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스크랩] 그해, 담쟁이/ 김숙경

향기로운 재스민 2012. 7. 11. 08:12

 

 

 

 

그해, 담쟁이/ 김숙경

 

 

벽이 험난해도 가야만 한다

거기에 나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물 한 방울 없는 가시밭길에선

가시마저도 사다리가 된다

꿈은 언제나 그저 따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손톱에 든 피멍도 내겐 꽃이다

쉼없이 서로의 삶을 동아줄로 엮어 부대끼며 일어선다

회색 벽을 허물며 오르고 또 오르면

가난한 손 서로 맞잡고 엉켜 사는 달동네

내 가난이 가장 풍요로웠던 하늘 아래 첫 동네

 

- 시집 『백지 도둑』(순수문학, 2012)

...............................................................

 

 담쟁이는 불의에 맞선 투쟁정신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강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흔히 비유된다. 담쟁이 하면 먼저 떠오르는 시가 도종환의 ‘담쟁이’이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알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다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덩굴식물인 담쟁이는 ‘지금’(地錦)이라고도 불린다. ‘땅을 덮는 비단’이라는 뜻이다. 뿌리가 1센티만 살아있어도 20m까지 뻗어 올라가는 담쟁이는 그 불굴의 수직욕구와 생명력이 사람들에게 힘과 위안을 준다. 빨간 벽돌집을 꼬물꼬물 기어오르는 연초록 담쟁이는 얼핏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그 뿌리는 굵고 줄기는 억세다. 게다가 서로 얽히고설켜, 이쪽 줄기가 끊어져도 저쪽 줄기가 버틴다. 가만 보면 젊은 새순이 가장 앞장서 길을 간다. 젊고 여린 새순이 방향을 잡고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는 모양새다. 그 때 묻지 않은 순정한 정신이 어떤 비바람도 이겨내며 전진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런 삶의 방식을 마케팅 심리학에서 ‘넝쿨 심리기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담쟁이 넝쿨은 90도로 경사진 벽을 오르면서 서로 잎사귀에 의지해 줄을 대고 서로를 이끌며 담벼락을 기어오른다. 암벽등반 하듯 앞서 오른 잎이 뒤따라 올라오는 잎에게 동아줄 같은 줄기를 내밀면서 오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인가. 절망의 벽 앞에서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올라가다보면 그 어떤 불의나 부당한 권력, 가난과도 싸워 이겨낼 수 있으리라. 제 아무리 완강한 벽이라 하더라도 담쟁이는 차근차근 제 길을 갈 것이며 끝끝내 그 담벼락을 넘어서고 말 것이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김숙경 시인도 ‘가난이 가장 풍요로웠던 하늘 아래 첫 동네’ 시절, 담쟁이에서 용기를 얻었다. ‘손톱에 든 피멍도 내겐 꽃이다’ 여기며 꺾이지 않는 힘으로 그렇게 담쟁이와 함께 ‘그해’를 통과했던 것이다.

 

 

권순진

 

 

출처 : 한국스토리문인협회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본문, 아래 해설에 있는 시 둘다 다시 읽어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