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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회 아시아 시낭송회

향기로운 재스민 2012. 7. 24. 05:32

제2회 아시아 시낭송회


손세실리아/ 시인



9월 3일 토요일 아침, 13시 10분 김포를 출발해 대구로 향하는 비행기편을 예약 취소했다. 길 떠날 아무런 채비도 챙기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10시 안양에서 출발하는 박제영 시인의 차를 얻어타도 되겠느냐 불쑥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귀한 시간 내서 떠나는 길이니 이왕이면 우리 산천 푸르게 하얗게 담아오자 싶어서였다. 분당에서 정한용 시인과 강기원 시인이 동행했는데 내려가는 길 예정에 없던 영주 부석사에 들렀다. 부석사- 15년 전 구불구불 오르던 비포장 산길의 감미로운 향수는 부분부분 희석되었지만 사과밭을 양쪽으로 낀 진입로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붉고 푸른 사과가 먹기 좋게 익어 한 상자쯤 사고도 싶었지만 꾹 참아야했다.



좋다. 보고 싶다. 아프다. 쓸쓸하다. 그립다.



이 단어를 내 시는 넘어서지 못한다. 이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궁색한 단어들을 끌어모아 시의 형식을 취할 따름이다. 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시신경을 통해 감지되는 사물의 매혹적인 현상을 두루 접하면서 내가 뱉은 말은 고작 '좋다, 와, 좋다' '좋다, 아, 좋다'였기 때문일까? 그냥... 좋고, 보고 싶고, 아프고, 쓸쓸하고, 그립고, 기쁜... 그것! 아마도 더없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퇴락 직전의 여름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의 절정 앞에서 새삼 겸손해진다. 고요로워지고 가난해지고 소소해지고 낮아진다. 가을을 맞기 전에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점, 퍽 다행으로 여긴다.



문예진흥원과 계간 <시평>이 주관한 '제 2회 아시아 시낭송회' 장소는 안동시 도산면 폐교다. 이런 산 속까지 찾아올 참석자가 있을까? 했던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각지에서 도착한 승용차 행렬과 서울에서 단체 참석자를 태우고 출발한 관광버스가 학교 울타리를 에워쌓다. 참석자 연령도 어린 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비가 내리긴 했지만 오락가락했고 행사를 중도 포기할 정도의 큰비는 아니었던지라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받거나 대충 젖기를 감수하면서 다들 굳건히 운동장을 지켰다. 모닥불이 지펴졌고 시와 노래와 강연으로 행사는 2시간여 진행되어졌다. 익숙한 모습들을 뵙는 일도 물론 반가웠지만 그보다는 안동, 영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과 지역 시를 현장에서 접할 수 있어 반가움이 더했다. 특히, 권석창 시인의 낭송과 시의 구수하고 찰진 감흥은 기억에 아주 오래 담겨져 있을 것이다.





몸성희 잘 있거라 /권석창





자주 가던 소주 집

영수증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어준다.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술값도 싸게 받고 친절하다.

원래 이름이 김성희인데

건강하게 잘 살라고

몸성희라 불렀다.

그 몸성희가 어느 날

가게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남자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천사가 되어 하늘로 갔다는

소문만 마을에 안개처럼 떠돌았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몸 성희 잘 있는지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술값을 술갑이라 적던 성희 생각 난다.

성희야, 어디에 있더라도

몸 성희 잘 있거라.



- 프로필: 경북 순흥 출생. 1977년 조선신춘 <벌판에서> 당선. 시집 <눈물방울> <쥐뿔의 노래>가 있다.

- 출처: 권석창 시집 <쥐뿔의 노래> / 모아드림


시인의 시낭송이 이어지는 내내 곳곳에서 킥킥거린다. '소줏집 꽤나 다녔던 게로군. 술값을 술값이라 적던 인심 후한 김성희가 시심을 자극한 게로군. 살면서 어디서든 김성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권석창 시인의 몸성희가 떠오르겠군. 흠모했을지도 모르지.' 상상하면서 나또한 쿡! 웃는다. 그의 시를 챙겨 읽을 것 같은 예감에 빠진다. 다시, 내려오는 길 들렀던 부석사로 잠시 돌아가보자. 머잖은 날, 부석사 경내에 정호승 선생의 시비가 들어설지도 모르겠다는 있을 법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면서 선생의 시를 얹는다. 그밤 폐교에서 선생은 인쇄물에 올라 있는 시 <물고기에게 젖을 먹인다> 대신 , <그리운 부석사>를 낭송하셨다. 다들 과거 어느 한 켠에 존재하는 그리움이라는 녹슨 대못을 어루만지며 더없이 쓸쓸해하는 눈치다. 그러함이 바로 정호승 선생만이 갖는 독특한 시의 힘 아닌가 싶다. 내 그리움에게 전화를 건다. 이육사의 시 <절정>과 관계 깊은 峰이 먹빛으로 나를 압도한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움이란 놈도 때론 전화기처럼 껐다 켰다 할 수 있었음 좋겠다.





