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곤충류, 어패류, 동물들의 이름을 가령 종달새, 굴뚝새, 파리, 물거미, 달이, 소라고동, 바다사자, 고양이 등)
2. 바람과 쉼 없이 마주하라.
(동서남북 바, 산바람, 의인화한 바람까지도)
3. 기후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라.
(안개, 폭풍, 빗소리, 구름, 4계절의 풍경 등)
4. 사람들의 이름을 항상 불러 보라.
(옛 사람이든 오늘 살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
5. 무엇이든지 뒤집어서 생각하라.
(발상의 전환을 위해 가령 열정과 불의 상징인 태양을 달과 바꾸어서 생각한다든지
또 그것을 냉랭함과 얼음의 상징으로 뒤집어 보는 것이 그 방법
그리고 정지된 나무가 걸어 다닌다고 표현한다든지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상식을 비상식으로 구상을 추상으로
추상을 구상으로 유기물을 무기물로 무기물을 유기물로 뒤집어서 생각하라.
이것이 은유와 상징 난센스와 알레고리의 미학이며 패러독스에 접근하는 길이다)
6. 타인의 경험도 내 경험으로 이끌어 들여라.
(어머니와 친구들의 경험, 혹은 성인이나 신화 속의 인물들의 경험이나 악마들이나 신들의 경험까지도)
7. 문제 의식을 늘 가져라.
(어떤 사물을 대할 때나, 어떤 생각을 할 때 그리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적 현상을 접할 때 이것이 시정신이며 작가 정신이다)
8.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안 보이는 것까지 손으로 만지면서 살아라
(이 우주 만물 그리고 지상 위의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은 다 눈과 귀, 입과 코가 달려 있으며 뚫려 있다고 생각하라. 나뭇잎도 이목구비가 있고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도 이목구비가 있고 여러분이 매일 무심코 사용하는 연필과 손수건에도 눈과 귀 입과 코가 달려있는 사실을 생각하라. 우주 안에선 모든 것이 생명체이다)
9. 문체와 문장에 겁을 먹지 말아라.
(하얀 백지 위에선 혹은 여러분 컴퓨터 모니터에 들어가선 몇 십 번을 되풀이 해 자유자재로 문장 훈련을 쌓아가라)
10. 고독을 줄기차게 벗삼아라.
(고독은 시와 소설의 창작에 있어서 최고의 창작환경이다. 물론 자신의 창작을 늘 가까이 읽어주며 충고해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시를 쓰는 자세
1. 기록하기를 주저하지 마라. 다산은 성공의 비결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기록하라는 것이며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는 말이다. 사람의 느낌은 순간적으로 왔다가 간다. 섬광처럼 빛나고는 사라진다.그러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당시의 상황에서 느끼는 점을 남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2. 여행을 즐겨라. 릴케는 시는 체험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생각은 경험의 산물이다.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시를 더욱 새롭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삶 속에도 새로운 것은 발견된다. 저는 아침 출근길에 여유가 있으면 수목원을 들린다. 언제나 같을 것 같아도 매일의 느낌이 다르다.
3. 첫 행에 정성을 다하라.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제목은 생명의 반이다. 나머지 반가운데 첫 행이 또 반이다. 그러고 보면 첫 행을 쓰고 나면 시는 이미 탄생된 것이다. 첫 행의 중요성을 인식하라. 사르트르는 책상 밑에 떨어진 종이를 줍다가 자기 손을 처음 자세하게 보았다고 한다. 그것으로 인해 손에 대해 생각을 한다. 나의 손이 너무 슬프다로 시작하여 어머니의 손과 광부의 손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의미의 확장을 가져와 자기의 속에 숨겨져 있던 감정을 표출하는 계기가 된다.
4. 글은 건축이다. 글을 쓰는 것은 집을 짓는 일과 같다. 일단 집을 설계하기 전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거나, 책을 통해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를 수 있다. 그런 다음 재료를 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기초가 튼튼한 집은 수 백 년을 능히 견딜 수 있다. 기초를 잘 다진 후 기둥을 세우고 창을 내고 벽지를 바르고 장식을 한다. 시도 이와 같으니 장식에 너무 매달리면 튼튼한 시가 될 수 없다.
5. 처음부터 시처럼 쓰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나라 음식의 맛은 숙성에 있다. 장맛이 음식의 맛을 좌우하지 않는가? 글의 영감을 얻었다고 바로 시의 형식에 맞추려 하지 말고 처음에는 산문으로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적어라. 그런 다음에 한 문장을 넓히고 다른 표현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6. 주제어를 숨기는 일이 중요하다. 사랑인가 분노인가를 시 속에 담으면 금방 이 시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주제어를 풀어 쓰거나, 변환 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7. 시작 감정은 어두울수록 좋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밤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별이 아무리 빛난다 해도 해보다 강한 빛을 낼 수는 없다. 인류의 공통적인 가치라 하여도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와 박애의 정신은 너무 많이 우리의 머리를 채워왔다. 따라서 이러한 기존의 관념은 자칫하면 외면의 대상이 된다. 뻔한 이야기라는 선입관을 주기 쉽다. 인간의 감정 표현은 8만 가지가 된다고 한다, 분노와 슬픔이나 실패의 경험은 매우 좋은 재료가 된다. 달콤한 맛은 그리 오래 기억에 남지 않으나, 쓰고 신 맛은 우리의 감각을 심하게 자극한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감정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 그 진가를 여러 사람과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가치를 획득하게 할 수 있다.
8. 하나의 명사와 네 개의 동사로 이루어진다. 주제는 하나로되 그것에 대한 행위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하나의 물체지만 갖는 모양은 보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이런 여러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사물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발견할 때 희열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읽고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것은 그런 의미로 보면 큰 점수가 주어질 수 없는 법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가는 대로 내버려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 멈추지 말고 계속 써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것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 글에 힘이 실리게 된다.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 쓰기를 회피하려는 목소리가 설자리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습작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묶어 보자
1. 방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 써보자. 10분, 15분, 30분, 시간을 정해 놓고 멈추지 말고 계속 적어가라. 2.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본다. 그러다가 중요한 기억이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간다. 만약 막히면 '기억이 난다'라는 첫 구절로 다시 돌아가 계속 적어 보라. 3.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을 하나 골라서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적어 보라. 다음에는 같은 것을 두고 싫어하는 시각으로 새롭게 써 보라. 그런 다음 이번에는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글을 써 보라. 4. 한 가지 색만을 생각하며 15분 동안 산책해 보자. 산책하는 동안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서 그 색을 발견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자. 그리고 이제 노트를 펼치고 15분 동안 적어 보라. 5. 오늘 아침 당신의 모습을 적어 보라.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 잠에서 깨어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무엇을 보았는지 등등 가능한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6. 당신이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자. 그곳은 주로 어떤 색으로 채워져 있는가?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가? 또 어떤 냄새가 나는가? 7. '떠남'에 대해 써보자. 내용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으며 단지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8. 당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9.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10. 당신이 몸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써 보라. 11.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묘사해 보라. 12.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적어 보라.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금물이다. 실제로 있는 그대로 적어라. 솔직하고 상세하게 접근해야 한다.(수영하기, 하늘에 떠있는 별, 당신이 경험했던 가장 무서웠던 일,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장소, 性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 된 동기 혹은 최초의 성 경험, 신의 존재나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개인적 체험,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나 문구, 육체가 가진 한계와 인내, 당신이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 13.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아무 데나 책장을 열고, 마음에 드는 한 줄을 골라 적은 다음,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서 글을 써보자. 쓰다가 막히면 첫 줄을 다시 적은 다음 새로 이어서 쓴다. 다시 쓰는 글은 좀 전에 썼던 글과 완전히 방향이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써본다. 14. 당신이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 나태함과의 싸움 텅 빈 노트 또한 에고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내버려 두라. 말할 때는 오로지 말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회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만약 당신이 열심히 창조적 목소리를 내려는데 편집자가 성가시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어 작업을 진행시키기 힘들다면 편집자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를 한번 적어 보라. 편집자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편집자를 무시해 버리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 바로 당신 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만일 내가 겁을 낸다면, 내가 쓰는 글도 왜곡되어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 내면의 잠재능력에 가 닿아라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 시인과 시는 다르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 당신은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 논리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수용하라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수용적이어야 한다. 개미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안에서 공통된 다른 하나를 볼 수 있는 폭넓고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은유는 이러한 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종교적이다.
*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글을 쓸 때 모든 것을 풀어 주라. 글 쓰기는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대로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 강박증의 힘을 이용하라 작가란 종국에는 자신의 강박증을 쓰게 되어있다.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을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 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일종의 회피이고 게으름이다.
*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우리의 삶 모든 순간 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일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한 모금의 물, 식탁에 묻어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세부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것과 같다.
* 케이크를 구우려면 당신 마음에서 나오는 열과 에너지를 첨가하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라. 열을 가하다 중단한다면 그것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 글 쓰기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시를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주고, 많이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마음 속에 무수한 길들이 열리는 법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파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원한다면 파리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파리와 결혼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 글 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기 체면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한 방편이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작품에 대해 보내는 칭찬에 기대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 당신의 깊은 꿈은 무엇인가? 소망들을 글로 적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가운데에 그 소망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 때론 문장 구조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사고 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 당신이 결국에는 인간이 만든 언어 체계 속으로 돌아가겠지만, 당신과 이 세상을 이루고 지탱하며 관통하고 아우르는 그 근원적인 큰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
* 말하지 말고 보여달라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의 작가라는 사실을 잊고 비판적인 편집자 행세를 할 필요는 없다.
* 그냥 꽃이 아니라 그 꽃의 이름을 불러 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 사물의 존엄성을 지켜 주라.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꽃' 대신 '제라늄'을 말할 때 당신은 현재 속으로 더 깊게 뚫고 들어가게 된다.
* 평범과 비범 우리는 세부묘사를 대단하지 않게 여기거나 개미나 파리 같은 것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부묘사와 우주는 서로를 변화시켜 준다.
*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작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를 원한다.
*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우리는 앞서 있었던 모든 작가들의 짐을 나르고 있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사랑에 빠진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받는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 동물적인 감각으로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바로 항상 길을 잃어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 자기 마음을 믿어라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 있는 훈련이 따라야 한다. 자신의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 변덕스러운 마음을 길들이는 법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 작업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들이 백 가지도 넘게 나를 유혹하는 것을 항상 느낀다.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 '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오히려 당신을 혼자가 될 수 있게 해준다.
* 성,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우리는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라.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를 다루기가 벅차다면, 이렇게 해보라. * 무엇이 당신 몸을 뜨겁게 만드는가? * 성과 관련된 과일 이름을 아는 대로 모두 적어 보라. *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 당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성적인 곳은 어디인가? * 당신이 맨 처음 성애를 느꼈던 기억은?
* 글 쓰기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라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우리가 글쓰기의 심장 안에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앞으로, 더 멀리 당신이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충분히 자신을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에고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 인생에 대한 연민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치게 할 것이다.
*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사물은 그냥 있는 것이다. 당신이 글을 쓰기 원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라. 그러니 계속 쓰라.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하는가?'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 작가로서 살아남는 길 작가로서는 강하고 용감하지만 한 인간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무기력하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위대한 사랑과 생활인으로서 우리 등에 달라붙은 불명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지만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거나, 자동차를 저주하거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매도하지 말라. 책상에서 시를 치우고 부엌으로 돌아가라.
*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라 자기가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다.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 방랑을 위해 들판으로 나가라 한번쯤은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분별력을 놓아버린 천치가 되고 낯선 들판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를. 당신이 말을 겁내는 사람이라면, 말 한 마리를 사서 말과 친구가 되어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 시간이 작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리라. 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살아있는 존재를 향해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예정되어진 운명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 외로움을 이용하라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 더 큰 자유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라 당신이 내면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당신은 당신으로 된다. 당신이 집에 가는 이유는,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뿌리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뿌리가 묻힌 곳에서 발견되는 고통을 견디기 싫어서 그것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도망치려 한다. 단 한 사람과 접촉하고 교제하면서도 인간 전체에 대한 연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독자에게 당신 심장 더 깊은 속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 사무라이가 되어 글을 쓰라 만약 그 시에 한 줄이라도 에너지가 있다면, 그 한 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버려도 좋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 다시 읽기와 고쳐 쓰기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전사, 사무라이가 되어야 한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낙오 봉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바쳐라 …… 술 마시고 싶을 때 한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아라.”
노래를 듣다가 문득 생각한다. 시야말로 목숨을 걸고 써야 한다는 것을. 한편의 시가 죽어 가는 이를 살려낸다고 한다. 죽어 가는 이를 살려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 없어서는 안된다. 시는 정말이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시 초겨울 바람에 부르르 떨고 보니 시 쓰고 싶다 그 옛날 콜레라에 걸린 아이처럼 덕석말이로 마당 한가운데 누워 피가 질질 흐르도록 덕석만 할퀴다가 제 몸 위를 소가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에 다시 놀라 까무러치기도 하다가 끝내는 온통 땀에 젖은 작은 몸으로 그 무서운 병을 툴툴 털고 일어나 히히 웃는 마치 그런.
2
서정의 특성은 개성적이라는 데에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도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게 나타난다. 노동자로서 보는 달과 자본가로서 보는 달은 느낌이 다른 법이다. 또한 같은 노동자라 할지라도 내성적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과 외향적 성격을 갖고있는 사람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의 특성이 개성적인 것만큼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는 것이다. 통일에 관한 시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통일을 생각하는 느낌이 그렇게나 비슷한지. 진달래가 어떻고 백두와 한라가 어떻고 등등. 자신의 생활 속에서 깊이 있게 통일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서정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시를 관성적으로 쓰는 탓이다.
3
흔히 시평을 읽으면 ‘사상성’이라는 개념이 눈에 띈다. 시에서 ‘사상성’이란 무엇일까? 노동자의 생활을 다루면 사상성이 충실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상성이 불투명한 것인가? 사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문제는 생활 속에 담긴 사상에 있다. 다시 말해 생활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을 어떻게 하면 올곧게 끄집어내어 정서적으로 잘 표현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것의 성공 여부가 ‘사상성’ 운운으로 되어야 한다.
4
시에 있어서 상징어는 생동감을 보장하기 위하여, 비유는 말하고 싶은 바를 가장 적절히 표현해내기 위하여, 그리고 반복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시각.청각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내 독자를 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좋은 시일수록 이러한 시적 장치가 잘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5
시적 정서란 무엇일까? 시인이 생활 속에서 한 계기를 만났다 치자. 그래서 충동을 느꼈다 치자. 외치고 싶은 충동을, 춤이라도 추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치자. 그럼 그 정서적으로 느낀 충동이 시적 정서일까? 맞는 말이다. 반쯤은 맞는 말이다. 반쯤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충동의 삭이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삭인다는 것은 그 충동을 자기의 것으로 되게 하는 것이며 모두의 것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삭임이 끝난 그 어떤 정서적 표현이어야 비로소 ‘시적 정서’가 아니겠는가.
6
시에서 생활 반영의 진실성은 어떻게 구현될까.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듯이 옮겨놓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시인 자신이 내화시켜낼 수 있어야 그것은 가능하다. 내화시킨 뒤의 정서적 토로라야 생활 반영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7
우리가 흔히 현실을 왜곡시켰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잘못 그렸다는 것만은 아니다. 넓게는 생활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했다거나 생활의 본질이 아닌 이러저러한 현상만을 나열하는 식으로 그린 것은 물론 현실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것까지를 일컫는다. 그러한 것은 모두 사람의 요구와 지향을 묵살하는 데 공통점이 있다. 우리 현실 속에서 자연주의적 경향은 그러한 것이다. 우리가 현실을 폭로하는 데 있어서도 ‘대안없는 폭로’를 우려하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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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차적으로 형상화의 높이를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내용과 형식의 대중적 성격을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의 평가는 사상의 관점이나 주제의 방향이 얼마만큼 서정 속에 적절히 녹아들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모두 시 속에서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9
시들을 보면 종종 생각한다. 어떤 시는 절실한 문제를 형상적 비유에 의해 더욱더 선명하고 절실하게 문제를 전해주는 데 반해 또 어떤 시는 절실한 문제를 형상적 비유의 실패로 인해 더욱더 불투명하고 왜곡되게 문제를 전해주고 만다는 점이다. 왜일까? 창작적 사색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사상학습이 부족한 결과로 자신 스스로가 생활과 사상의 연결 끈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한 탓일 터이다.
10
담시와 서사시는 어떻게 다를까. 서사시가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보여준다면 담시는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만을 잘라내 보여준다는 데 그 차이점이 있다. 또한 서사시보다는 보다 더 서정적 측면을 담시는 가지고 있다. 시인의 정서가 보다 더 직설적으로 관통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뛰어난 담시 하나 보고 싶다.
