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2

소녀의 기도/고보희

향기로운 재스민 2012. 9. 24. 07:44

 

 

 

 

 

소녀의 기도/고보희

 

 

 

오십여년 전 결혼식 날

신랑으로부터 소녀의 기도(바다르체프스카)

LP 판을 받았다

신부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12월 중순 신혼 첫날

내 체온을 탐내는 연탄불 꺼진 방

 

 

결혼에물은 금반지 석 돈

이삿짐 옮기기 십여 번 그때마다 깨질세라 솜이불

갈피에 넣어

어느 금은보화보다 정성스레 간직헀다

석돈 반지는 일 년을 못 넘기고 팔았으니 결혼 선물은

그것이 전부였다

 

 

염원하던 전축 윗목에 놓던 날

첫아이 여섯 살 때

음악을 들으려고 LP 판을 꺼내는 순간

눈앞에 슬픈 사건이 쾅

반듯햬야 할 것이 활모양 휘었다

이불 속에서 바가지 등이 된 소녀의 기도

 

 

*'북어는 오늘 배고프다'  고보희 시집 중에서....

 

( 78세인 고보희 시인님의 인생 일기 한편이었다)

 

 

 

2012. 09. 24   향기로운 재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