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 장석주

향기로운 재스민 2012. 1. 28. 21:22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 장석주

 

 

너무 멀리 와버리고 말았구나

그대와 나

돌아갈 길 가늠하지 않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버리고 말았구나

 

구두는 낡고, 차는 끊겨버렸다.

그대 옷자락에 빗방울이 달라붙는데

나는 무책임하게 바라본다, 그대 눈동자만을

그대 눈동자 속에 새겨진 별의 궤도를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한들

어제 와서 어쩌랴

 

우리 인생은 너무 무겁지 않았던가

그 무거움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고단하게 날개를 퍼덕였던가

 

더 이상 묻지 말자

우리 앞에 어떤 운명이 놓여 있는가를

묻지 말고 가자

멀리 왔다면

더 멀리 한없이 가버리자

 

- 시집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 갈수 있다면>(세계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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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사랑은 변한다고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하지만 인간의 사랑이란 지극히 감상적이어서 불변의 사랑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사랑의 변화는 사랑의 냉각만을 의미하진 않지만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내야 마땅한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은 숭고한 것이고, 또 그렇게 학습 받아 왔으니까. 그래야 미덕이니까.

 

 내가 결정한 사랑에 망설임이 있다면 지금껏 살아온 나의 인생을 스스로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고 나의 판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변하고 있음에도 못 본 척 알지 못한 척 마음속에 바윗돌 하나 매달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굳건한 사랑이라 간주하고 스스로에게 최면 거는 이 땅의 수많은 부부들이 있다.

 

 개별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는 매우 건강한 사랑법이다. 그러나 부부가 아닌 미 계약 상태의 사랑이란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둘 사이의 일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 존재하는 혼선과 복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진정성, 다각 구도, 권태, 다른 이의 시선, 도덕률 등의 개연성이 늘 전제되고 까발려지는 것이 사랑의 현주소이고 우듬지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의 다른 시 '엽서 2'에서 그 사랑이 내 의지와 힘보다는 더 큰 어떤 것이라며 운명 같은 사랑을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때없이 스쳐가는 바람의 유혹에 빠졌다고, 날 저물고 어둔 하늘 초록별의 손짓에 따랐다고, 그 길을 에워싼 숲의 깊은 고요에 매혹당했다고 수군거리지만, 사랑은 결코 죄가 아니지요' 라고

 

 내게도 그런 운명 같은 사랑이 있을까, 그 사랑을 삶 속에서 단 한번 이루어낼 수 있을까. 씹고 또 씹어도 내 입술에 부딪치는 이름은 오직 하나뿐인 그런 사랑. 교과서 다 불살라 버리고 그 이름 삼키면 사막의 그 생명수처럼 달디 단. 만약 그런 사랑 있다면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겠다. 우리 앞에 어떤 운명이 놓여있는가도, 어떤 도덕률도 눈치코치도...그래서 멀리 왔다면 더 멀리 한없이 가버리자고 할 것이다. 먹지 못해도 '고'라 외칠 것이다.

 

 

권순진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 마릴린 몬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음악도 다시 듣고 싶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