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2

[스크랩] 투명인간/ 문정영

향기로운 재스민 2012. 7. 3. 05:44

 

 

 

투명인간/ 문정영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오늘은 투명인간이다

어머니와 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모른 척 한다

왜 안오시냐고 딸이 투정을 부린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연극이 오래 가면서 가족들은

진짜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투명인간이었는지 모른다

투명인간은 그렇게 혼자 버텨야 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렇게 집에서 투명인간이다 아내는

보이지 않는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옷을 내어준다

나는 투명한 몸에 밥을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옷을 입고 안경을 쓰고 신발을 신는다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자 나는 인간이 된다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은 내 겉만 본다

밖에서는 몸을 보여주지 않는다

소리만 들려준다

나는 말소리로 사람흉내를 낸다

투명인간이 투명인간 사이로 지나간다

서로 모른 척 한다

 

- 계간 <스토리문학> 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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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어릴 땐 ‘투명인간’이 되는 만화적 공상을 한번쯤 해보았으리라. 그래봤자 엉큼한 유희 수준이겠는데 가령 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그냥 집어먹는다든가 사내아이일 경우 공중여자목욕탕에 들어간다거나 미운 녀석 머리에다 꿀밤 먹이기 정도일 것이다. 해리포터의 투명망토와 같이 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론 신나는 일 같지만 익명성 뒤에서 자행되는 사회적 일탈과 범죄행위를 먼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투명인간은 영화나 소설 혹은 공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는 이미 신분을 지워버린 수많은 익명의 투명인간들이 들끓는 세상이다. 사회적 혼란과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단호히 익명의 망토는 벗겨져야 한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범죄예방 차원이 아니라면 매사에 관등성명을 요구하거나 그것에 답할 필요는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익명성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고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보장되어야한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말로 '프라이버시'라고 한다.

 

 이 시는 그런 투명인간과는 무관한 소외와 단절의 이야기다. ‘투명인간을 꿈꾸며’라는 연극의 주인공 사내는 변변한 직업 없이 자유기고가로 활동하지만 경제적 주도권은 아내에게 넘어간 지 오래고 별 존재감 없이 웅크리며 살아간다. 아내는 그런 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말도 삼가는데, 그러다 보니 가족과의 대화는 점점 잃어간다. 사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늘 투명인간을 꿈꾼다.

 

 시의 후반부는 시인 자신의 이야기로 넘어오는데 ‘나도 그렇게 집에서 투명인간’이라고 고백한다. 현대인은 누구나 조금씩은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외로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눈에 보인다 해서 보이는 게 아니며 '투명인간이 투명인간 사이로 지나가'니 '서로 모른 척'하는 것은 당연하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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