11
시에서 서정을 느끼는 주체가 독자임은 당연한 사실이겠다. 때문에 독자가 요구하는 정서에 깊이 파고드는가의 문제는 서정시에 있어서 관건이 된다. 독자의 구미를 파고들지 못한 시는 제 아무리 보기 좋은 시라 하더라도 실패작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그럼 독자 즉, 다수 민중의 구미에 맞는 내용이란? 다수 대중의 구미에 맞는 형식이란? 창작자의 고민은 한사코 거기에 있다.
12
시는 생활의 한 단면을 충격적으로 보고 느낄 때 쓰는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세상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은 느낄 그 충동이 시를 쓰게 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언정 종착점까지를 보장해 주진 못한다. 문제는 충동을 주는 그 대상의 구체적인 내면 세계까지를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했을 때 비로소 감동을 주는 시가 쓰여지는 것이다.
13
노래 같은 시들이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고 싶은 시 말이다. 그것은 일정한 흐름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느껴진 것이다. 깊은 뜻을 아우르고 있으면서도 쉽고 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터이다. 어느 한 시가 박자를 머리 속에 그려지게 만든다면 그 시는 명시가 아닐 수 없다.
14
정서적으로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 가뭄이 극성을 떤 적이 있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부들은 일손을 놓고 한숨만을 내쉬기에 바빴었다. 그런데 비가 왔다. 그때 TV에 비친 농부들은 비를 손바닥에 받으며 “아, 쌀이 옵니다”, “이것이 돈입니다. 지금 수천만 원이 내리고 있어요”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러한 농부들의 표현이야말로 정서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아, 지금 태양의 복사열을 받아 증발된 수증기가 구름을 이루어 떠돌다가 높은 곳에서 찬 기운을 만나 중력의 가속도로 인하여 물방울이 되어 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치자. 물론 농부라면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이 때의 표현은 생활정서로부터 벗어난 논리적 느낌?표현이 된다. 정서적으로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그런 것이다. 논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15
음악을 모르고서 시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시를 모르고서 음악을 안다고도 할 수 없다. 시와 음악은 쌍둥이와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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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응당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갈 때 보게 되는 비디오의 삼류영화를 보고도 울 줄 알아야 하고 저 숱한 뽕짝을 듣다가도 평펑 울 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소한 것에도 웃음을 풍기는 사람이 시인이다. 가족과 주위의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즐거움에도 함께 할 수 있어야 진짜 시인이다. 결국 시인은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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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가보면 가끔씩 벽시가 눈에 띈다.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목적으로, 학생운동에 관심이라도 가져줄 것을 호소하는 목적으로, 당면 투쟁의 의미를 정서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벽에 붙이는 것이다. 그런 벽시는 대부분의 경우 문예일꾼들이 조직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꽤나 세련된 시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못쓴 시라 하더라도 일반 학우들이 써서 붙인 것을 보고 싶다. 자신들이 그것을 즐기면서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문학예술의 주체와 향유자는 결국 민중 일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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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정시는 길이가 짧은가, 여운을 주기 위해서이다. 생활의 작은 세부를 통하여 전체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은 사실로 많은 것을 연상시켜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읽어볼수록 새로운 여운을 느끼게 하는 것이랄까. 그래서 그 감동적 충격을 오래오래 기억되게 만드는 것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시들을 보면 너무나도 길기만 함을 느낀다. 산만함이 감동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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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시인들은 ‘이야기 시’를 많이 쓰고 있다. ‘이야기 시’란 하나의 사건적인 이야기를 통해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적 주인공의 정서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빌려서 쓰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이야기 시에 등장한 인물은 시인이 뭔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잠시 빌려온 인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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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시라는 게 있다.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밝혀 주면서 사람들을 고무?추동해내는 시 말이다. 그런데 선동시라고 쓰여진 시들을 보면 하나같이 개념이 남발한다는 점이다. 개념이 남발하는 곳에 감동은 없는 법이다. 감동이 없는데 선동이 될 까닭이 없다. 문제는 생활정서를 얼마나 잘 선동적으로 보여주는가에 선동시의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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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장에서 낭송시를 들으면 흔히 느끼는 일이다. 비교적 형상화가 잘된 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을 때가 있고 시적 형상화에 서툰 그 어떤 시가 오히려 대중의 심장을 흔들어 놓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 것일까? 우선은 시적 호흡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호흡률을 가져야 대중은 꿈틀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시적 소리의 문제이다.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정서적 시어를 가져야 호소력을 얻게 된다. 우리의 시단도 낭송시의 영역을 개척해야 될 때가 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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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된 시들을 보면 객관적 실재를 묘사하면서 그 속에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시인 자신의 정서적 토로와 객관적 실재의 묘사를 결합시켜내는 방식으로 시를 쓴다는 말이다. 이것도 시를 쓰는 한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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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현장을 목격했다.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해야 했다. 호흡은 호흡대로 가빠져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손을 심장 위에 올려놓고 길게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며 시를 쓴다면 나는 필시 짧게 끊어치며 넘어가는 반복적 형식으로 시를 쓸 것이다. 그 상황을 옳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될 것 같다.
24
생활을 그림처럼 그려내는 시들이 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선명하게 그려내는 것도 있고 반대로 두리뭉실하게 굵게 그려낸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시적 대상을 생동감 있게 묘사해내는 장점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머리를 스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시가 생활의 한 단면을 정서적으로 느껴서 그것을 안으로 삭인 결과로 일반화시켜내며 또 그 결과로 정서적 토로를 하게 되는 것이 서정시의 근본특성이라면 위와 같은 방식은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다시말해 생활은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내지만 서정시라는 근본특성은 잘 살려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함께 든다. 그림 같은 시 중에서도 감동을 주는 경우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서정의 특성을 비교적 잘 살렸기 때문이며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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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를 배우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민중들의 요구와 지향을 내용으로 배우고 민중들의 호흡법?말법을 그 형식으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시적인 기교를 연마할 수 있어야 한다. 시적인 기교를 말하고 싶은 바를 가장 적절히 표현해 내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서 우리만의 시적 재부로 내려오고 있는 바를 습득해내야 한다. 시를 배운다는 것은 일종의 그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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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시는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이다. 포악한 자에게 비웃음을, 간사한 자에게는 야유와 멸시를, 누리는 자에게는 통렬한 조소를 보내기 위한, 그래서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주기 위한 것이다. 최근 어느 한 시인의 풍자시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통쾌함은 느껴지는데, 왜 가슴 한켠에 아쉬움이 남는 걸까.” 새로운 실험적 형식으로 쓰여진 그 풍자시는 다름아닌 서정성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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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80년대는 정치적 격변기였다. 그래서일까. 80년대 시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전투적 서정시가 많이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내용만을 보아도 그렇다. 감상적인 내용보다는 과학성을 앞세운 내용이 훨씬 더 많았다. 이제 90년대이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시단은 80년대의 관념적인 경향을 극복하고 서정시의 본령을 찾아나가자는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서정을 제대로 찾아나가는 것이 아닌 본 뜻도 없는 잘못된 서정으로, 정서적 표현으로 흐르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 정서적으로 표현되어야 서정인 것이지 요즘의 풍토처럼 그럴싸한 미사여구식의 시가 남발하는 것은 서정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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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교포가 왔다. 그가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우리 문학을 일어로, 영어로 번역해 많이 많이 소개하겠습니다. 밖에 있는 우리가 할 일이 그런 것인 거 같아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소설은 몰라도 시는 전문성을 요구할 듯합니다. 우리의 시어를 외국어로 옮기기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정말이다. 우리 말처럼 표현이 풍부한 말도 드물다. 더구나 시란 게 백 마디의 말을 한 마디로 줄이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이고 그 한 마디의 표현일지라도 그 표현에만 맞는 고유한 색깔이 있는 것이어서 그것을 표현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었다. 이를테면 운율을 살려내기 위한 ‘줄임말’은 얼마나 많으며 반대로 ‘늘임말’은 얼마나 많은가. 표준어와 사투리의 다른 맛은 어떻게 할 것이며 현재 쓰는 말과 옛말의 다른 맛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29
오늘 나는 결혼식장에서 축시를 읽었다. 그런데 풍자적 요소를 도입한 축시였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다. 돌아오면서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축시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신랑?신부에게 미안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축시는 응당 묵직하고 밝은 것이어야 한다. 순결성과 숭엄성이 흐르는 것이어야 한다.
30
우리는 흔히 시인이 말하고 싶은 바를 정서적으로 토로한 시들을 접하게 된다. 호수가의 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방식으로 쓴 것도 있고 태풍을 동반한 바닷물처럼 격정적으로 다가오는 식으로 쓴 것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러한 것들을 적절히 결합하여 굴곡을 이루는 방식으로 쓴 시들도 많다. 서정시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려내는 이러한 방식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방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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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한 선생이 말하기를 “평론에 그만 관심 쏟고 창작에 더욱 더 매진하시지요. 창작자가 갖는 고집은 중요한 재산입니다.” 내가 그 선생에게 대답하기를 “어디 우리 풍토가 그러나요. 비평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엿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맞는 말이에요. 창작자가 가져야 할 창작적 고집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겠지요. 비평을 엿보다 보면 작품을 관념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이나 그런 것 같아요.” 비평을 엿보면 엿볼수록 관념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넌센스이다. 우리 시대의 넌센스.
시 쓰기, 삶의 터전에서부터 출발하자
안 상 학
향토시를 알아야 시를 안다
지역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으면 나는 버릇처럼 중국의 장계를 들먹입니다. 그는 단 한 편의 시를 남겼을 뿐인데도 아주 유명한 시인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풍교야박(楓橋夜泊)>이 바로 그 시입니다. 내친 김에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月落烏啼霜滿天 달 지고 까마귀 우니 고향 하늘 쪽은 서리만 가득하고 江楓漁火對愁眠 풍교 다리 아래 고기잡이배의 불빛은 잠 못 들어 하네 故蘇城外寒山寺 고소성 저 멀리 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만 나그네 뱃전에 들려오네
내 멋대로 풀어 써 보았습니다. 내용인 즉 그렇습니다. 글쓴이는 혼란한 세월 어쩌다 고향을 떠나서 이리저리 떠돌다 한산사가 있는 근처 풍교 다릿목에 배를 대고 하룻밤 묵게 됩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뱃전에 나갔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타관의 객고가 더할수록 고향을 그리는 정한이 깊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매력이 듬뿍 담긴 시입니다. 이 시는 한산사가 있는 근처에 시비로 서 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시를 애송하고, 또 이 시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서 각종 기념품에 새겨 넣어 팔기도 합니다. 시비의 형태나 글씨를 그대로 살려서 만듭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중국관광을 다녀 올 때 더러 여행가방에 우겨 넣어 오는 것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한문을 쓰는 중국과 우리 나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진 시이죠. 이렇게 되기까지는 우선 이 지역 사람들이 이 시를 아끼고 사랑한 결과라고 나는 봅니다. 물론 시적 성취도가 뛰어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우리 안동에도 시비가 여럿 있습니다. 역동 우탁 시비는 역동서원 앞에, 농암 이현보 시가비는 도산서원 입구에, 퇴계 이황의 '청량산가'는 청량산 입구에, 육사 이원록 시비는 안동댐 민속박물관 조경지와 그의 고향 마을 원촌에 있습니다. 신승박 시비는 영호루 숲길에 있고 한양명의 '사향시비'는 임동 중평신단지에 있습니다. 이 밖에도 몇 기의 시비가 더 있지요. 어쩌면 지역에 비해 시비가 너무 많은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시비들 중에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결코 장계의 시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드라마틱한 인생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역사성이 없는 것도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랑하며 남들에게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최근 이육사 문학상이 다른 지역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심히 못마땅합니다. 물론 이육사가 안동 출신이기 때문에 기득권을 가져야 한다는 협소한 시각으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육사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단체가 오래 전부터 활동을 했고, 또 이육사 문학상 제정을 위한 준비 모임도 여러 차례 한 줄 아는데 결론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 더 생긴다고 해서 그리 탈 날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일이 더딘 점에 대해서는 공적인 활동 단체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문학상을 안동에서 제정했다고 해도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문학상 난립은 오히려 그 이름의 주인공을 욕되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느림보 활동으로는 무슨 일을 꾸미든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이육사 생가터를 묻고 그 위에 시비로 짓눌러 놓은 것이라든지, 한적한 시골 마을인 시인의 고향에 어울리지도 않는 기념관을 거창하게 짓는 것도 재미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 많은 시비 하나 자랑하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 자꾸만 일을 벌이기만 하는 것은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시비 때문에 건 시비지만 시비는 가려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여성으로서 힘겨운 살림살이를 피해서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시를 배우고, 써서 무슨 낯을 내려고 온 것도 아닐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신 것은 아무래도 시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시에 대한 소양과 관심이 있는 것이겠지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중 지역문학작품에 대해서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요. 지역문학보다는 서울 중심의, 유명한 문인들의 작품을 선호하고, 또 많이 찾아서 읽지는 않는지요. 그래요. 저는 그것이 나쁘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아닙니다. 취향도 다르고 선호도도 저마다 다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역에서 생산된 시와 시인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시를 배우려는 안동 지역의 어머니에게 왜 하고 많은 문학작품 중에서 지역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할까요. 그것은 단순합니다. 삶의 기반이 같기 때문입니다. 같은 자연환경과 인문지리적인 조건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의 시인들이, 혹은 출신 시인들이 어떻게 우리 안동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가. 우선, 이것을 눈여겨보는 것이 시를 배우는 지름길이 아닐까 합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동창회 하나쯤은 참석하고 있을 겁니다. 어떠세요.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동창회를 가장 선호하는 것은 아닌지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함께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는 순수한 어린이의 세계였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깨벗고 서로 나누고 다독이고 더러는 싸우기도 하며 자란 기억은 여러분을 지금도 동심으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 만나도 여자 동창생한테서 머시마가 어떻고 하는 막말을 듣습니다. 그래도 하나 기분 나쁘지 않거든요. 아마도 그것은 한 고향에서,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지역 출신의 시인들이 쓴 작품에는 우리가 아는 산천과 사람과 삶이 녹아 있기 마련입니다. 시가 곧 삶의 반영물이기 때문이지요. 또 여타 장르에 비해 삶의 진정성과 인간에 대한 애정, 세상의 희망이 진솔하게 들어 있습니다. 시를 배우려는 단계에서 같은 지역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 시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이육사 시인의 고향 마을인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앞에 흐르는 강이 떠오릅니다. 설사 이 강이 낙동강이 아니고 압록강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강의 이미지는 이미 어린 시절 발가벗고 뛰어 놀던 고향의 강으로 시인의 미의식 속에는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안동 출신이라면 어디 가서 무슨 강을 보더라도 우리가 보고 자란 낙동강과 자꾸만 결부시켜 보게 되지 않던가요. 낙동강은 이런데 섬진강은 이게 좀 그래, 낙동강은 저런데 금강은 좀 어떻고 하면서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저도 이 시를 보면 자꾸만 그의 고향 마을의 강을 떠올리곤 하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길이 이어졌다 대를 이어 엮은 마음과 마음을 닦아 사람들 골목 가득히 인정을 반짝였다 눈이 부셨다 손을 맞잡았다 아름드리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아 울담을 뛰어 넘어온 숱한 정이 빛났다. -조영일. 「솔뫼리 사람들 6」.1998.
여러분들이 시를 배우는 조영일 시인의 시입니다. 솔뫼리는 다름 아닌 조영일 시인의 고향입니다.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곳이지요. 우리는 이 시를 이해하기에는 누구보다 빠를 것입니다. 자 생각해 볼까요. 이 시는 과거형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적어도 옛날에는 솔뫼리가 서로 도와가며 마음을 나누며 인정스럽게 살았다는 이야깁니다. 담장 너머로 음식을 나누며, 감나무 가지 하나쯤은 넘어와도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맞잡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과거형으로 쓰여졌을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만큼 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이 시가 쓰여진 1998년 이전에 그곳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 수가 있잖아요. 맞아요. 그곳에는 안동대학교가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지금은 학교를 중심으로 상가와 하숙촌, 독서실 등이 들어차서 솔뫼리라는 농촌 공동체가 붕괴된 것입니다. 시인은 그 빛나던 과거를 생각하며 이 시를 쓴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상가를 차려 이웃과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 팝니다. 자본이 끼여들면서 인정이 사라지고 만 것이지요. 그래서 시인의 눈에는 현실이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아름다움에 민감한 시인은 그 빛나던 과거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안동 사람이 아니고 대구 사람이라면 우리가 아는 만큼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지역의 시인들은 어떻게 삶과 싸우면서 시를 만들고, 어떤 자연환경에서 그 이미지를 찾아서 녹이고 있나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앞으로 시를 쓰게 되면 역시 안동의 지역성을 담는 시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역에서 생산된 작품이 여러분의 창작에 얼마간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럼 지역성을 담기만 하면 좋은 시가 될까요. 널리 읽힐 수 있을까요? 하고 물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생각해 볼까요.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신경림. 「목계장터」.