그리운 부석사/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 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게로 삼겠느냐

새벽이 자나도록

摩旨를 울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 정호승 시 <그리운 부석사> 전문



승용차 여행에 합류한 덕에 한 시인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담한 체구에 깔끔한 성격이 읽혀지는 강기원 시인이다. 강기원 시인은 올봄 시집을 상재했단다. 나만 초면이지 나머지 세 사람은 몇 차례 만난 적 있으셔서인지 대화가 매끄럽다. 나만 낯설고 어색하다. 그런 때 버릇이 있다. 많이 웃고 말이 많아진다. 어색한 분위기를 탈출하려는 자구책인데 그러고나면 반드시 후회한다. 전화도 그렇다. 편치 않은 대상과 하는 통화는 음성도 말투도 들뜬다. 쓸데없이 달변이다. 상대가 어색해할까봐 나름대로는 노력하는 거라지만 전화를 끊고나면 허탈해진다. 후회하고 만다. 내려가면서 내내 그랬다. 부산스러웠다. 침묵도 어색해하지 않은 관계들은 그리 많지 않다. 거기까지 가려면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겠지?



강기원 시인이 챙겨온 여행가방은 그야말로 보물창고를 방불케했다. 필요한 물품들이 그안에서 그때그때 조달되어졌다. 하물며 물티슈와 이쑤시개와 포도, 비스켓과 껌, 녹차와 생수... 내 몸 하나 간수도 힘들어하는 나와는 대조적인 그녀의 일면을 본다. 타인에 대한 호의가 배어있다. 시 이야기를 꺼낼 때 유독 총총해지던 그녀의 낭송시를 맛본다.





나는 그를 나무라 부르고,


그는 나, 無라 이른다/강기원



바람 부는 겨울 저녁

집을 나선다

석양빛 털을 가진

두 귀 축 늘어진 개와 함께

주위를 본다 하지만

어둠은 갑자기 몰려올 것이다

운명하기 며칠 전 돌아오는

화색和色 따위의 것

고개 든 순한 짐승의

두 눈 속으로 태양이 진다

바람 몹시 불어

큰 나무 아래로 간다

아득한 곳에서 울려오는 종소리

나무가 떨구는 나뭇잎이

내 몸에 와 고스란히 박힌다

앞서 갔던 녀석이 돌아와

발치에 감겨 눈을 뜬다

석양에 등 대고 선 나무의 수많은 잎들

그런 날이 있었을테지만

지금은 앙상한 가지뿐이다



- 출처: 강기원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 세계사

- 프로필: 서울 출생. 1997년 <작가 세계>로 등단.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가 있다.





사통팔달한 성품으로 주위 사람을 아우르는 박제영 시인은 운전으로 녹초가 되었을테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씩씩하기만 하다. 의사로부터 금주와 금연 명령을 받았다면서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출발 때부터 자신없어했다. 그런 그를 우리 일행은 자꾸만 부추겼다. '오늘까지만 마시고 내일부터 금주하세요'라고. 물론 그의 금주선언은 술앞에서 당연히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음 날 올라오는 길 충주호에서 마신 흑임자酒로 인해 또 하루가 무산되었으니... 아마 오늘부터 금주!를 새로 옮긴 사무실 책상에 고딕체로 뽑아 붙여놓고 반드시 실행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해볼 것이다. 그럴수록 그의 뇌리에는 술!이 떠나지 않겠지.



그는 두 권의 시집을 갖고 있다. 문단 경력으로 따지자면 꼼짝없이 대 선배님이시다. 그의 번뜩이는 재치와 화술은 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역력하다. 그와는 최병수 화백 후원의 밤 행사 때 처음 만났는데 그에게는 늘 신세진 기억밖에 없다. <기차를 놓치다> 첫 오프라인 행사를 겸하기도 했던 그날, 적지 않은 액수의 뒤풀이 술값을 혼자 지불해 나를 부담스럽게 했다. 그런 인연으로 빈터 문학의 밤 행사에 초대되어 갔었고 이번 여행길에도 염치없이 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주위에 늘 사람이 북적이는, 두 딸아이의 좋은 아빠인, 아내 사랑이 유별난 남편인, 효자인, 꽤 튼실한 광고회사의 경영자인... 이번 만남이 세번 쯤 일까?



