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화상.....서정주

향기로운 재스민 2012. 1. 28. 04:45

 

 

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이 시를 쓰고 몇 년 후에 우리나라 청년들을 태평양전쟁으로 내모는

      친일적인 선동시를 썼다.

      '죄인' 천치' '병든 수캐' 등의 자기 비하로 솔직한 고백이다...***

 

 

 

2012.  ㅣ. 28    향기로운 쟈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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