이 시는 어떻습니까. 민중들의 끈질길 삶의 생명력과 고난찬 삶의 질곡을 이기고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돋보이지 않나요. 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생면부지 목계나루를 환하게 그릴 수 있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 시는 건강한 지역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으면서도 감동의 울림이 크게 다가오는 좋은 시입니다. 그럼, 지역성만 확보하면 좋은 시가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볼까요. 목계장터, 우리는 과연 이 곳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여기서 목계에 가 본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보세요. 목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 시는 감동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요, 목계는 신경림의 고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조그만 소읍이지요. 시인은 어려서부터 봐온 곳, 그곳에 모이고 흩어지던 사람들을 노래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여기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시인이 쓴 시여서 공감의 폭이 큽니다. 그러나 단순히 지역성만 노래했다면 이 시가 널리 애송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지역성과 향토성을 삭히고 녹여서 이 땅의 민중들의 보편적 정서에 맥을 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만의, 지금 여기만의 노래가 아닌 우리 모두의 노래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시적 완성도도 높고, 무엇보다도 감칠맛 나는 살아있는 운율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훌륭한 시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아무튼 지역성과 향토성이 물씬 풍기는 정서적 바탕 위에 이 땅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정서를 입힐 때 건강한 시가 태어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지역문학을 공부하라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물론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도 시적 수준을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지역성이란 게 그렇습니다. 인체의 물과 같은 것이지요.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물의 형상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녹아 있는 것이지요. 피와 살과 뼈에 말입니다. 지역성이 인체의 물과 같습니다. 시에 녹아 있는 70%를 만들어갈 때 좋은 시를 생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본 강과 하늘, 내가 만난 사람, 내가 아는 삶의 이야기, 뭐 이런 것으로 버무린 정서 말입니다.
시는 아름다움의 처음과 끝이다
지역성을 이기면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이 아름다움의 문제입니다. 시가 아름다운 것은 시를 쓰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표현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삶,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시는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삶 그 자체를 노래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움을 누릴 수 없는 데서 태어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드는 사람은 몰라도 나는 사람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의 가치를 모르다가 가까이 없으면 그 사람의 가치는 물론이고 숨소리, 버릇 하나까지도 보고 싶고 그립고 생각나기 십상이죠.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 그 슬픔은 훨씬 커지는 것 같습니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 볼 줄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예前엔 미처 몰랐어요」1925. 12
개 눈에는 똥밖에는 안 보인다고 했던가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마냥 즐겁게만 지내다 보니 그런가보다 했겠지요. 그러다가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겠지요.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사랑을 나누던 밤에 쓸쓸히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거지요. 자, 이쯤 되면 죄 없는 달이 원망의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달덩이 같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때만 해도 달이 뜨는지 지는지 알게 뭡니까. 금이야 옥이야 보듬고 쓰다듬다가 어느 날 문득 혼자가 되고 보니 비루먹은 보름개처럼 달보고 짖을 수 밖에요. 내 사랑 돌리도(돌려줘), 내 사랑 돌리도, 하며 울 수 밖에요. 술 먹고 맨날 노래 부른다는 것이, 허구헌날 -귀밑머리 쓰다듬던 맹세는 길어도-어쩌고 하며 가슴 칠 밖에요. 김소월인들 예외는 아니었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갔지요, 허구헌날 술에 빠져 탄식하고 살다보니 가슴은 점점 아파오지요, 어디 하소연 할 데나 있겠어요. 답답한 가슴 치다가 또 몇 날이 갔겠지요. 아픔도 곰삭아 지칠 대로 지칠 때쯤에서야 정신을 차려보니 참 달도 무진장 밝았겠지요. 문득, 달덩이 같은 애인의 얼굴이 휘영청 밝은 달에 겹쳐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시인은 옳다구나 싶었겠지요. 그래, 저 달에게라도 내 마음을 전해보자. 하고 죄 없는 달을 끌어들여 사랑을 잃은 외로운 심정을 찬찬히 노래한 것이겠지요. 적당한 대상을 찾은 셈이지요. 시인은 참 아름다움에 약한 사람인가 봐요. 사랑하는 사람도 물론 아름다웠겠지만 그 사람을 노래하는데 적절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들일 줄 아는 것이지요. 이 시에서 그 대상을 달이 아니고 늑대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봄가을 없이 밤마다 우는 늑대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늑대가 암만 울어도 귀기울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늑대가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후후. 김소월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늑대를 사랑하는 사람에 비유했겠습니까만, 아름다운 사람을 잃은 슬픔을 아름다운 달에 비유해서 대화를 나누는 시인의 모습 또한 아름답지 않습니까. 답답한 가슴을 달래줄,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어줄 저 달이 없었다면 아마도 김소월은 미쳐 버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랬으면 혹 모르죠. 이렇게 위의 예처럼 시를 썼을 지도. 하여간, 김소월은 아름다움이 뭔가를 아는 사람이었겠죠. 그런데 둔한 사람은 둔한 사람이었나 봐요. 달이 밝은 줄, 달이 설움인 줄 뒤늦게야 알았으니. 아니, 어쩌면 아예 달에 대해서 몰랐으면 더 좋았겠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다독거리며 아름답게 살았으면 말이에요.
세상에 아름다움이 어찌 연인과의 사랑뿐이겠습니까. 가족간의 사랑이라든지, 이웃간의 사랑이라든지 서로 나누고 걱정하고 다독이고 힘 보태어 살아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人家 멀은 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백석「寂境」1936
적경, 어떤 한갓지고 조용한 마을에 사는 어느 새신랑의 아내가 첫아이를 낳았나 봅니다. 여기엔 어떤 복선도 내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축하할 하객이라고는 까치밖에 없는 한적한 산골에서 입덧을 하여 살구를 잘 먹던 여인이 아이를 낳았고, 혼자 사는 홀아비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에서도 어떻게 알았던지 산국을 부조하려고 끓이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이렇게 보면 시도 참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이죠. 혹, 모르죠. 이런 것도 시라면 나도 쓰겠다고 자신 만만해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곰곰 새겨보면 무언가 가슴 짠한 감동이 스멀거리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얼핏 보면 하루 일을 틈틈이 메모해 둔 것 같은 데 무엇이 이렇게 가슴 밑바닥부터 저며 올까요. 도대체 여기에는 무슨 아름다움이 있기에 그럴까요. 비밀은 행간에 있습니다. 시인이 언어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드러난 이미지에 속속 배어 있는 삶의 아름다운 숨결이 숨어 있지 않습니까. 자, 시대는 백석이 이 시를 쓴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요. 일제의 침탈이 극에 달했고, 민족은 사분오열, 뿔뿔이 먹고살기 위해서 고향을 등지고 대도시의 공장으로 만주로 흘러갔겠지요. 더러는 독립운동을 하러 떠나기도 했겠지요. 그럼 고향은 어찌 되었을까요. 대대로 이웃하며 피를 나누고 쌀을 나누며 살아온 터전은 나날이 빈집만 늘어만 갔겠죠. 정을 나누며 살던 이웃들도 각박한 살림살이에 서로 반목하는 일도 잦아졌겠지요. 한 마디로 공동체적인 삶의 기반이 와해되고 삭막한 천지가 되었을 거예요. 일제의 분열정책에 휘말려 같이 하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버렸겠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현실이 아름다울 리 있겠습니까. 그런 현실 속에서 쓰여진 시입니다. 어여쁜 아내가 귀여운 아이를 낳았건만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남편은 대처로 돈 벌러 갔거나, 나이가 어린 것으로 봐서 징용을 피해 조혼을 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남편은 부재중으로 나오지요. 시아버지도 혼자인가 봐요. 처량하게 미역국을 끓이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래도 다행한 것은 먼 이웃이지만 소식을 듣고 멀건 미역국이라도 끓여 보내려는 심정은 가슴 저미는 감동으로 전해 옵니다. 그러나, 이 시의 아름다움은 딴 데 있습니다. 시인은 어떤 게 아름다운 것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행간에는 이런 말이 있었을 겁니다. 비록 산골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아이를 낳으면 이웃에서 산파가 오고, 또 이웃 할머니가 와서 물을 끓이고, 한 쪽에서는 미역국을 끓이고, 남편은 사립짝을 돌며 두 손을 마냥 비비며 설레발 쳤겠지요. 또 어느 한 쪽에서는 그저 순산하기를 정화수 떠놓고 빌고 있겠지요. 다른 방에서는 아이들이 동생을 기다리며 귀신놀이를 했을 지도 모르고요. 이 얼마나 정겨운 풍경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풍경이 쓸쓸하기만 하군요. 그렇습니다. 백석 시인은 그 옛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아픔을 노래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언제나 모여서 그렇게 정을 나누며 서로를 걱정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시의 행간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은 그런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 시가 한층 감동으로 다가올 법한 것이지요. 말이 많다고, 아름다운 시어를 쓴다고 시가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평범한 메모 같은 시지만 거긴 절절한 아픔과 그리움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에 담겨 한층 빛나고 있지 않나요. 그래서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부족한 것이지요. 진솔한 삶의 진정성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시가 말장난이냐고요. 아니죠. 인간과 삶의 진정성이 담긴다면 단순한 언어놀음으로만 보기는 어렵겠지요. 자, 여러분, 아름다움이 2% 부족할 때 시를 읽으세요. 더 부족하면 직접 써 보세요. 아름다움의 갈증이 해소될 거예요.
오늘은 어머니 여러분 앞에서 하는 이야기니 만큼 여성이 등장하는 시로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를 이어서 한다면 이런 시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 이용악「北쪽」1937.
이 시도 '寂境'과 같은 시대에 쓰여진 것입니다. 앞의 시는 스산한 산골마을에 남은 여인 이야기고 이 시는 여인이 어딘가에 팔려간 낯선 타관의 이야깁니다. 이용악 시인은 이 시에서 어떤 아름다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아름다움이 지금은 없어서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한 것일까요. 어떤 즐거움이 사라져 시름으로 변해서 마음은 늘상 그 생각에 여념이 없다는 말일까요. 여기서 ‘고향’은 이용악 시인 자신의 고향인 평안북도 경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무렵 시인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풍문으로 고향 소식을 들었겠지요. 첫사랑의 여인일 지도 모릅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만주로 팔려간 것 같기도 하고요. 유곽에서 술을 따를 수도 있겠고, 몸을 파는 여인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 시에는 그런 여인이란 것을 은연중에 내보이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여인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로맨스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면 이웃하는 소꿉동무였을 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시인과 이 여인은 범상치 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죽하면 바람이 얼어 붙는 겨울에도 다시 풀리는 봄날에도 마냥 마음이 그곳에 가 있을까요. 시인은 여기서 그리워하는 것은 그 소녀와의 어떤 아름다운 추억 때문인 것 같아요. 남의 나라에서 공부를 하며 청춘을 낭비하고만 있는 것 같은 심정도 보이잖아요. 그런 자괴감은 그 여인의 소식에 더 몸서리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시인은 무얼 기다릴까요. 이 얼토당토 않는 현실의 불합리한 것의 끝은 어디일까요. 아마도 해방이 아닐까요. 그러면 팔려간 여인도 돌아올 수도 있겠고, 식민지의 지식인으로서의 괴로움에 벗어나서 다시금 그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겠지요. 그래요, 이 시도 그 여인과의 아름다운 기억이 없었다면 이렇게 짧은 몇 마디 말로 절절한 심사를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겉만 봐서는 아픈 것도 없고 괴로운 것도 없습니다. 그런 표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소한의 말로 큰 울림을 자아내는, 아름답고 즐거운 말을 숨기면서도 그랬을 것이라는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시가 된 것입니다. 시가 아니었으면 적국의 심장에서 어떻게 죄의식을 표현할 수 있었겠으며, 시가 아니라면 또 어떻게 마음의 짐을 부려 놓을 수 있었을까요.
아들이 나오는 올겨울엔 걸어서라두 청진으로 가리란다 높은 벽돌 담 밑에 섰다가 세 해나 못 본 아들을 찾어오리란다
그 늙은인 암소 따라 조이밭 저쪽에 사라지고 어느 길손이 밥 지은 자쵠지 끄슬은 돌 두어 개 시름겨웁다 ―이용악「강가」1939.
여러분 어떠세요. 이 시에서도 위의 시와 같은 감동이 잡히지 않으세요?
지금까지 시라는 몸의 7할인 지역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에 대해서 여차저차한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 안동 사람들이라는 점을 들어서 지역정서를 중심으로 그 위에 아름다운 시선을 곁들여 말씀 드렸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우리는 무수한 감동의 자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시에 기대어 마음의 짐을 부리며 한숨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게다가 진실할 수 있다면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입니다. 그 나머지는 갈고 닦아서 얻을 수 있는 기술적인 측면만 남아있을 겁니다. 그런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원고는 2003년 4월 15일. 안동문화원 <조영일 시창작교실> 특강 때 발표한 것입니다.)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정 일 근
슬픔이 시인을 만든다
나를 시인으로 만든 것은 ‘슬픔’이었다. 그 슬픔에 힘입어 처음 “시인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전 해 4월, 벚꽃의 도시 진해에서 나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었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에 제일 먼저 슬픔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생몰 연대는 길 위에서 끝이 났다. 그 날 아버지는 당신의 오토바이에 어머니를 태워 마산에 있는 친척 댁에 다녀오시는 길이었는데, 길 위에서 택시가 아버지의 생을 덮치고 뺑소니쳐 버렸다. 의식불명이 되어 안방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고통스럽게 숨을 쉬고 계셨지만, 군의관이었던 아버지 친구는 단호하게 사망진단을 내렸다. 사인은 뇌진탕. 마산에서 진해로 출발하며 아버지는 자신의 헬멧을 어머니에게 씌어주셨다. 그 헬멧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은 바뀌었다. 두 분 다 허공으로 솟구쳤다 도로 위로 내동댕이쳐졌지만 아버지의 헬멧이 어머니를 구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베푼 마지막 사랑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만이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가난도 찾아왔다. ‘?갚으러 오는 사람 보다 빚 받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아버지의 재산은 소위 ‘빚잔치’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TV도 사라지고 집도 사라지고 할아버지의 논과 밭도 사라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모는 남루한 일곱 평 반 홉의 양철지붕 아래로 숨어들었고, 어머니는 연탄 부뚜막에 나와 여동생을 재우며 밤늦게까지 술을 팔았다. 친구들이 TV를 보는 시간 나는 술을 날랐다. 친구들이 고급 양장의 동화책을 읽던 시간 나는 안주를 날랐다. 우리 반 고 계집애가 피아노를 치던 시간 나는 손님들이 술자리에서 부르던 이미자, 배 호, 나훈아의 슬픈 유행가나 군인들의 군가를 배웠다. 아버지가 없다는 슬픔이 나를 눈물 많은 아이로 만들었고, 그 눈물이 나를 세상에 대해 조숙하게 처신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내가 친구들보다 뛰어난 것은 도박과 교과서에 나오는 시나 시조 외우기였다. 두 장의 화투 ‘끗발’로 승자로 가리는 도박으로 친구들의 돈을 따면 만화방에 하루종일 처박혀 있거나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군만두를 사먹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시나 시조를 잘 외운다는 이유 하나로 담임 선생님에 의해 문예반으로 보내졌다. 문예반 지도 선생님은 나에게 시조를 가르쳤다. 뜻밖에도 경남도 대회에 참가할 진해시 대표를 뽑는 백일장에서 나는 장원을 했다. ‘산’이란 제목이었다. 고백하자면,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개근상 외에 처음 “상”이라는 것을 받은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월부로 안데르센 동화전집까지 사주시며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이 되어 서른 초반에 홀로 되어 남매를 키우는 슬픈 어머니의 삶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우리 가족이 해체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 시 속에 등장하는 것을 금기했다. 아버지는 그 때 내 손등에 났던 사마귀처럼 감추고 싶은 상처였다. 시인이 되어서도 그 상처가 시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내 시가 아버지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미워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너무 일찍 길 위에서 끝나버린 아버지의 생이었다. 나는 시로써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하며 “아버지의 달걀 속에서 내가 태어나고/내 달걀 속에서 아버지가 태어난다”고 썼다. 아버지란 큰 슬픔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사랑도 시인을 만든다
그대, 4월의 진해를 기억하는가. 눈이 귀한 남쪽의 부동항 진해는 4월이면 눈이 내렸다. 그 작은 도시의 인구수와 비슷한 벚나무들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4월이 오면 일시에 꽃을 피우고 바람이 불면 꽃잎을 눈처럼 뿌려주었다. 꽃이 피어서 질 때까지, 그 기간 동안 ‘군항제’란 잔치가 열렸다. 그랬다. 그것은 축제라는 현대성을 띤 이름보다 잔치였다. 내가 5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도천초등학교 주변에 만들어 진 벚나무 숲. 어른들이 ‘사쿠라 마찌’라 부르던 그 곳이 벚꽃 잔치의 장이었다. 잔치의 하객은 후줄근한 양복에 중절모를 쓴 남자들과 한복과 고무신을 신은 여자들. 그들은 장구와 꽹과리로도 최신 유행가의 가락을 맞추고 잔치의 끝은 언제나 술과 노래였다. 그리고 잔치가 끝나면 그 파장 위로 자주 봄비가 내렸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새로운 봄이 찾아올 때마다 도시의 증가하는 인구처럼 늘어나는 벚나무들은 더욱 화사한 설국을 만들고 잔치는 축제로 변했다. 분수탑 로터리에서 해군 군악대 연주와 의장대의 시범이 열리고 그 모습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축제의 밤이 찾아와 도심의 벚나무에 걸린 축등에 불이 켜지고, 밤하늘에는 현란한 폭죽이 터졌다. 흑백TV도 귀했던 시절, 4월이면 밤하늘에 상영되는 총천연색의 불꽃놀이를 보면서 유년을 보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생의 축복. 그 4월에 나는 첫사랑을 했다. 중3이 되었다. 나는 ‘눈물이 많던 아이’에서 ‘시를 쓰는 소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은 나는 사람들이 꽃이 피는 축제의 기쁨만 알 뿐, 꽃이 지는 축제 뒤의 슬픔은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축제의 즐거움 보다 축제가 끝난 뒤의 비 내리는 파장을 좋아했다. 축제의 항구도시를 찾아 밀물처럼 몰려온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만들어 놓는 또 다른 바다에서 나는 작고 외로운 섬이 되어 홀로 있는 것을 좋아했다. 바람에, 혹은 비에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슬픔의 시를 쓰는 소년으로 변해버려, 문예반 선생님은 나이보다 조숙한 눈물의 시를 쓰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시곤 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 진해남중은 바다가 보이는 산중턱에 자리한 하얀 건물이었다. 나는 교실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남쪽으로 열린 창문을 통해 빛나던 푸른 바다와 작은 섬들. 무시로 찾아오던 건강한 소금 바람. 봄이면 운동장 아래 보리가 누렇게 익고, 가을이면 등교길이 되던 코스모스 꽃길. 그 시절 내가 한 첫사랑은 나에게 기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S.영문 이니셜로 호명할 수밖에 없는 그녀. 그 때까지 내 감정의 전부였던 슬픔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기쁨을 채워주었던 소녀. 우리는 4월, 벚나무 아래에서 처음 만났다. 진해역 옆 청산학원 앞에 서있던 벚나무였다.(불행하게도 그 나무는 지금은 베어지고 없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단숨에 가까워졌다. 나는 시를 쓰듯 사랑의 편지를 보냈다. 그 동안 내가 썼던 어느 글보다 아름다운 글을 소녀의 주소로 보냈다. 그 편지들은 내 최초의 사랑시편들이었고 소녀는 최초며, 유일한 독자였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었던 우리는 그 때 아름다운 약속 하나를 했다.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알리는 7시 시보 소리에 맞춰 서로를 그리워하는 성냥불을 켜기로 했다. 성냥불을 밝히며 나는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모든 첫사랑이 그러하듯 나의 첫사랑도 이별로 끝나버렸다. 기쁨이 자리했던 가슴에 다시 슬픔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슬픔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의 슬픔처럼 나를 눈물 많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눈물대신 나는 시를 택했다. 사랑이, 첫사랑이 내 시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주었다.
