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

[스크랩] 4월의 노래/ 박목월

향기로운 재스민 2012. 4. 26. 11:35

 

 

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영산,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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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길러주었다.” T. S Eliot의 ‘황무지' 가운데 잘 알려진 부분이다. 4월하면 습관적으로 엘리엇의 시를 인용하며 억지로 그 ‘잔인함’을 꿰어 맞추려 하지만 흔쾌히 동의하기엔 왠지 개운치 않았다. 완벽한 봄의 계절임에도 잿빛 운운하며 우울을 펌프질하는 게 마땅치 않은 탓이다.

 

 생명의 탄생과 부활을 재촉하는 그 자체가 습관처럼 생명만 유지하며 망각과 무지에 갇혀 살고 싶은 도시인에겐 차라리 가장 잔인한 달일 수 있겠다. 사람들은 싹을 틔울 아무른 채비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자연은 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삶이 버겁더라도 우리는 4월을 희망의 달, 생명의 달이라고 한다. 인디언의 달력에서 4월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예찬하고 있다.

 

 목월도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며 목련을 등불의 이미지로 보고서 ‘꿈의 계절’ ‘무지개 계절’이라고 하였고 엘리엇 역시 '4월은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한 것을 보면 그 ‘잔인’은 오히려 역설적 ‘희망’이자 고도의 강조법일 수도 있겠다. 이제 곧 또 다른 선택과 꽃을 피우기 위한 진통을 겪을 터이지만, 일단 4월의 등불은 다 밝혀졌다.

 

 사방에서 저렇게 ‘피어나라!’고 주문하는데, 그 결과가 흡족하건 그렇지 않건 고통의 옹이를 감싸 안고 있을 수만은 없겠다. 시차의 부적응으로 목련은 지고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만화방창 가로수길 걸으며 다시 시작하는 이 4월을 ‘빛나는 꿈의 계절’로 노래하여도 좋으리. 억지로라도 그리해야 하리.

 

 

권순진

 


 Phil Coulter / Sunlight On the Water

출처 : 한국스토리문인협회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목련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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