그를 볼 때마다 받게되는 느낌이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도 외로울 때가 있을까?'하고, 물론 우문이다. 무수한 사람들, 산재한 일더미,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외로움을 더 많이 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됐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처럼 한동안 지독히 외로웠음 싶다. 아니, 지금보다 더 깊고 짙고 절박하게 외로워도 좋겠다. 혹여 이 글을 읽을 그, 이 대목쯤에서 담배에 불을 붙일지도 모르겠다. 금연이 꽝!인 순간이겠다. 군중들 앞에서 호탕하던 기색 훌훌 털어내고 쓸쓸하게 미소지을지도 모르겠다.





가령과 설령/박제영



가령

이것이 시다,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라고 씌어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 출처: 계간 <시평> 2005년 여름호

- 프로필; 강원도 춘천 출생.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푸르른 소멸- 플라스틱 플라워>가 있음.





서울과 수원 등지에서 축하 모임을 가졌던 박남준 선배도 당일 내려와 참석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 안색이 영 좋지 않다. 하지만 보일락 말락 웃는다. 제주 작가대회 이후 몇달만의 만남인데 엊그제 만난 사람 같다. 악수 같은 거 없다. 그냥 "왔냐?"하면 끝이다. "피곤하죠?"하면 또 끝이다. 그런 다음 그냥 일상의 대화다. 곁을 지키려고도 않는다. 뭐하다보면 어느새 곁이다. "하필이면, 시낭송의 대가와 한 자리에 설 게 뭐람" 투덜거렸더니, "대가는 무슨?" 한다. "한보리님의 노래도 좋지만 다음번 씨디 녹음할 기회 있거들랑 오라버니 노래 넣어요. 그게 시낭송과 훨씬 잘 어울리겠더라." "야, 노래는 노래하는 사람이 해야지." "아냐, 박남준표 노래는 대한민국에 유일하거든. 아마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껄..." "짜식, 까불지 마 임마"



유안진 선생님께서 행사의 오프닝을 맡으셨고 박남준 시인은 휘날레를 맡았다. 유안진 선생님께서도 정호승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행사 책자에 실려 있는 시대신, 암송하고 있는 시를 낭송하셨다. 유장하고 섬세했다. 검정 의상도 특별히 챙겨오셨는지 눈부셨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시를 기억하지 못해 올리지 못한다. 다시, 박남준 시낭송으로 돌아와서, "시의 마지막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노래를 불렀어야 했는데 흥이 나지 않아 노래를 생략했다"는 문제의 시다. 노래를 불렀어야 옳았다. 알콜이 2% 부족했다.





영도다리 금강산 철학관/박남준



지금은 늙고 병들어 일으켜 몸 세울 수 없는 영도다리

그 아래 올망졸망 비닐덮개 낡은 차일을 치고

케케묵은 포장마차들이 판을 벌이고 있다

허름한 빈대떡과 삶은 달걀과

졸고 졸아 몇 탕을 끓였을까 멀건 홍합국물과

이 나라 구멍난 주머니에 얻어터져 잔뜩 불은 국수 가락들 사이에

1.4 후퇴 때 건너 왔는가

사주 관상 택일 금강산 철학관

30년 전통이라는 때 절은 흰색 페인트칠 간판

늙고도 늙었다 빛 바랜 그 글씨

거기 때로 집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안부가 블려나왔으리라

너덜너덜한 신세들이 접고 접은 괴춤의 푼돈을 꺼냈으리라

엎어지고 자빠진 팔자타령을 풀어놓았으리라



손바닥만한 금강경 그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검은 안경을 쓴 점쟁이 할머니가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옹알거리는 아이처럼 모로 누워 있는데

한번쯤 나 또한 문을 열고 싶었다

모질고 험한 세상의 일을 묻고도 싶었다

영도다리 푸른 물 너머 문득 금강산

굳세어라 금순이의 바람찬 흥남부두

머나 먼 땅의 소식도 물어보고 싶었다



- 출처: 계간 <현대문학> 2003년 9월호

- 프로필: 전남 법성포 출생. 1984년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가 있다.