펜혹이 시인을 만든다
펜혹이란 말이 있다. 컴퓨터 세대에게는 생소한 말일 것이다. 펜이나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의 손에는 반듯이 펜혹이 남아 있다. 오래 글을 쓰다보면 펜을 받치는 가운데 손가락에 혹 같은 굳은 살이 박힌다. 그것이 펜혹이다. 펜혹은 글쓰기의 상처다. 그러나 그 상처는 시인을 만들어 주는 통과의례와 같다. 나는 펜혹이 없는 시인의 손은 신뢰하지 않는다. 펜혹은 시인에게만 남는 상처가 아니다. 무릇 필업을 사는 사람들은 펜혹의 두께가 문학과 정신의 두께를 말해 준다. 대학시절 나는 내 손에 생기는 그 굳은 살의 이름을 몰랐다. 단지 보기 싫고, 불편했을 뿐이다. 어느 날 스승을 뵈러갔다 놀라운 모습과 조우하고 말았다. 스승은 칼로 펜혹을 깎아내고 계셨다.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스승의 방에는 작은 판 하나가 놓여져 있고 그 위에 2백자 원고지가 펼쳐져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스승은 그 때 ‘한국문학사’를 집필하고 계셨다. 푸른 칼날을 가진 연필깎이 칼로 가운데 손가락의 굳은 살을 베어내며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생 펜으로 글을 쓰다보니 장지에 펜혹이 생겼어. 자주 깎아내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어.” 스승의 글쓰기는 그 펜혹이 대변해주었으며 스승은 펜혹으로 글쓰기가 불편해지면 칼로 굳은살을 깎아내고 다시 글을 쓰셨다. 한 편의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스승은 얼마나 많은 당신의 살을 깎아내셨을까. 나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느꼈다. 스승의 펜혹은 산과 같은 모습이었고, 내 펜혹은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스승의 펜혹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글쓰기는 자신의 살을 깎아내는 고통이며, 그 고통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그 이후 펜혹은 내 습작시대의 화두였다. 나도 펜혹이 생기도록 시를 썼고, 펜혹을 깎아내며 시를 썼다. 진해시 여좌동 3가 844번지. ‘옛집 진해’에서 습작시대를 보냈다. 나는 대학생이었으며,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시대는 질곡의 80년대 초였다. 역사는 표류하고 있었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했다. 취하지 않는 밤이면 연습장 위에, 노트 위에 시를 적었다. 모나미 볼펜을 꼭 잡은 손가락에 펜혹이 자라고 새벽이면 머리 위에 파지가 무더기로 쌓였다. 그 시절 모든 문학도의 꿈이 그러했듯이 나도 신문사로부터 노란색 신춘문예 당선전보를 받고 싶었다.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고 그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한 글쓰기가 내 삶의 전부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학년말 시험을 포기하고 원고지 위에 피 같은 시를 써 투고를 했다. 그리고 오래 동안 집에서 당선 전보를 배달해 줄 우체부의 오토바이 소리를 기다렸다. 우체부는 찾아오지 않았다. 새해 첫날이면 진해의 6개 중앙일간지 신문지국을 돌며 1월1일자 신문을 빠짐없이 구해 당선자 명단을 확인하며 절망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대학생 현상문예에서 함께 활동했던 하재봉 안재찬(류시화) 안도현 등이 신춘문예를 통해 화려하게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더욱 절망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시를 쓰는 일이 나에게는 전부였다. 습작시대였던 대학시절, 나는 시만 썼다. 강의실에서도 고개 숙여 시를 썼으며 자면서도 시를 생각했다. 펜혹은 점점 커졌으며 그 상처를 자주 깎아냈다. 그리고 펜혹 덕분에 대학 4학년 겨울, 나는 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다. 문예창작과 첫 강의에서 나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책을 손으로 읽어라’고 가르친다. 펜으로 문학작품을 옮겨 적으며 손가락에 펜혹이 생기도록 문학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컴퓨터 시대라해도 누구도 펜혹이라는 상처가 없이 시인을 꿈꿀 수 없기에.
분노도 시인을 만든다
지난 91년 도서출판 빛남에서 묶은 내 두 번째 시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에 수록된 시편들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숨막히는 더위 고물 선풍기가 뿜어주는 더운 바람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적의로 괴로워했다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미성숙의 벽에는 우울한 시대의 푸른 곰팡이가 피고 숨어서 김지하의 시들을 몰래 읽으며 늘 혁명 전야처럼 살고 싶었다
적의, 우울한 시대, 김지하, 혁명 전야,.그런 말들과 함께 나의 성년식이 시작됐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담임선생님이 권유하셨던 K은행 입행 대신 대학진학을 선택했다. 가장인 어머니의 가계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셨는지 대학진학을 허락하셨다.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맨 처음 눈을 뜬 것은 시와 역사의 현주소였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만이 시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문예부장까지 지냈던 상고시절 진해에서 마산까지 버스 통학길이 지루해 가끔 박인환의 시들을 외웠고, 내가 가지고 있던 시집은 김소월 시집과 백일장에서 부상으로 받은 윤동주 시집, 단 두 권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오던 시집들을 읽고 쇠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시도 있으며, 시는 이렇게도 쓰는구나. 나는 비로소 작은 우물 밖을 나온 개구리였다. 그 개구리에게 시의 세상은 참으로 넓고 험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내가 받은 문학교육이 편협됐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런 현실에 절망하기 시작했다. 판금된 김지하 시집 필사본을 숨어서 읽으며 내가 살고 있던 시대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교과서의 문학교육만 편협된 것이 아니었다. 역사는 왜곡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시월의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되지요 라고 신나게 불렀던 유신의 실체는 남북통일을 막는 최대 장애였으며, 유신 시대는 그 때도 계속되고 있었다. 진해에 있던 대통령 별장 덕에 어린 시절 대통령 행차 길에 나가 고사리 같은 환영의 손을 흔들며 좋아했던, 중절모를 쓴 박정희는 일본 육사출신의 독재자였다. 절망은 분노를 낳는다.그 분노 앞에서 나는 시와 역사에 복무할 것을 선서했다. 대학 1학년 나는 야학 선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과정이었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대부분 현장 노동자였던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대학 강의실보다 야학에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야학의 동료교사들 중에는 해군에 근무하는 학?석사장교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형도 야학에서 만났다. 그는 대학원을 마치고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군복무를 했는데 야학에 동참했다. 마산 양덕에 있던 그의 아파트 서재는 내 문학수업의 바다였다. 사면을 빼곡이 채운 그의 이론서들이 나를 가르쳤으며 그와 밤을 새워 마시던 술이 나를 성숙시켰다. 그 시절 나는 자주 분노했다. 그리고 분노는 혁명의 꿈으로 이어졌다.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내가 택할 수 있는 혁명의 방법은 시일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면 뒤틀린 현실과 바르게 흘러가지 않는 역사에 대한 분노가 시를 쓰게 만들었다. 시로써 현실에, 역사에 대해 혁명하고 싶었다. 야학 7년을 보내고 나는 야학일기 란 연작시로 당시 무크지였던 <실천문학>을 통해 분노의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분노도 없는 법.조국과 역사에 대한 사랑이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그대, 분노가 일면 터트려라. 분노도 시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 시인을 만든다
습작시절 누구에게나 병이 생긴다. 이름하여 ‘신춘문예 병’.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손에 아름다운 상처 ‘펜혹’이 생기듯, 이 병도 아름다운 병이다. 신춘문예. 굳이 말뜻을 풀이하자면 ‘새봄의 문학예술’이다. 그러나 신춘문예는 풀이하는 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뜻을 갖는 말이다.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습작시절이라는 통과의례가 있고, 신춘문예는 그 통과의례 중 가장 치열한 과정의 다름 아니다. 그 치열함의 끝에 당도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영광의 다름 아니다. 신춘문예 병은 신문사마다 1면에 신춘문예 현상공모 사고를 내는 11월초쯤 발병한다. 신춘문예라는 활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뛴다. 혈관 속에서 문학의 피가 끓는 소리가 들린다. 문제는 그런 흥분된 상태가 응모 마감일 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계절은 언제나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서서히 찾아오는 때쯤이다. 심장과 피는 더워지지만 몸은 추워지고 등은 불안감으로 굽어진다. 말수도 줄어들고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가끔씩 왜 그렇게 긴 한숨이 터져 나오던지. 그 시절을 겪은 나의 대학성적표는 감추고 싶은 흉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신춘문예 병이 준 후유증이었다. 고백하자면 아슬아슬하게 낙제를 면한 점수다. 졸업학점이 1백60학점이었던 시절, 신춘문예 병 때문에 펑크난 학점을 맞춘다고 4학년 2학기에도 21학점을 신청해야만 했었다. 신춘문예의 마감과 학년말 시험기간은 늘 일치했다. 나는 그 두 길 앞에서 늘 미련도 없이 신춘문예의 길을 택했다.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학년말 시험준비로 밤을 새울 때 나는 신춘문예 응모작품을 준비한다고 밤을 새웠다. 유신 시대, 군사독재 시대에서 학점을 얻기보다 신춘문예 당선시인 이란 이름을 얻고 싶었다. 언젠가 가지게 될 내 첫 시집의 약력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빛나는 한 줄을 남기고 싶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누구에게나 나오는 2급 정교사 자격증보다 먼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아직 그 시험답안지들이 남아있을까. 시험문제와는 무관한 글들만 써놓거나 백지로 제출했던 답안지들. 월영동 449번지, 나의 사랑 나의 대학. 사범대학으로 오르던 돌계단, 지칠 때마다 바라보던 푸른 합포만. 내 기억 속의 풍경들의 계절은 언제나 그 겨울이다. 사범대학 빈 강의실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시를 쓰던 동면 직전의 곰 같았던 내 모습.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우편함을 찾아가면 복도 쪽으로 눕던 긴 그림자. 환청처럼 갈가마귀 울음소리 들리던 시절. 더워졌던 피가 얼음처럼 차갑게 식는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도 신춘문예 병 후유증이다. 마감도 끝나고 시험도 끝나면 할 수 있는 일이란 낮에는 당선통지를 기다리는 일과 밤이면 술을 마시는 일 뿐이었다. 우체국에서 작품을 보내고 돌아와서부터 당선연락이 올 때까지의 그 막연한 기다림. 폭음과 함께 했던 확신과 장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고 마침내 허탈해진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당선 연락이 오지 않으면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는 동병상련 하는 도반들의 충고에도 혹시, 혹시 하며 기다리다 절망하다 받아보는 1월 1일자 신문. 그 신문에 실린 그 해 당선자들의 얼굴사진과 빛나는 작품들. 당선 시들을 읽은 뒤에는 지금까지의 기다림 보다 더 큰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그렇다. 그 부끄러움이 나를 성숙시켰다. 현재의 내 시가 어떤 자리쯤에 서있는지를 확인시켜주었던 부끄러움이 내 시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시작되고 뛰어난 그해 당선 시들을 읽으며 언젠가는 찾아올 내 문학의 봄인 신춘 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대,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문학을 꿈꾼다면 그 꿈은 욕심에 불과한 것이니, 다시는 신춘을 기다리지 마라.
바람도 시인을 만든다
왜 그렇게 바람이 좋았는지 몰라. 열네 살 중학생이 걸어서 학교 가는 길이다.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간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는 오월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소년의 이마를 짚는다. 바람의 손은 언제나 서늘하다. 소년은 멈추어 선다. 그 때 소년은 보았다, 바람의 몸을. 무형인줄로만 알았던 바람이 보리밭 위로 달아나며 드러내는 몸의 흔적을. “저게 바람의 몸이구나”라는 깨달음. 그것은 세상의 비밀 하나에 눈 뜬 기쁨이었다. 그러한 세상의 비밀을 찾는 것이 시고,그 일은 내가 해야하는 일이다고 생각했다. 열네 살 중학생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시 오 리쯤 되는 길이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는 오월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함께 돌아가는 친구들은 보지 못하는 바람의 몸을 나 혼자 지켜보며 소년은 바람이 되고 싶었다. 온 몸으로 부는 바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이 나에게 절망이었던 시간이 있었다. 열네 살 중학생은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 되어 백일장에 참석한다. 백일장의 시제가 ‘바람’이다. 열일곱 살은 자신에 차 있다. 일찍 바람의 몸을 보았기에. 이윽고 심사가 끝나고 입상자 명단이 방으로 붙는다. 열일곱 살은 실망한다.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장원자가 호명되어 단상으로 나간다. 뜻밖에도 기라성 같은 상급생들을 모두 제치고 동급생 여학생이 장원이다. 단발머리 그 여학생은 당당하게 서서 자신의 바람을 노래한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첫줄에 나는 몸이 얼어붙는 충격을 받았다. 동급생 계집아이가 어떻게 저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충격은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부끄러움은 또 절망을 낳았다. 내가 바람의 몸을 보았을 때 바람의 존재를 생각하는, 같은 나이의 여학생의 정신세계와 언어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백일장이 끝나고 열일곱 살은 호수 곁에 앉아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동급생 계집아이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열일곱 살은 자신에게 결여돼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는 표정이다. 열네 살과 열일곱 살에 만난 바람은 분명 다른 바람이었다. 나는 어제 불던 바람이 오늘 다시 분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바람은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새로 태어나는 바람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그것이 오늘의 시다. 그리고 나는 오늘 부는 바람이 내일도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 그것이 내일의 시다. 처음 만난 시의 화두가 바람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일찍부터 풍병이 들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바람 같은, 바람병이 들었다. 나는 내 사주팔자를 보지 않았지만 내 사주와 팔자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어 평생을 떠돌게 하는 역마살이 끼어 있을 것이다. 그런 바람들이 나를 시인으로 키웠다. 머무는 것은 바람이 아니다. 바람은 부는 것이다. 분다는 것은 움직임, 시는 그런 움직임이다. 시인은 바람이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고여있는 것들은 시인을 만들지 못한다. 바람이 불기에 살아야 한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다. 나는 바람의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오는 동안 많은 사랑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부는 바람의 길을 따라 바람처럼 불어갈 것이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시인의 운명이다. 언제나 나는 바람이고 싶다. 그대에게로만 부는 뜨거운 바람이고 싶은 것이다, 그대 나의 시여.
