 준비 할 때인데 밤만 되면 난 너를 데리고
삼촌 방에서 교대로 널 안고 방안을 돌아다니며 재워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왜 지금 나는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직장이 멀어 잠을 안 깨우려고 정이 많은 큰 삼촌이
엄마 대신 많이 도와 주셨드랬단다 그래서 난 마음속으로 지금도
큰 삼촌을 너의 유모 대신 유부남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단다
그 때 부터 아빠는 널 밤에 잠 안자고 보챈다고 찡찡이라고
불렀는데.... 찡찡이라고 부르니 이상하다고 다시 땡이라고
했다가 외자가 이상하다고 부르기 좋게 구를 더 붙여 땡구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그래서 지금도 호주에 살고 계신 아빠 친구는
땡구 라는 이름으로 너를 기억하고 계신단다 호주 대사관에
그분의 딸은 지금도 근무하고 있을게다. 아쉬운 것은 얼마전에
호주에서 나오면 꼭 모임에 나오려고 내게 만은 제일 먼저 알리고
했었는데 그 분의 부인이 췌장암으로 가셨다는 것 기억하고 있는지...
호주로 이민 간뒤로
자주 보지 못하고는 살았지만 나와 나이도 같았고
항상 아빠 많이 건강 안 좋을 때를 생각하며 특별히 엄마하고도
전화는 자주하며 지냈는데 ....끔직이도 아내를 사랑했다는것을
잘 알고 있는 난 이젠 전화 하기도 받기도 어렵단다
조금은 더 지나야 서로의 생활 얘기를 나누기가 편해질른지....
어제는 저녁 식사 준비 할려고 할 때쯤 아래층에 살다가
서초동으로 이사간 유난히도 너에게 관심 많았던 부인이
전화가 왔었는데 한 동안 세상 돌아가는 얘기랑 나누다보니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 중국 때문에 자기네 사업이 많이
힘들다면서..... 이제와서 딸을 그쪽으로 내 보내어
어떤 일을 새로이 시작하기도 망설여지는 것 같이 말하면서.
자기의 사 생활까지도 내게 말하면서 나를 가까이
할려고 했던 사람이라 지금도 너 때문에 가끔은 미안하게
생각되어진단다. 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
왜 내가 이런 얘길 하냐하면 점점 세계 경쟁이 심해지는 이때에
힘들더라도 자기 개발도 열심히 하면서 또 자기의 식구도 어느정도는
챙기면서 살아야하는 요즘 사람들이 힘들게다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우리 세대는 이제는 자기의 건강과 편안한 마음이 되는
것만 챙기면 그런대로 살아지겠지만 말이다.
날씨는 이제 활짝 개인 것 같다
주어진 일에 항상 열심인 널 알지만
외국어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네가 되길 바라며.
토요일 날 베트남에서 결혼식 때문에 오는
호근이 형도 만나 보았으면 싶은데...
넌 시간에 못 댈것 같으면 대전 형이
집으로 온다니 같이 참석할게다 저녁 6시라니
형은 그 날 왔다가 대전으로 내려가서 그 다음 날 저녁에
창원으로 간다고 하더라.
가끔씩은 형에게 전화도 네가 먼저 하면서
세상 얘기도 나누면서 살아 갈 수 있는 진심어린
친구처럼 되어지길 바라면서...
이 다음 엄마가 흙으로 돌아가고나서 네가
오늘의 이 글을 다시 볼 수 있을 때
웃으면서 살 수있는 생활이길......
잘 보람있는 출장이 되어지길 바라면서.
2011. 7. 20 향기로운 쟈스민인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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