마지막 일갈을 위해 이 시는 존재한다. 무거운 분단을 다소 능청스럽게 다루기 위해, 금강산, 이라는 이름을 내다 건 철학관이 등장하고, 검은 안경 쓴 점쟁이 할머니가 등장하고, 괴춤 푼돈이 등장한다. 등장한다. 비닐차양 뒤집어쓴 포장마차가 등장하고, 졸고 졸아든 홍합국물이 등장하고, 불어터진 국수가닥과 금강산 철학관 간판이 등장한다. 남하한 피난민들 꾸역꾸역 모여들던 부산 영도다리, 월남했다가 내내 주저앉게된 실향민들이 먹고 살겠다고 몸부림치던 곳, 하필이면 그 영도다리에 와서 금강산을 만난 것이다. 마주친 것이다. 그리하여,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이 놈의, 망할 놈의 분단이 언제쯤 종지부를 찍을 것 같냐고 괴춤 푼돈 꺼내 묻고 싶은 것이다. 북에 계신 삼촌의 안부도 묻고 싶은 것이다. 흥남부두 아직은 갈 수 없는 그 먼 땅의 소식도 묻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말들을 끝내 '묻지' 못하고... 가슴에 '묻고' 마는 것이다.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가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이름표를 확인하더니 반갑게 인사를 청해오셨다. 손을 잡고 반겨주셨다. 시를 챙겨 읽어주시는 분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인사 나누고 싶었는데 분위기 무르익기를 기다리다 놓치고 말았다. 설령 모습은 또렷이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 잊지 않을 것이다. 무명의, 문단에 당당한 시집 한권 상재하지 않은 나를 기억해준 이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김주태 시인을 통해 나를 그네들 자리로불러준 안동대학교 국문과 학생들과의 만남은 그날 최고의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이 건네주는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조금씩이지만 다 받으려 했다. 그들에게도 그렇게 건넸다. 마음도 함께 건넸는데 그 새 어디 흘리지나 않았을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다소 긴장되고 서로 어색했으나 얼마 후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실전에서 얻은 시작법과 시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모의 여교수님이 곁에서 지원군을 자청하셨다. 짐작컨데, 그녀가 그날 눈부신 그 자리를 주선한 장본인은 아니었을지. 그녀는 내 시에 대한 사전 정보를 꽤 갖고 있는 듯했다. 그 자리가 급조된 자리가 아님을 그제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나, 참으로 바보 같다.



스물을 갓 넘긴 학생들의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적어달라 부탁했다. 시집 나오면 보내주마 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기약도 없는 시집이지만 그들에게는 꼭 보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희선이, 지원이, 진회, 가영이, 민재, 현정이... 그리고 한경희 교수님이 바로 그들이다. 어쩌면 나는 돌아와 그들의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듣고 있을까? 그들 중 남학생이 낭송시 <얼음 호수>의 시작 배경을 첫 질문으로 던졌던 것 같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문단에 들어선 이력과 살아온 날을 설핏 내비쳤다.



시낭송할 때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아주 간단한 인삿말조차 생략하고 시만으로 그들과 호흡하고자 했다. 그날도 그러했다. 단호하고 무례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아니다. 전심으로 시에 밀착되고 싶어서다. 조명이 어찌나 눈부신지 앉거나 서서 관람하는 독자들은 육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을 빛과 어둠 저 너머를 응시하고자 했다. 내가 그들의 숨결을 느끼듯 내 시선은 그리로 가 닿기를... 내 生의 얼음 호수가 그들 生의 얼음 호수이기를. 음성은 최대한 작게, 낮게... 시가 시키는대로 따랐다. 몰입했다. 나는 그들과 완벽한 교감을 이뤘다. 설혹 잦아드는 음성으로하여금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으로 시리게 시리게 짚어내려갔으리라, 그리하셨으리라 믿으며.


얼음 호수/손세실리아


제 몸의 구멍이라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

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

여기 이르는동안 단 한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封해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 프로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 출처: 월간 <현대시학> 2005년 6월호 신작소시집





끝으로 이 행사를 위해 가장 먼 길 달려온 일본의 혼다 히사시 시인의 시를 얹는다.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H씨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우리가 그의 시를 아끼는 것만큼이나 그 역시도 한국시를 사랑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아버지를 닮았는지 그의 딸은 현재 서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수학하는 중이다. 내년 쯤이면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기를 희망하는 그녀는 아버지의 시를 우리말로 낭송하기도 했다. 혼다 히사시씨는 그 순간 참으로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딸아이만 응시했다.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부녀의 시낭송 광경이 이번 행사의 백미였지 않았을까?