길이 시인을 만든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에서 진해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악동 친구들과 해운대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차비마저 다 유흥비(?)로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여름이었고, 우기였다. 우리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엄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엄궁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 명지로 가, 명지에서 다시 걸어 진해까지 갈 계획이었다. 친구 3명의 무사귀환을 책임져야 하는 내 주머니에는 1백20원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돈으로 진해 인근인 웅천에서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다들 부모님에게 선생님과 함께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우리는 어디에도 구원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걸어가자. 무슨 중대한 결정이라도 내리듯 친구들에게 그렇게 선언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염소란 별명을 가진 친구도 찔끔거렸다. 그 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붉은 완행버스를 타고 떠나왔던 길. 그 먼길을 과연 걸어갈 수 있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른 길은 없었다. 믿는 것은 우리가 가진 A자형 군용 텐트, 알코올 버너, 라면 몇 봉지, 쌀 등과 열 다섯 살의 두 다리 뿐 이었다. 그래, 한 이틀 걸어가면 진해까지 갈 수 있을 거야. 가다가 어두워지면 길 위에서 자고 가지. 내가 앞장섰다. 결국 우리는 1박2일을 걸어서 진해로 돌아왔다. 내가 걸어본 최초의 장도였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의 길에 대해 자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난 후 내가 많이 성숙해졌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진해에서 자전거를 타고 진주까지 갔다왔다. 그 높은 마진고개를 넘고, 더 높은 진동고개를 넘어 진주로 갔다. 친구의 친척집 작은 골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내리는 비를 피해 다리 밑에서 밥을 먹었다. 역시 집으로 돌아오니 나는 성숙해져 있었다. 진해에서 마산까지 버스통학을 하던 고등학교 3년. 하교 길 자주 마진터널 검문소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왔다. 어둠의 산길,홀로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면 내 몸으로 스며든 길의 향기가 좋았다. 그 시절 우연히 목월 선생이 쓴 젊은 날의 비망록에서, 청년 박목월이 군용 모포 한 장만 들고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걸어왔다는 글을 읽었다. 낮에는 해변에서 자고 밤에는 걸어서 동해의 길을 밟았다는 글을 읽고 전율했다. 나는 책을 읽다 일어서서 외쳤다. 떠나자. 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길을 따라 떠나자. 그대, 길은 사람에게 사유의 시간을 가져다준다.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혼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이라도 해도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을 걸어주지 않는다. 결국 길은 혼자 가는 길뿐이다. 혼자 가는 길이 사람을 성숙시켜 주고, 시를 깊어지게 만들어 준다. 길은 무엇보다도 그리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가보지 않은 저쪽에 대한 그리움이 길을 만들었으니, 그리움이 없다면 길도 없었다. 길 위에서 혼자임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그리움의 따뜻함을 꿈꾼다. 그 따뜻함을 나는 서정이라 말하고 싶다. 홀로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길 위에서 그리움을 꿈꾸지 않은 사람은 서정시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길의 가장 큰 가르침은 고통이다. 그대, 길 위에서 혼자 맞는 저물 무렵과 일몰의 고통을 아는가. 타관을 지날 때 하나 둘씩 돋아나는 집들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떠나온 곳으로 등이 굽는 쓸쓸함.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저녁이 찾아올 때 비로소 그리운 사람과 이름들. 저무는 길 위에서 고통을 느껴보지 않고서 사랑의 시를 쓸 수 없다. 등 배기는 길 위에서 고통의 칼날에 싹둑싹둑 잘리는 마디잠을 자보지 않은 사람 또한 시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그대 오늘 그 길 위에 서라.
유행가도 시인을 만든다
내가 제일 처음 배운 유행가는 배호의 노래였다. 제목은 ‘누가 울어’. 그 때 나는 아버지가 없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어느 비오는 오후, 어머니가 흥얼거리는 그 슬픈 노래가 어린 나를 울렸다. 어머니 몰래 연습장에 노래가사를 적었다. 지금도 생생한 그 노래 1절은 다음과 같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멀리 가버린 내 사랑은 돌아올 길 없는데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 울어 검은 눈을 적시나.’ 그날 밤 나는 이불 속에서 어머니의 노래를 조용조용 불러보았다. 그리고 정말 ‘피가 맺히게’ 울었다. 어렸지만 노래에 담긴 홀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어린 시절 배호의 노래가 슬픔이 어떤 가락이며 어떤 색깔인지를 가르친 것이다. 어머니의 술집에는 유행가가 끊이지 않았다. 내 유행가 교실은 그 술자리였다. 막걸리 술 주전자를 나르며 나는 손님들의 유행가를 배웠다. 가게에서 일하던 형들의 유행가 책을 훔쳐 가사를 외웠고 장난감 아코디언으로 서툴게 멜로디를 쳐보기도 했다. 영화관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 ‘가슴 아프게’ 같은 영화를 보며 주제가를 배웠고, 쇼 공연에서 늘 제일 마지막에 출연하는 이미자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나는 세상의 슬픈 유행가가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유행가 가사 같은 시를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를 흉내낸 시를 적어 담임 선생님을 걱정시켜 드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가난뿐이었지만 나는 뜻밖에도 아버지가 남기신 글을 읽었다. 아버지는 달필이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고급노트에 아버지는 당신이 좋아하셨던 유행가 가사를 볼펜 글씨로 빽빽이 적어 놓으셨다. 나는 유품과 같은 아버지의 유행가 가사를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지우지 않았다. 30대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도 노래를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좋아하신 노래는 가곡이나 명곡이 아니라 유행가였다. 아버지는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축음기를 통해 노래를 듣기도 했고, 진공관 전축을 사서 노래를 자주 들으셨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몇 십분 전에도 잠시 들른 아버지 친척 댁에서 전축을 틀어 놓고 누군가의 유행가를 열심히 들으셨다고 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유행가는 ‘갈대의 순정’뿐이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은 아버지의 지독한 애창곡이었다고 한다. 그런 유행가 만들어주는 60년대식 슬픔이 나에게 서정시를 쓰게 만들었고, 유행가는 내 서정의 자양분이 되었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 배호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시인과 부르지 못하는 시인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행가를 딴따라라 한다. 나는 그 딴따라가 좋다. 흔히 대중적, 통속적이라는 감상이 시인에게는 따뜻한 자양분이 된다. 한국 시단에는 3배호가 있다. 대구의 서지월 시인이 서배호, 부산의 최영철 시인이 최배호, 울산의 나는 정배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서배호는 배호와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최배호는 배호와 똑같은 모습으로 노래를 한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현재 우리 시단의 좋은 시인인 그들의 시가 유행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음치고 박치인 나는 폼만 배호다. 서배호, 최배호의 노래 뒤에는 앙코르가 있지만 내 노래는 앙코르가 없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유행가를 부르고 듣는다. 유행가에서 시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엔 시만이 시인을 만든다
신문사는 새로 입사하는 수습기자에게 기사 작성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종이밥을 먹던 신문기자 시절, 어느 누구도 나에게 기사 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이 들어 입사한 신문사라 후배를 선배로 모시고 경찰기자 생활이 시작됐다.1진은 서울 중부경찰서 기자실 소파에 앉아있고, 나는 남대문, 용산경찰서를 들개처럼 싸돌아다녔다. 내가 근무하는 신문사가 석간신문을 제작하고 있어 새벽같이 종합병원 영안실과 경찰서 형사계, 유치장을 돌고 1진에게 간밤의 사건과 사고를 전화로 보고한다. 그러면 1진은 뉴스가 될만한 것을 기사로 만들어 즉시 전화로 부르라고 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6하원칙을 적용하여 기사를 작성해 전화송고를 하면 욕설이 쏟아진다. 새벽부터 나이 어린 신문사 선배에게 듣는 욕은 사람을 참담하게 만들어준다. 남쪽에 두고 온 가족생각이 나고, 같이 욕설을 퍼붓고 때려치워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1진의 지적은 정확했다. 내가 놓친 부분을 보지도 않고서 정확하게 찾아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다. 1진은 그렇게 욕설로 지적을 할 뿐 3개월의 그 지독한 수습기간에 신문기사를 어떻게 쓰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강원도 백담사에 유배돼 있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법회를 연다고 해서 취재지원을 나간 적이 있었다. 경쟁사의 기자들과 함께 취재를 하고 나는 끙끙대며 2백자 원고지 5장 정도 분량의 스케치 기사를 작성해 팩스로 보냈다. 그런데 경쟁사 모 선배기자는 기사를 작성하지도 않고 메모만 보고, 그것도 전화기를 들고 짧은 시간에 25장 분량의 기사를 송고하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과연 나는 신문기자의 자질이 있는 가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내 그런 좌절을 안 한 선배가 ‘신문기자의 교과서는 신문이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서야 나는 신문을 통해 신문기사 쓰는 법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신문을 펴놓고 좋은 기사는 옮겨 적어보고, 사건과 사고의 유형별로 좋은 기사들을 스크랩해 참고서를 만들었다. 신문 속에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 숨어있었다. 시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 창작의 최고의 교과서는 시고, 시집이다. 그것도 좋은 시고 시집이어야 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집을 권하고 무조건 필사할 것을 숙제로 내준다. 눈으로 읽는 리듬과 손으로 쓰며 배우는 리듬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도 신춘문예 당선 전까지 참으로 많은 선배시인들의 시를 옮겨 쓰며 시 쓰는 법을 배웠다. 시인이 되려는 제일 마지막 관문은 선배들의 좋은 시와 시집이 나에게 시가 무엇이며, 시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내 친구 최영철 시인은 내 시집 발문에 나를 ‘타고난 시인’이라고 쓴 적이 있다. 너무 일찍 배운 슬픔으로 감성은 타고 났을지 몰라도 나 역시 ‘만들어진 시인’임을 고백한다. 손에 펜혹이 생기도록 좋은 시를 옮겨 적는 연습을 통해 시를 배웠다. 시인이 되는 교과서는 시인들의 시에 있고, 시집에 모여 있다. 시인은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선배 시인들의 인정을 통해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멀리서 혹은 엉뚱한 곳에서 시인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나는 앞에서 많은 것들이 시인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런 것들 중 제일 마지막에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시다. 시인이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후배라 할지라도 좋은 시를 발표하면 한 번 옮겨 적어보며 그 시의 비밀을 찾으려고 한다. 시인을 꿈꾸거나, 시인인 그대여. 시를 읽자. 시집을 읽자. 그것이 시인을 만들고, 시인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처음 시 쓰는 사람을 위하여
이 응 인
1. 시 쓰는 마음
하루가 다르면 시가 보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별난 사람인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인가?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답을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별난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통 사람이기도 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이 두 가지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이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제가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제 등교할 때하고 오늘 등교할 때하고 뭐 다른 게 없었니?’ 어떤 학생들은 눈이 뚱그래져 가지고, 어제나 오늘이나 그게 그건데 무슨 뚱단지 같은 질문이냐고 할 것입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자기가 발견한 새로움을 말할 것입니다. 앞산이 훨씬 맑고 깨끗하게 보였다는 둥, 옆집 누나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둥, 교문 옆 울타리에 살구꽃이 몇 송이 피었다는 둥,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루하루 생활에서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하?사람은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직장인이건, 가정주부건, 사업을 하는 사람이건 마찬가지입니다. 나날이 새로움을 찾지 못하는 생활은 아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시를 쓰는 마음은 하루하루를 새롭게 사는 마음입니다. 단순한 비유를 해 봅시다. 제가 사는 밀양은 경치가 아주 빼어난 곳입니다. 겨울날 아침에 일어나면 밀양강에서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릅니다. 그러면서 앞산의 모습이 서서히 깨어납니다. 자세히 보면 물에는 청둥오리 몇 마리 헤엄쳐 다닙니다. 이런 장면을 본 어떤 사람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에서 솟구쳐 오릅니다. 정말 말로는 할 수 없는데 뭔가가 마음 속에서 솟아오릅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 밀양에 살고 있다는 희열, 이런 뭔가가 있겠지요. 그리고 오늘 하루는 정말 좋은 날이 될 거라는 기대로 설레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이러한 경치를 보고도 그냥 무덤덤하게 넘어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변화조차도 모르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예만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마지막 사람은 십 년을 살아도 첫 번째 사람이 일 년을 산 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삶이 됩니다. 삶이란 얼마나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삶,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삶이 진정으로 값진 삶입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보인다면 시를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은 갖춘 게 됩니다.
밭매는 민요 같기도 하고 타령 같기도 하고 흘러간 유행가 같기도 한 나직한 노래 따라 담배연기 자욱한 화장실에 들어섰다 해탈을 한 음정 없는 노래가 낯선 사내를 부끄러워 않고 바지춤에 매달린다 수건을 두른 늙은 아줌마 쭈그려 앉아 식기 닦듯 얼싸안고 변기통을 문지르다 비누 범벅된 노래로 나를 힐끔 쳐다본다 ―이도윤 <노래>
시를 쓰는 마음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보인다고 시를 쓸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춘 것은 아닙니다. 다시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이는 나날이 새로운데, 보는 것마다 만나는 이마다 돈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야, 저 땅을 어떻게 하면 큰 돈 벌겠는데. 요기다 무슨 가게를 내면 돈이 되겠는데. 저 사람하고 거래를 하면 득이 되겠는데. 매일 이런 새로움을 발견하는 사람은 장삿꾼은 될 수 있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될 수가 없습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눈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강물에 대한 사랑, 어린 아이처럼 노니는 청둥오리에 대한 사랑, 늘 마주 대하는 산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새로 만나는 이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어야 감동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고,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내가 남이 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산이 되어 듬직하게 서 볼 수 있고, 오염되어 가는 강물이 되어 볼 수 있고, 어린 아이가 될 수 있고, 하루 종일 학교에 붙들려 있는 학생이 되어 볼 수 있고, 늘그막에 혼자 되어 외로운 노인이 되어 볼 수 있고,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아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가 되어 볼 수 있습니다.
가뭄 끝, 쌀비 온 뒤 장자실 보성할매 땅에 딱 붙은 콩밭에 듬뿍듬뿍 비료 주면서 많이 묵고 이내 크거라 와!
그 소리 듣고 이 가을 손가락만한 콩깍지를 매달고 바람 한 자락에도 주저리주저리 웃어 대는 콩밭이렷다
오매 이쁜 내 새끼들! 늬들 때문에 내 서울 못 간다 내 떠나면 늬들 누가 거두노 보성할매 칭찬 또 담뿍 받으며
하기사, 하느님은 밤마다 콩들과 운우지정을 나누어서 아침이면 그 이파리들이 이슬 가득 맺힌다는 것이다. ―고재종 <내 새끼들>
핵심을 잡아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예리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작고 사소한 일도 함부로 보아 넘기지 않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인생의 큰 의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잡한 세상과 생활 속에서 문제의 핵을 파악해 내는 통찰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리한 눈과 통찰력은 정신적 긴장에서 옵니다. 편하게 생각하고 쉽게 생각하고 무시해 버리거나 가벼이 여기는 데서는 그러한 힘을 기르지 못합니다. 저 현상의 뒷면은 무엇일까? 저 일의 기쁨은 어떠할까? 왜 저 여인은 아이를 서럽게 때리는가? 우리 삶의 여러 문제, 근본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서 예리한 눈과 통찰력이 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뜨거운 여름날이건 날 추운 겨울날이건 썩어 가는 김 뿌연 두엄더미 속에서 하얀 등줄기에 터질 듯, 한 가닥 푸른 힘줄 내지르고 굼실굼실 굼실굼실 꿈틀대는 살아 있음이여
아, 맑은 꿈이여 ―정세훈 <두엄 속 굼벵이>
이러다 보면 자기 생각의 깊이를 갖게 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생각이란 나름대로 샘을 만들고 물이 고이도록 해야 합니다. 생각의 깊이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자기의 샘을 만들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겨울 하늘이 비었나니 마알간 구름장 사방에서 모이고 모인 구름 저희끼리 흰 빛 더해 갈 때 맨 나중에 나타난 구름의 흰빛은 세상에 더할 나위없이 희어서 미리 온 구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박이로 비잉빙 공중을 돌다가 맨 먼저 죽어서 땅에 떨어지니 사람들은 그를 일러 눈이라 한다 대체로 눈발이라 하는 것은 내 어린 날 길가의 아이들이 저희끼리 잘 어울려 노닐다가 그들 중의 한 아이들 따돌리었을 때 무리에서 떨어진 아이의 발끝처럼 텅 빈 마음으로 서성거리며 숨가쁘게 숨가쁘게 내닫는 것이다 ―이동순 <눈발>
쉬지 않고 수련해야 합니다. 대학의 문학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문학회에 들어가면 선후배들이 만나 술도 한 잔 하고,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의 작품을 읽고 비평을 합니다. 그런데 선배들은 후배가 밤새워 써온 시를 하나하나 뜯어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뺄 것은 빼고 해서 본래 시의 반으로 줄여 버립니다. 어떤 경우는 이것도 시냐고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후배는 열받아 가지고 집에 가서 잠도 안 자고 또 씁니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 봐라. 내가 잘난 선배놈들 따라 잡고 말 것이다. 코를 납작하게 해주지. 이렇게 혼자서 벼릅니다. 그런데 다음 모임에 가면 또 시가 난도질을 당합니다. 이렇게 해서 후배는 문학의 열정을 키우고 끊임없는 습작을 합니다. 그러다 세월이 가서 선배가 되어 보면, 자기에게 혹독하게 대했던 선배들의 마음 속에 후배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우치게 됩니다. 시 몇 편 써 보았다는 걸 가지고 거만해서는 안 됩니다. 습작기에는 1년에 100편 이상 쓰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문예반이나 대학의 문학회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온 사람들입니다.
남의 비평을 잘 듣고 자기를 키우는 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년이 된 사람들과 시를 이야기할 때 제일 괴로운 게 하나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건 시의 문턱에도 못 간 것인데, 이건 시도 개똥도 아닌 것인데, 그렇게 말하기가 힘듭니다. 내가 하는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섭섭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별 것 아닌 녀석이 되게 잘난 척 하네. 이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문학을 하고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비평을 겸허한 마음으로 듣고 자기 세계를 키우는 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기 세계에 대한 고집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고쳐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초심자의 경우 자기 시가 객관적으로 보여야 시 쓰기에 입문한 것입니다. 자기가 써 놓고 참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단계는 아직 제대로 시가 안 되는 경우입니다. 자기 시의 한계나 문제가 보여야 합니다.
2. 시의 큰 특징
시는 가슴으로 읽어야 합니다.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읽어야 합니다. 머리로 읽을 때 시의 감동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시 전체가 내게 확 와 닿아 내가 되어야 제대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 머리로 뜯어보는 단계입니다. 어디가 좋은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했는가를 찾는 단계입니다.
시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표현을 해도 듣는 사람에게 똑바로 이해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건 시라는 것이 산수나 과학 공부처럼 누가 보아도 확실한 모양을 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감정이나 사상이나 그런 마음의 세계에서 제각기 색다른 눈으로 보고 느끼고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고, 또 그 시를 읽는 사람도 제 마음에 따라 그것을 좋다 나쁘다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원수 <동시작법>
그렇지만 시의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철수 시인은 서정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시는 시인의 정감을 고도로 집중하여 감동을 표현합니다. 결국 시인의 마음 속(내면) 세계를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둘째, 시는 풍부한 서정성에 기초합니다. 이는 다른 문학 갈래와 달리 시인의 사상 감정을 직접 토로하기 때문에 강렬할 수밖에 없는 서정성입니다. 셋째, 시는 언어가 세련되고 음악성이 강합니다. ―오철수 <시쓰기 워크숍 1> 17쪽
3. 시 창작의 과정
시는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 나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문자로 옮겨 적기 이전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고, 문자로 옮겨 적은 후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입니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다 글로 옮겨 적는 경우가 앞의 것이고, 글로 옮겨 적은 다음 수없이 읽고 고치고 하는 과정이 뒤의 경우입니다. 사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보면 이 두 과정을 다 거친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저의 졸작 하나를 예로 들겠습니다.
봄날-꽃 보면 눈이 시어/미친 거렁뱅이라도 좋겠네.
처음에는 이런 메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봄날 하루 꽃을 보면서 눈이 시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시다는 생각은 자주 있는 경험입니다. 여기서 나를 자극한 것은 저 눈이 시도록 황홀한 세계에 빠져 들고 싶도록 만드는 유혹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 그 세계에 빠지고 싶은 겁니다. 정말 우리가 보기도 싫어하는 거지가 되어도 좋을 정도로 나를 미치게 하는 봄빛입니다. 여기서 ‘거렁뱅이라도 좋겠네.’라는 생각이 떠 오른 것입니다.
봄날-천지 모든 숨결이/꽃으로 환생하는 날/눈이 시어버린/비렁뱅이가 되어도 좋아라. 메모를 두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미치게 한 저 꽃이야말로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천지 모든 숨결이’ 모여서 이루어졌을 거라는 데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비렁뱅이 중에서도 제일 처절한 눈이 먼 비렁뱅이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눈이 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눈이 시어버린’이라고 표현 한 것은, 첫 메모에서 나오듯 눈이 시어버릴 정도의 감동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천지 가득 숨결이 몽글몽글 꽃으로 환생하는 날
눈이 시어버린 비렁뱅이 되어 떠돌아도 좋아라. ―이응인 <봄날>
마지막 완성된 졸작의 모양입니다. 앞의 내용을 여러 번 읽고 다듬어 정리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길 가다 발길에 툭 채여 구르는 잔돌 하나 내 주머니에 떨어진다
찢겨진 신문지 조각이나 백지 위에 뿌리 내려 산다 살다가 어떤 놈은 삭은 소똥 냄새를 내기도 하고 세탁기에 들어가 얼굴을 알 수 없는 휴지 뭉치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놈은 어느날 부시럭거리며 내 손에 붙들려 나온다 나와서는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늘어진다
술 취해 돌아오면 등을 두들겨 주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불쑥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한 사날 이러다 보면 제법 얼굴이 말끔한 시가 되기도 한다 더러는 잊을 수 없는 사랑으로 가슴에 멍을 남기기도 하고. ―이응인 <시를 위한 단상>
4. 시 쓸 때 유의할 것들
남의 시를 많이 읽고, 많이 써야 된다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좋은 시는 좋은 생활에서 나옵니다. 멋을 내고 거짓을 부리는 데서 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만큼 시가 나옵니다.
어미 되는 염낭거미 때가 되면 풀잎 돌돌 말아 돈주머니 같은 풀잎집 짓고 그 안에 스스로 갇혀 알을 낳아 새끼 나올 때까지 지성으로 지킨다네 마침내 그 어린 아귀 같은 무서운 새끼들 생겨나면 끔찍하여라 제 어미 몸 샅샅이 파먹고 자라난다네 제 어미 갈색 빈 껍데기만 남아 바스러질 때까지
애탄지탄 딸 키워 시집보내고도 직장생활하는 그 딸을 대신해 늦도록 딸네집에서 살림 도와주시는 친정어머님 해마다 다르게 허리 더욱 꼬부라지고 낙엽처럼 바싹 마른 몸 바스러질 것 같네 염낭거미 새끼보다 조금도 더 나을 것 없는 쉰 살이 되도록 다 늙은 어머님 진 파먹고 살아가는 그 딸년 ―양정자 <친정 어머님>
처음 시를 쓰는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몇 가지 이야기하면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시는 형상의 언어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내뱉기만 하면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니 고뇌니 아픔이니 하는 말을 그냥 내뱉어서는 독자들에게 절대로 감동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나 정말 괴로워, 괴로워 죽겠어.’라고 수십 번 뇌어도 다른 사람은 그 괴로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나, 5년 동안 함께 하던 그녀와 헤어졌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어의 지나친 사용이 문제이고, 긴장을 잃은 산문에 가까운 문장을 많이 쓰는 것도 문제입니다. 말을 아끼고 다듬는 과정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감동의 중심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감동의 순간이 올 때마다 메모를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그것 자체가 훌륭한 시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래 새겨보고 생각한 다음에 종이에 옮겨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는 할 말을 다 하지 않으면서 할 말을 다 하는 문학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동양화에서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화면 가득 색칠을 하지 않지만 우리는 마음 속에서 상상력을 통해 화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기 감정에서 벗어나 자기의 시를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써 놓은 시를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냉정한 마음으로 다시 보아야 합니다. 내가 쓰는 글은 아직 시가 되지 못한다, 어딘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또, 남의 시를 읽으면서 감동의 요소, 좋은 점, 개성을 자꾸 찾아내야 합니다. 좋은 시는 직접 공책에 옮겨 적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는 정해진 틀이 있어서 거기에 맞추어 써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시가 갖는 운율은 형식적인 틀에 맞추어 반복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닙니다. 그 시에 맞는 틀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으며, 그걸 여러 번 읽고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살아온 아무 멋도 없는 것 같은 아주머니의 그 부지런함과 절묘하게 만난 암탉의 모습을 다음 시에서 보십시오.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줄 것입니다. 부끄러운 글을 이만 맺습니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되똥되똥 걸어와 후다닥 헛간 볏짚 위에 오른다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다시 일 나간다 ―이시영 <당숙모>
시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할 표현들
도 종 환
Ⅰ. 피상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때가 있다. 화폭에 산, 나무, 들, 꽃, 하늘, 사람의 밑그림을 연필로 그려놓고 나무는 고동색, 나뭇잎은 초록색, 하늘은 푸른색 이런 식으로 화폭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색칠을 해나간다. 아이들 머릿속에는 이미 선험적으로 얼굴은 살색, 머리는 까만 색, 땅은 황토색으로 칠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앞에 있는 나뭇잎 색깔이나 하늘의 변화하는 빛깔을 잘 관찰하면서 그리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 그려놓은 그림들은 그래서 늘 그게 그것 같고 새롭지 않다. 나무둥치에 고동색을 가득 칠해 놓은 아이에게 고동색 크레용을 들고 가 나무에 직접 대보게 하며 “어때 색깔이 같니?”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있다. 사물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세히 관찰하며 피상적인 인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 이것은 아마 예술 창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추억을 실은 버스가 나의 마지막 종착역에 서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서쪽하늘 가까이에서 실려오는 바다 내음 맡으며 황금벌판 풍요로움에 홀쭉한 고향길을 말없이 걷는다. 어린 시절이 벌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였던 숱한 언약들이 다시 귓전에 들려온다. 살아오면서 버려진 덧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때처럼 가슴 설레이여 눈망울 적시었고 마음은 이미 바다와 들판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에 백지장처럼 깔려버렸다. 하얗게 깔린 백지장 위로 그리운 사연들이 써져 내려가고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잔잔한 갈등을 일으킨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밉던 얼굴마저 그리워져 모질게 내쫒았던 당신에게 다시 돌아온 것은 이곳이 나의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애착’
이 시는 고향에 다시 돌아오면서 느낀 생각들을 쓴 시이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의 인식은 어떠한가. ‘황금벌판 풍요로움~’그는 고향벌판을 바라보며 황금 벌판이라고 말한다. 대단히 피상적이다. 오늘날 농촌의 실제 모습이 어떤가 하는 구체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고 농촌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묘사하던 상투적인 관용어구를 그대로 따라 쓰고 있다. 이런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흔적은 이 작품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이런 표현도 마찬가지이고 고향을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 하던 곳’이라고 묘사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Ⅱ. 상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의 시 ‘애착’에서 보는 것처럼 삶, 또는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은 자연히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 마음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이런 구절 역시 그렇다.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는 표현, 그 호수에 돌을 던진다는 표현 등은 너무 흔하게 쓰여온 표현이며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눈부신 밤거리 달빛 한 가닥 들어설 틈도 없다.
휘황한 불빛 속엔 검은 하늘 향해 벌린 하얀 살뿐이다.
아무 것이든 빨아들이는 불가사리 식욕
붉은 웃음은 잿빛 거리를 휘돌아 하늘에 퍼지고 현란히 부서지는 물결 속에 검은 세계는 찬란히 부상한다.
달이 떨어져 나무에 걸려 있다. ―‘밤거리’
이 시에 나오는 ‘붉은 웃음’ ‘잿빛 거리’ ‘검은 세계’ ‘하얀 살’등의 표현은 각각의 색깔이 갖고 있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상투적으로 답습하면서 쓰고 있다. 밤거리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어딘가 답답하다. 답답한 풍경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는다.
키스를 하고 돌아서자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정호승의 시인의 ‘키스에 대한 책임’이라는 시이다. 입맞춤을 하고 돌아서는 깊은 밤, 너는 눈물을 흘리는데 나의 키스 나의 사랑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적막해지는 심정을 ‘적막해지는 나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신선하지 않는가. 첫 키스의 느낌을 각자 한 번 시로 표현해 보자. 어떻게 표현할까. 첫 키스의 느낌을 수식하는 말을 만들어 보자고 하면 ‘황홀한’ ‘달콤한’ ‘갑작스런’ ‘아련한’ ‘부끄러운’ ‘잊지 못 할’ ‘지워버리고 싶은’ ‘감미로운’ ‘떨리던’ 등등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표현들 중에 참신한 표현은 무엇일까. 잘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용운시인은 어떻게 표현했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70여 년 전 그런 참신한 말로 표현했다. 날카로운 이란 형용사는 키스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이다. 광물질적인 속성, 금속성 이런 이미지를 주는 말이다. 그러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말이 결합하면서 ‘갑작스런’ ‘충격적인’ ‘강하게 다가온’ ‘찌르듯이 내게 온’ 이 모든 느낌이 함께 들어 있는 다양한 의미 공간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신선한 언어의 만남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다음의 시를 보자
세상에 모든 아내들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을 둘러 앉혀 놓고 지글지글 고깃근이라도 구울 때 소위 오르가즘이란 걸 느낀다는데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 그것은 마치 중생대의 지층처럼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을 층층히 켜켜로 머금고 낯뜨거운 오르가즘에 몸부림친다 그 환상적인 미각을 한 점 뜨겁게 음미할 새도 없이 식구들은 배불리 식사를 끝내고 삼겹살을 구워 먹은 뒤 폐허 같은 밥상은 …………… 헐거운 행주질 한 번으로도 절대 깨끗해지질 않는다 하얀 손등에 사막의 수맥 같은 파란 심줄을 세우고 힘주어 밥상을 닦는 아내의 마음속엔 수레국화 꽃다발 사방으로 흩어지고 ―‘돼지’중에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을 무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 그렇게 표현했다. 비유가 신선하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을 보며 떠올린 ‘중생대의 지층’ 그리고 ‘층층히 켜켜로 머금은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이런 비유들은 이 시를 쓴 사람만이 본 독특하고 새로운 시적 발견이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돼지고기와 오르가즘을 연상시킨 비유에 이르기까지 이 시는 전혀 상투적인 데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시가 새로운 느낌을 준다.
Ⅲ.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드러나 보여야 한다
사람들은 돌아오고 흐느끼는 소리는 없었다 아무도 앓는 소리 듣지 못하고 나도 어딘가로부터 돌아왔다
피는 물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 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유방들이 다가올 봄을 대비해 욕망을 충족시키고 수많은 옷가지들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새 나는 벌거벗은 병정이 되어 거리를 간다 속이지 말라고 사람들은 외치고 그래도 나는 속인다 나는 속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므로 내가 죄를 벗어나는 길은 죄를 잊는 길밖에 없다 나의 원죄는 이토록 망각 앞에 무력하다 또한 그것은 종이 위에서 다소간의 위안을 찾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란색 가로등에 뿌리는 외로운 빗줄기 옆에 있다 하염없이 달리는 차창가에 정면으로 달려오는 운명 앞에 있다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
이 시속의 시적 화자는 지금 죄 때문에 괴로워한다. 죄를 짓고도 그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속이고 있어야 하는 괴로움에 마치 벌거벗은 병정이 되어 거리를 가고 있는 듯한 부끄러움에 쌓여 있다. 시적 화자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를 쓴 사람이 이 시를 통해서 결국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지가 불명확한 데 있다. 1연 3행 ‘나도 어딘가로부터 돌아 왔다’는 것은 어디일까. 끝까지 읽어보아도 그곳이 어디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2연에 와서 죄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한다는 이야기가 길게 전개된다. 그런데 18~19행 ‘그것은 종이 위에서 다소간의/위안을 찾기도’ 한다고 말한다 무슨 위안을 찾는다는 것일까. 그리고 21행 ‘외로운 빗줄기 옆에 있다’와 23행 ‘정면으로 달려오는 운명 앞에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 앞에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죄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끝 구절이기도한 18행부터 23행까지는 역시 모호한 채로 던져져 있다. 2연 1행부터 7행까지는 이 시속의 시적 자아가 서 있는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것들인데 죄의식을 느끼게 된 원인과 어떤 연관을 갖는다든가 아니면 상징적인 구실을 한다든가 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주제를 향한 응집력도 부족할뿐더러 ‘유방’ ‘병정’ ‘종이’ ‘운명’ 등의 시어들이 이해되지 않는 채 자꾸만 걸린다. 거기다 제목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는 시 전체 내용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인지 역시 알 수 없다. 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더 보자.