유년시절 말의 해산 장면을 지켜볼 흔치않은 기회가 있었단다. 순산하기를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사산되고 말았단다. 체온도 식지 않은 말의 태아를 꺼내기위해 자궁으로 손을 밀어넣는 장면을 온전히 지켜봤단다. 그리고 기억한단다. 그 충격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혼다 히사시. 계간 <시평>에 소개된 바 있는 그의 낭송시 또한 말에 관한 시다. 기억 속 죽은 말이 시에서는 살아 있다. 살아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몇 십 년 흐른 후에도 지속되는 것이다.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을 감지할 수 있다. 이미 죽어 사라져버린 생명체를 시 속에 살려내는 일이라니. 그는 수차례 미술 전시회를 개최했을 정도의 화가이기도 하고, 출판사 <혼다 기획>을 운영하기도 한다. 특히, 그가 운영하는 출판사는 산 속 과수원에 소재하고 있어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으며 시잡지 <노기>를 주재하고 있다.





봄날의 천둥



혼다 히사시



당신이 내리친 빛의 채찍을 맞고

땅에 묻혔던 말이 힘차게 운다

당신은

몸을 돌려 채찍으로 꽃을 내려친다

흩어지는 꽃잎이

임종의 순간을 비춘다

그 한 순간의 밝은 빛 속으로

말은 풀을 뜯고 있다

꽃잎이 땅에 진다

말은 이제 없다

나는 불러본다

이름이 붙여지기도 전에

이미

모태에서 해체된 채 끌려나와 땅에 묻힌 말을

그러자

등에* 울음소리보다 작은

하늘로 사라져가는 내 목소리에 응답이라도 하듯

다시 한번

당신이 내리친 빛의 채찍을 맞고

말이 힘차게 운다



- 프로필: 1947년 미야자키현 출생. 1991년 시 <바다의 말(馬)>로 제 1회 이토 세이유상 수상. 1992년 시집 <과수원>으로 제 42회 H씨상 수상. 시집 <피뢰침> <말(馬)의 진혹제> <성몽담> <양지> <불의 관> <가시> <재와 불과 수묵과 그림자와> <햇빛의 정원- 무한대화> 등이 있다.





아픈 허리로 안동은 무리였다. 초반부터 허리가 묵직하더니만 부석사에서는 오른쪽 다리까지 찌릿거렸다. 정작 안동 행사에 다녀와서 부석사 사진만 석 장 올려둔다. 맨 위와 가운데 사진은 <매버릭 사진이야기> 방에서 양해 구하고 모셔왔으며, 맨 아래 사진은 메인화면 왼편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준 바로 그 김영보님 작품이므로 제법 친한 척 당당하게 데려왔다. 나를 가장 나답게 담아냈던 사진작가다. 광고, 기획일로 열심히 돈 벌어, 사진에 쏟아붓는 젊은 친구다. 차분하게만 보이지만 가까이가면 데일 듯한 열정과 칼날 같은 이성을 양날개에 균등히 싣고 사는 사람이다. 그가 지금 북제주에 있다. 사진 출사를 떠난 모양이다. 오늘밤 제주는 나비 천국이란다. 섬에서 온 새벽 전갈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 놈들 아름다운 날개짓이 아니라 광폭한 비행을 모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비떼, 순하디 순하게 섬을 빠져나가기를 기도해야지. 나비떼, 평화로운 비행이 젊은 사진가의 사진 그물에 포획되기를, 지금은 두모악 앞뜰에 묻힌 영혼 맑은 한 사진작가가 마주했던 운명의 한 순간처럼 그 바람을 생생히 목도하기를.



올라오는 길엔 32번 국도를 탔다. 잘 닦인 중앙고속도로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이점 외엔 그다지 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경, 충주호를 느릿느릿 거슬러 일산까지 태워준 박제영 시인의 친절은 '고마워요'라는 말 한 마디로는 턱없이 부족해 차라리 입 다물고 만다.



송희선, 이지원, 김진회, 권가영, 이민재, 이현정,

미래의 내 문우들인 이들 여섯 친구들과 친절한 여교수님께 이 글을 전한다.

혹여 적당히 타협하고 싶어질 때, 그대들 눈빛 떠올리며 마음 가닥 추스릴 거라는 약속과 함께.



- 2005/ 9/ 6/ 손세실리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다시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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