이름보다 먼저 그대 귀를 찾았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더한 부름으로 버거웠던지
유령처럼 스르르
가버렸다 ― ‘겨 드 랑 이 에 각 개 표 로 손 을 끼 워 넣 는 건 그 어 느 한 쪽 의 필 요 만 은 아 니 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버거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린 빈 공간에 서 있다. 이 시의 제목대로 ‘겨드랑이에 각개표로 손을 끼워 넣는 것은’ 어느 한 쪽의 필요에서가 아니듯 서로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사랑했을 텐데 그냥 황망히 떠나 버린 것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내용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고 거기에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해서 한 편의 시로 자기 감정을 제대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겨드랑이~’로 시작되는 긴 제목이 새롭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제목도 내용도 다 미완성으로 끝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시를 쓰면서 내가 지금 이 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하고 있는가 하고 되물어 보아야 한다. 다음 시는 어떤가 함께 읽어보자.
돌담은……, 아닙니다. 어릴 땐 가지런한 층층에 끄덕머리 하다가, 흔들고 다시, 여물게 손가락질 하나 둘 헤다가, 마침내 올라서서 이쪽과 저쪽 세상 가운데를 걸으며 조심스레 팔저울도 했지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저는 이미 많이 자라서 한여름 놀던 그 그늘, 한 겨울 고인 볕뉘와 속살거림, 모두 까닭 없었어요. 때로 생각이야 나지요. 가을이었어요 누군가 싸리비 하나 꺽어들고선 저 산 너머로 가라며 저를 자꾸 내쫒았어요. 가라면 간다며 그 길로 돌담 등지는데, 때깔 곱게 물든 단풍 숲 사이 바알간 노을이 깃들더니 이내 두 눈 가뭇가뭇 멀게 했어요. 그 후론 여기 이 바깥 세상에 쭉 살았지요. 어떤 날은 취해 밤낮을 바꾸고 또 어떤 날엔 싸우다 승리, 패배, 승리 패배 패배했어요, 삭신 다 닳은 세월 속절 없지만 아파서 제겐 더 살뜰한 기억이지요. 다만 잊을 수 없는 건 그 낮은 돌담. 웃자란 키로 들여다봅니다. 안팎으로 그늘과 속살거림 거느린 것이며, 자라지 못하는 속엣 것들 고즈넉이 품은 모양이며, 누군가 또 싸리비 꺾어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거라며 저를 쫓아내는 것까지도 두고 올 적 그대로지만, 삶이란, 예전에 그랬듯, 홱 떠나는 것은 아니더군요. ……안됐거든요. 저물 무렵 그 모든 게 노을 함께 지면 참 안돼 보이거든요. 이제 와서 저는 슬퍼할 밖에요. ―‘돌담’
많은 쉼표와 현실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실로 들락거리는 구성은 자칫 혼란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속에도 정연한 내적 질서가 있다. 돌담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유년기와 성장기, 세월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면서 아름답고 아프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떠나기 싫던 우리들 근원적 삶의 터전과 그 터전을 떠나와 끊임없는 싸움을 되풀이하며 성장 해야하는 현실의 경계에 돌담이 있다.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주제를 내포한 구절도 자연스럽게 시속에 녹아 있고 우리 모두가 체험한 통과의례의 상징으로 ‘돌담’이 제 구실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꾸 되돌아 보여지는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성장시’로 손색이 없다. 전통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든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내든 문제는 한 편의 시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나타나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이다.
Ⅳ. 관념성 불필요한 난해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간다 무한한 공간 속으로 닫혀 있는 창을 열고 雨의 장막을 넘어
나는 간다 영원한 침묵 속으로 저자 거리의 소음을 뒤로 하고 검은 숲 오솔길을 걸어
나는 간다 절대의 고독 속으로 닫혀 있는 창 너머로 누구와도 아닌 홀로서 순수 이전으로 돌아간다. ― ‘순수 이전으로’
a--a'--a"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는 ‘나는 간다, 어디 어디로.’ 의 기본 골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시적 화자인 내가 가는 곳은 ‘무한한 공간’ ‘영원한 침묵’ ‘절대의 고독’속이다. 그곳을 작자는 순수 이전의 곳이라고 한다. 순수 이전의 곳 그러니까 지금 순수한 곳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그 어떤 곳으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순수 이전의 곳이라는 무한한 공간, 영원한 침묵, 절대의 고독 등은 대단히 관념적이다. 雨의 장막도 마찬가지다. ‘닫혀 있는 창을 열고’ ‘저자거리의 소음을 뒤로하고’ ‘누구와도 아닌 홀로서’ 가는 길이라면 죽음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죽음의 세계는 절대 순수의 세계일까. 문제는 이 시의 시어들이 육화 되지 않은 관념성에 빠져 있다는데 있다.
미지에의 두려움에 망설이며 되돌아 갈 수 있는 줄 알았던 이 길이 그러나 길은 앞으로만 뚫려 있고 등뒤엔 이미 수렁 나의 사색은 병약했으며 암흑에 가두었고 고통일 뿐이던 젊음 삶과의 치열한 투쟁 그러나 자신의 밀실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묶여 있던 감각 굳어 있는 뼈마디 나는 그것이 어둠인 줄도 몰랐었다. ―‘봄’중에서 나약하던 자기의 밀실을 깨치고 나오는 어느 봄날의 기억에 대해 쓴 시이다. 이런 자각과 깨달음을 통해 역사를 알게 되었고 쓰러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이 시의 뒷부분에 이어진다. 그러나 어딘지 미더웁지 못한 데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시에서 보는 것과 같은 육화 되지 않은 언어들 때문이다. ‘사색’ ‘병약’ ‘암흑’ ‘투쟁’ ‘밀실’ ‘감각’ 등의 관념적인 시어들은 삶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삶과 언어가 따로따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Ⅴ. 나약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시를 쓰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로 정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서란 어떤 사물을 대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말한다. 러스킨은 사랑, 존경, 찬탄, 기쁨의 4가지와 미움, 분노, 공포, 슬픔의 4가지를 합쳐 8대 정서라 했다. 사람의 감정 중에 희, 로, 애, 락, 애, 오, 욕이 모두 시가 될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지, 정, 의(知.情.意)가 모두 시심의 밑바탕이 된다. 그 중에서 ‘정’이 정서가 되겠는데 문제는 이런 감정 중 사랑 또는 이별 슬픔 외로움 등의 감정만이 시의 중요한 정서인 것처럼 편협하게 생각하는 태도이다.
문득 헤어져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기쁨이 영원할 것 같지만은 않다.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만남 자체도 헤어짐이 있음으로써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너의 그림자가 사라져 가는 버스 뒤꽁지의 창문을 쳐다보면 또다시 쓸쓸해지는 어깨를 움찔하며 내일의 만남을 기약해 간다 어쩌다 이대로 헤어진다고 해도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어색하지만 반가운 너의 얼굴을 원 없이 쳐다볼 수는 있겠지 ―‘사랑 그리고 그만큼의 아픔’중에서
오늘은 갑자기 내가 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울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서글픔은 고동색 절망으로 흐르고 나란 존재는 정말 무엇일까 하는 생각만 그곳에 가득하다
네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리고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도 없다 그저 내 곁에만 있어 주면 좋았는데 오늘은 네가 곁에 있어도 허전하기만 하다 ―‘서정시가 흐르는 화폭’
위의 시 ‘사랑 그리고~’는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원 없이 쳐다보고픈 마음을 담은 시다. 두 번째 시 ‘서정시가~’는 그리워하는 마음의 복잡함. 그 심리적 고통에 대해 쓰고 있다. 그런데 그리움을 우울한 슬픔으로 표현한 곳이라든지 서글픔을 고동색 절망이라고 표현한 부분 등은 앞에서 이야기한 삶 또는 사랑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동색 절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고동색과 관련이 있는 주관적 경험의 표현일 뿐 객관적인 공감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되니까 5행의 ‘나란 존재는 정말 무엇일까’하는 철학적 질문도 전혀 철학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감상적인 자문으로 들릴 뿐이다. 게다가 ‘오늘은/네가 곁에 있어도 허전하기만 하다’라든가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등은 류시화, 서정윤, 한용운의 시에서 많이 접했던 구절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서정 또는 정서에 대한 심적 반응이 나약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윈체스터는 문학의 정서적 효과에 대한 영원한 가치 평가의 항목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정서의 공정 혹은 타당, 둘째 정서의 활기 혹은 힘, 셋째 정서의 계속 혹은 안정, 네째 정서의 범위 혹은 변화, 정서의 등급 혹은 성질이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느껴지느냐, 생생한 생동감으로 살아 있느냐, 믿을만한 힘이 느껴지느냐, 얼마만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서이냐, 정서다운 고상함이 있느냐 하는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대 휘어지게 선 겨울 언 땅 서릿발로 동동거립니다 손을 내밀면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따스하게 전해오는 당신의 맥박 늘 푸른 서향나무로 차 오릅니다. 가늘게 실눈을 뜬 겨울햇살로 당신을 보면 당신은 언제나 쓸쓸한 쪽으로 눈을 주며 내게로 가만히 건너오십니다. 가슴 속 그윽한 강물들 거느리고 강물 위에 드리운 산그늘로 내 온몸을 담고 계신 당신 눈동자 속 엷게 비치는 눈물로 흔들립니다. 그대가 담고 있는 당신은 어느 적 당신의 사람이었기에 오늘은 이토록 당신의 말들을 잃게 합니까 당신의 그대에게 건너가야 할 처녀의 말들 저 눈발로 떠돌고 있는 산천 당신 금이 간 서릿발로 서러웁습니다. ―‘갈대 3’
작품 후반부의 그대와 당신의 혼용으로 인한 약간의 혼란스러움은 있지만 자아 속의 초자아 또는 사랑하는 대상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체로 이 시의 정서는 잔잔하면서도 믿을만하게 느껴진다. 쓸쓸함과 서러움의 정조를 과장하거나 엄살 떨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가고 있는 잔잔한 서정의 울림이 있다.
Ⅵ. 추상적인 표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런 놈끼리 저런 놈끼리 요런 놈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작은 괄호로 묶고 큰 괄호로 묶고 묶고 묶다 보면 결국은 하나
하나라는 것을 이런 놈도 저런 놈도 요런 놈도 알고 있을까? ―‘하나로 살기’
시는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때 더 생동감이 있다.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을 빌어 생생하게 그려갈 때 느낌이 더 살아난다. 이 시는 끼리끼리 집단 이기주의로 모여 살지 말고 하나되어 살아야 한다는 심정을 표현하려 한 시다.만약에 다음과 같이 고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비교해 보자
모래알은 모래알끼리 조약돌은 조약돌끼리 버려진 돌들은 버려진 돌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개울가에서 만나고 여울로 가다가 만나고 골짝을 넘는 구비구비에서 만나는 결국은 하나라는 것을 모래알도 조약돌도 버려진 돌들도 알고 있을까
조금은 더 생동감이 있을 것이다.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을 가질 때 시는 더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들에는 이름 없는 숱한 꽃들이 피어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빽빽히 숲을 이루었다’라는 식의 표현보다는 꽃 이름 나무이름 새 이름이 적재 적소에 살아 있도록 표현한다면 시의 내용은 그만큼 더 풍부해질 것이다. 다만 진부한 느낌이 들거나 설명적이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주의도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상상력의 공간이 그만큼 줄어 들 수도 있고 시의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인 다의적 해석의 공간이 그만큼 좁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Ⅶ. 사실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
시를 쓰다 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이다. 더 잘 표현하고 싶고 더 적절한 비유를 만들어 보고 싶고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상상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것을 찾아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사실과 다르게 표현해 놓는 경우가 있다.
성장이라는 단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뒤져볼까 그 속 어딘 가엔 분명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주선하는 장기라도 있을까 만남 우혈관과 헤어짐의 좌혈관의 혈액이 감미로운 리듬에 따라 춤을 추다가 혹 장애라도 일으켜 좌충우돌로 뒤범벅되진 않을까 ―‘자라기 위한 수술 준비’
이 시는 우리가 성장하면서 겪는 고통의 원인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데서 착안하여 성장과정과 관련한 정신적인 개념들을 육체의 일부분과 결합해보는 기발한 착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몸에 좌심방 우심실 이런 이름은 있어도 좌혈관 우혈관은 없다. 상상력의 자유로운 전개는 얼마든지 좋지만 부정확하거나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한 부분의 오류가 시 전체의 결정적인 결함이 될 수 있기 대문이다. 앞에서 살펴 본 시 중에 이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피는 물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피는 물위를 정말 기름처럼 흐를까 물과 기름은 서로 겉돌지만 피와 물은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시지만 사실에 맞지 않게 표현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 여기 예로 든 시를 쓴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아직 시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강은교 시인이 이야기하는
시창작을 위한 일곱가지 방법
첫째
장식없는 시를 써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시적 공간만으로 전해 지는 것, 그것이 시의 매력이 다. 시를 쓸때는 기성시인의 풍을 따르지 말고 남이 하지 않는 얘기를 하라. 주 위의 모든 것은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시의 자료가 되는 느낌들을 많이 가지고 있게되면 시를 쓰는 어느날 그것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 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임을 기억하라
시는 경험의 밑바탕에 있는 단단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구 체적 언어를 이끌어 내 준다. 단지 감상만 갖고서는 시가 될 수 없으며 좋은 시 는 감상을 넘어서야 나올 수 있다. 시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개인을 넘어 서야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상적인 시만 계속해서 쓰면 '나'에 갇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쓰라. 단, 시를 쓰는 일이란 끊임없이 누군 가를 격려하는 일임도 기억해야 한다. (예) "따뜻함" - 강은교
웅덩이 건너편 모개가/웅덩이 쪽 모래를 손짓하는 새/ 아침별이 저녁별을 손짓하는 새/햇빛 한 올이 제 동무 햇빛을 부르러 간 새
셋째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고 자신을,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내가 정말로 시인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지 말고 신념을 갖고 시를 쓰라. 나의 시를 내가 맏지 않으면 누가 믿어 주겠으며 나의 시에 내가 감동하지 않 으면 누가 감동해 주겠는가.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 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라. 문학 평론가 염무웅 은 이렇게 충고한다. '세상의 하고 많은 일들 중에 왜 하필 당신은 시를 쓰려고 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쓰는가?'라고. 우 리는 신녀을 갖고 시를 쓰되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
네 번째,
시의 힘에 대하여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다. 미국의 자연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 는 이렇게 말했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고 전율하지 않는 사람은 한물간 사람 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일몰과 일출을 보는 습관을 가지라.' 그는 자연에서 생 의 전율을느끼라고 충고한다. 우리의삶에서 가장 전율을 많이주는 것은 무엇일 까? 연애가 주는 스파크, 음악 등이 아니겠는가. 허나 살다가 보면 이때의 전율 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시는 정신적으로 전율을 느껴야만 나올 수 있다. 그러 므로 시를 쓰려면 전율할 줄 아는 힘을 가져야 한다. 표현과 기교는 차차로 연습할 수 있지만 감동과 전율은 연습할 수 없는 부분이 다. 우리에게 감동이 혹은 전율이 스무살때처럼 순수하게 올 수 있을까? 그 순 수한 전율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인의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에 대해서
원래 '노마드(Nomade)' 란 정착을 싫어하는 유목민에서 나온 말이다. 이말은 무 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예술의 힘, 시의 힘은 바 로 이 노마드의 힘이 아닐까? 우리의 정신은 이미 어떤 틀에 사로잡혀 있는 국 화빵의 틀에 이미 찍혀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우리는 틀을 깨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흔히 문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틀을 깨는 과정에서 술(알콜)의 힘을 빌어 야 좋은 문장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술을 도구로 하여 얻어지는상 태가 과연 진짜 자유인가를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건 자유를 빙자한 다른 이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술의 힘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떤 이데올 로기도 그려지 있지 않은 순백의 캔버스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만 술을 마셔야 하지 않을까.
여섯 번째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읽히자
우리는 상투 언어에서 벗어나 '낯설게 하기' 기법을 익혀야 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신으로 긴장을 살려나가자. 감상적인 시는 분 위기로밖에 남지 않으며 '시 자체'와 '시적인 것'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시 적은 것은 시의알맹이가 아니다. 시적인 것에만 너무 붙들려 있으면 시가나오지 않는다. 우리의시가 긴장하여 이데올로기의 자유를 성취하는 순간 깜짝 놀랄 구 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정신을 지니자. 몸 의 자유가 뭐 그리 중요한가? 또한 "침묵의 기술, 생략의 기술"도 익히자. 예를 들어 T.S. 엘리어트 의 황무지 라는 시는 우리에게 침묵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시다. 시와 유행가의 차이는 그것이 의미있는 침묵인가 아닌가의 차이이다. 시는 감상이 아니라 우리를 긴 장시키는 힘이 있는 것인데, 만약 설명하려다 보면 감상의 넋두리로 떨어져 버 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묵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보다 침묵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그 시는 성공할 것이다. 말라르메는 말했다.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 이 짧은 두 행의 사이에는 시인 자신이 말로 설명 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이 보이는가? 그러나 침묵의 기술을 익히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한 법. 우리는 많이 쓰고 또 그만큼 많이 지워야 한다. 시를 쓸때도 다른 모든 세상일처럼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며 더욱이 말로 다 설명하지 않으면서 형상화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 요하다.
일곱 번째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
시를 쓰고, 어느 정도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리 긴 하겠지만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되지 않 을까?
-계간 <<시인 세계>>에서-
♧ 작품 <일자(一字)> 해설 : 임보
엄살의 시학(詩學)
1
나는 이번 학기 종강을 하면서 시는 '엄살부리기'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2
굳이 신화론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옛 노래들의 뿌리가 고대 제의(祭儀)에 닿아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전문적 시인은 사제(司祭) 곧 샤만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신을 향해 내쏟는 소망―기원(祈願)이 곧 시의 출발이다. 기원 그것은 신에게 부리는 인간의 엄살이다. 인간만큼 엄살스런 동물은 없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울 줄을 안다. 지상의 어떤 동물의 새끼들도 인간의 그것처럼 울거나 웃지 않는다. 인간의 그 엄살기가 시를 키워 왔는지 모른다. 시뿐만이 아니라 예술 전반의 바탕이 여기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 싶다. 노래를 옛 사람들은 '영언(永言)'이라 했는데, 이는 말을 길게 늘인 것 곧 과장스럽게 표현돤 엄살스런 말이란 의미가 아니겠는가. 시는 뜻의 엄살이요, 노래는 소리의 엄살인 셈이다.
3
언어 발생의 원초적 요인은 무엇인가. 욕망 표출의 수단이 아니었겠는가. 인간의 모든 언어 행위는 욕망 표출에 근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언어는 인간 엄살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로 표기된 것 가운데서도 가장 엄살스런 글이 시, 특히 서정시다. 시의 특성을 일러 '낯설게 하기'니 '의사진술(擬似陳述)'이니, '역설(逆說)'이니 하는 것들이 다 '엄살부리기'로 수렴될 수 있다.
4
나는 요즈음 허무맹랑한 꿈속에 젖어 산다. 선경(仙境)에 대한 꿈―그야말로 백일몽이다. 이 지상이 낙원이 아닌 이상 유토피아를 향한 이러한 몽상은 언제나 있어 왔다. 종교는 그 꿈이 믿음으로 정착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 조상들이 노닐었던 그 선(仙)의 세계가 어떤 것일까를 상상하면서 '구름 위의 다락마을'이라고 하는 연작에 들어갔다. 이름하여 '선시(仙詩)'라고 불러 본다. <일자一字>는 이 연작 중의 한 작품이다.
목계(木溪)라는 자를 만나 며칠 동행할 때의 일이다. 월천(月川) 강가에 이르러 잠시 쉬는데 절벽에 한 자 남짓한 길이의 "―"자가 새겨져 있다. 목계(木溪)의 얘기론 여러 천 년 전에 지나던 초공(草公)의 글이라고 한다. 무슨 뜻인가고 물으니 제대로 다 들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흐르는 물이 끝이 없어 산천이 늘 푸르다" 라고 일러 준다. 다시 한나절을 더 간 뒤 화구(火口)라는 골짜기에서 쉬는 데 또한 그 골짝의 절벽에도 一자(字) 한 획이 새겨져 있다. 이번엔 내가 초공(草公)의 글씨를 또 보는구나 했더니 이건 초공(草公)이 아니라 모공(毛公)의 것이라며 "타는 불이 그칠 줄 모르니 하늘이 늘 붉다" 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같은 一자인데 어찌 그리 뜻이 다르단 말 인가. 내 마음의 낌새를 알아낸 목계(木溪)는 껄걸 웃으며 같은 사람도 한번 그은 획을 다시 그렇게 할 수 없거 늘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 만든 그것들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작대기 획 하나로도 천 년을 오르내리면서 서로 긴 얘기들을 그렇게 나눈단 말인가. 초(草)와 모(毛 )중 누가 앞엣분인가 물으니 글의 내용으로 보아 누가 누구의 것을 화답했는지 자기도 가리기 어렵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내가 꿈꾼 것은 기표(시니피앙)의 절대 자유다. 어떠한 약속도 상징도 아니면서 주체를 다 담을 수 있는 그런 몸짓을 생각해 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수신자의 감수성에 귀착된다. 상상해 보라. 만일 어떤 사람이 흘러가는 바람결에 코와 귀를 기울이어 천 리 밖에 피어 있는 한 그루 난초꽃을 찾아낼 수 있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다면 한 덩이 돌멩이를 앞에 놓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 작품에서 꿈꾼 목계(木溪)의 수신 기능은 이런 감각적인 감수성은 아니다. 우리의 눈이 빛을 받아들이듯이 그냥 그렇게 환하게 열려 있는 어떤 영적 안테나라고 할 수 있을까. 시공을 초월해서 교통할 수 있는 그런 기능이다. 이런 기능인들에게는 시니피앙의 절대 자유가 허용된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불입문자(不立文字)라는 것도 아마 그런 것이리라.
내가 꿈꾸는 선계(仙界)에서도 생성과 소멸의 대원칙이 지배한다. 다만 그 주기가 지상과 같지 않을 뿐이다. 생성과 소멸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역동적 장치다. 만일 생성만의 세계가 있다면 그 세상은 소멸만의 세계가 지닌 공허감보다 더 견디기 힘든 답답하고 울적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영원한 생명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지리하고 멋없는 정황인가. 내가 꿈꾸는 낙원에도 생명은 유한하다. 다만 머물고 싶을 만큼 머물다 갈 수 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자유인가.
생명의 동력은 물이며 소멸의 매체는 불이다. 초공(草公)의 '一'자는 무궁한 생성의 근원인 물을 노래한 것이고, 모공(毛公)의 '一'자는 끝없는 소멸의 메신저인 불을 노래한 것이다. 생명은 소멸에 이르고, 소멸은 다시 생명을 낳는다. 둘은 고리를 이루어 돌고 돌아 앞뒤가 없다.
화자를 제외한 등장 인물들은 다 선인(仙人)이다.
5
꿈꾸는 행위―이 역시 지상적 삶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지상적 삶에 대한 엄살이 꿈으로 드러난 것이다. 어떤 시도 엄살 아닌 것은 없다. 외견상 아무리 으젓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시라도 조용히 들여다보면 그 바닥엔 엄살이 감추어져 있다. 시는 '엄살부리기'다. 그러나 '아름다운 엄살부리기'다.
안면도 바다」에 관하여
임보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와 연관된 또 다른 이미지들이 발생하여 이미저리로 발전해 간다는 얘기를 전에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내 경험을 통해서 하나의 이미지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가를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작품을 먼저 읽어본 다음 얘기를 시작할까요?
四月 봄 바다가 몸살하는 걸 잠든 섬 갯가에서 처음 보았지
갯마루 언덕마다 타는 진달래 진달래 불꽃에 눈이 멀어 쓰러져 혀로 걷는 바달 보았지
봄마다 몸살하는 매운 꽃바람 그 바람이 어디서 이는지를
잠든 섬 갯가에서 보고 왔었지. ―「안면도(安眠島) 바다」전문
어떤 정황인지 상상이 되십니까? 별로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만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안면도(安眠島)라는 평화로운 이름을 가진 섬이 있지 않습니까? 서산 앞 서해안에 자리한 길다란 섬인데 지금은 연육교가 놓이고 개발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관광지로 이름을 얻었지요. 그러나 15, 6년 전만 해도 아주 한적한 섬이었습니다.
나는 그 '안면도(安眠島:편안하게 잠자는 섬)'라는 섬의 이름에 끌려 지도를 펴놓고 자주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그 섬을 찾아 차를 몰았습니다.
송림이 우거진 어느 한 해변에 닿았는데, 4월이었으니까 바다를 찾는 사람들도 없었고 모래사장에 부드럽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동해와는 달리 서해의 바다 물결은 얼마나 부드럽습니까? 그 부드러운 물결의 이미지가 마치 '혀'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혀로 계속 핥고 있는 바다, 물결이 혀라는 느낌이 들자 바다가 엎드려 있다는 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쓰러진 바다'라는 두 번째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왜 바다가 쓰러졌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때 갯가의 언덕에는 진달래꽃이 불붙듯이 환하게 타고 있었습니다. 옳지, 저 꽃을 향해 달려가다가 그 꽃이 너무 눈부셔 그만 쓰려졌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내 상상력이 그럴 듯합니까? 그런데 쓰러진 바다가 멈추지 않고 계속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혀로 걷는 바다'라는 세 번째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한 발견에 도달합니다. 진달래꽃 해안과 움직이는 바다 사이에 바람이 일어난다고 그 바람이 바로 '꽃샘바람'이라고―. 해마다 이른봄 꽃필 무렵 불어오는 차가운 꽃샘바람이 어디서 오는 지를 몰랐는데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내 얘기를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 바다 물결의 리듬을 생각하면서 7·5조의 율격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각 연의 분량은 자유스럽게 배치했습니다. 제1연은 두 개의 7·5 제2연은 세 개의 7·5 제3연은 다시 두 개의 7·5 마지막 제4연은 한 개의 7·5입니다.
각 연의 행의 배열도 7·5의 율격과는 상관없이 자유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물결들에 어울리게 비교적 짧게 배열했습니다. 마지막 연은 분량이 적으니까 행의 길이들이 더욱 짧게 되었습니다. 작품 전제의 구성은 기승전결의 4단 구성입니다.
지난 몇 차례에 걸쳐 작품의 전개 유형들에 관해 말씀 드렸습니다만 내가 제시한 것들은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도식적인 전개 구조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지의 발전을 좇아 자연스럽게 펼쳐나가십시오. 그러면서 어떤 형태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가장 적절한가를 모색하여 결정하면 됩니다. 이것이 정형시와는 다른 자유시의 특권입니다.
정형시는 지켜야 할 이미 정해진 틀이 있지만 자유시는 내 마음대로 작품의 형태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들어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에 가장 합당한 형식을 찾아내야 하는 책임이 따르니까요. 그래서 자유시는 작품마다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유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유시가 정형시보다 쉽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입니다. 또 부담스러운 얘기를 했나요? 그렇다면 이것도 쉽게 생각하십시오. 생각을 따라 그냥 자연스럽게 전개해 가면 된다고―. 그렇게 많이 쓰다보면 언젠가는 자연히 최선의 방법이 터득될 것입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詩論 임보
素月의 그 암내서린 노래, 萬海의 그 피학대증 님사설, 芝溶의 그 입김 같은 간지럼, 未堂의 그 교만과 거드름, 靑馬의 그 뚝심, 茶兄의 그 <절대고독>도 만져 보았지, 운좋은 靑鹿派의 산과 들도 밟아 보고 金洙暎의 벗은 몸 그 배꼽하며 金春洙의 <순수>라는 <비순수>도 들춰 보았지, 그리고 참 李箱의 그 <까마귀 눈>도 쪼개 보았지, 혹은 투명한 심장의 동맥으로 혹은 뇌수의 가는 실핏줄로 혹은 손끝의 손톱, 그 잔재주로 온 몸뚱이로 영혼으로 평생 엮어 만들었다는 그들의 집, 그 오색 찬란한 그것들이 무엇인가 나도 미쳐 한 30년 뭣이 빠지도록 좇아다녔지, 그래 무엇이던가? 詩란 말이지, 그 詩란 무엇이던가? 절반쯤 감추고 절반쯤 드러내는 아니, 절반쯤 드러내고 절반쯤 감추는 그 감춤의 간지러운 곡예, 술수다, 가면이다, 詩여, 지랄이여, 똥이로다.
'시가 어떤 글인가?'를 묻는 당신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당신의 물음을 계기로 해서 잠시 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것 같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쉽지만은 않군요. 한평생 시를 써 온 소위 시인인, 그리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는 문학 교수인 내가 선뜻 대답을 못하니 실망하셨나요?
어디 시뿐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존재한 모든 사물들의 실체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끊임없이 변모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긴 세월을 놓고 보면 큰 바위도 언젠가는 미세한 모래알들로 부서져 내리고, 태산준령도 허물어지고 가라앉아 물 속에 묻히기도 합니다. 자연이 이렇거늘 하물며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라는 것들은 얼마나 덧없이 변하겠습니까? 10년이 못 가서, 아니 1년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바뀌는 것도 얼마나 많던가요?
시 역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해 오고 있습니다. 이백(李白)과 소월(素月)의 시가 얼마나 다르며, 소네트(sonnet)와 향가(鄕歌)는 얼마나 거리가 있습니까. 아니 나라마다의 시가 서로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나라의 시에서도 시대에 따라,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 다르게 마련입니다. 글을 쓰는 경향 역시 시대의 요구나 개인의 욕망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시를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한 정의는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정의는 일반적이기보다는 국부적이며, 보편적이기보다는 특수적이며,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인 것에 기울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볼까요. 누가 '사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고 칩시다. '사과는 새콤하게 맛있는 주먹만한 크기의 빨간 과일이다.' 이 정의는 얼핏보기엔 사과의 특성을 간결하게 지적해 낸 것 같지만 세상의 모든 사과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정의가 되지 못합니다. 세상엔 빨간 빛깔 이외의 연두빛이나 노란빛의 사과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과의 맛을 '새콤하다'고 지적했는데 사과에는 그런 맛 이외의 다양한 맛들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크기도 사과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여서 '주먹만하다'는 표현은 적절하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정의는 일반성과 보편성이 결여된 것입니다. 더욱이 '맛있는'이라는 수식어는 사과를 싫어하는 사람은 동의할 수 없을 테니까 이는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에 대한 정의에 너무 절망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절대불면의 객관적인 정의가 어렵다는 것은 정의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견해는 아닙니다. 어느 시대 어느 개인에게나 비록 그것이 잠정적이고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 정의는 그것대로 무가치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까지 수많은 문학인들에 의해 시에 대한 정의가 시도되었습니다. 멀리는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로부터 가까이는 최근의 문학이론가들에 이르기까지 시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피력해 놓은 글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그들이 향유했던 당대의 시나 그들이 지향했던 시에 관한 주관적 담론을 넘어서지 못한 것들입니다. '시에 대한 모든 정의는 오류의 역사'라고 말한 T. S. 엘리엇의 지적은 시에 대한 주관적 담론의 오류를 비판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떡합니까. 이 자리에서의 시에 대한 내 담론도 주관적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울 터이므로 새로운 오류를 하나 더 보태는 결과가 되겠군요.
지금까지 있었던 시나, 지금 있는 시들을 총괄해서 논의하기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므로 접어두기로 하고, 앞으로 시가 이랬으면 싶은 그 '미래의 시'에 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시가 갖추었으면 싶은 몇 가지 요소들을 제시하면서 당신의 동의를 얻어 가는 방식으로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시의 효용성에 관해서 생각해 볼까요. 어떻습니까? 시가 이 세상에 필요한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십니까? 시가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든지, 생활의 한 활력소가 될 수 있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시가 반드시 윤리적이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시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글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글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둘째, 심미성(審美性)에 관한 문제입니다. 시가 아름다운 글이어야 한다는 데 이견(異見)이 있나요? 시 속에 담긴 시인의 정서가 아름답든지, 표현이 아름답든지 간에 어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시가 예술의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한 시의 심미성은 필요조건입니다. 만일 아름다움을 거부한 시가 있다면 이는 엄격히 말해 예술의 반열에 낄 수 없는 잡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셋째, 함축성에 관한 얘깁니다. 시의 분량은 역시 길지 않고 짧다는 데 그 특성이 있습니다. 서사시나 극시와 같은 긴 형식의 시가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들은 소설이나 희곡문학으로 발전한 것이니까 시의 범주로 다루기는 적절치 못합니다. 시는 산문문학과는 달리 표현의 압축 곧 간결미를 추구합니다. 비약적인 전개, 설명보다는 암시, 그리고 생략 등의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시의 이러한 특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넷째, 운율에 관해서 생각해 볼까요. 시가 운문이라는 것은 시의 전통적 특성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자유시가 등장하면서 운율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가진 시인들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자유시는 정형시의 틀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지, 운율로부터도 해방된다고 생각하면 이는 큰 오산입니다. 시가 운율을 떠나면 산문이 되고 맙니다. 물론 산문시라는 것도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산문시도 운율을 담고 있을 때만 시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흥은 운율에서 일어납니다. 글쎄요. 자신의 작품이 흥겹게 읽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운율을 소홀히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운율을 떠난 시는 마치 성전환을 한 인물처럼 본성을 잃은 것 같아서 개운치가 않습니다.
앞에서 나는 네 가지 항목을 들어 바람직한 시의 틀을 얽어보고자 시도했습니다. 이들을 종합하면 '아름답고 짧은 유용한 운문'으로 요약되는군요.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만 갖추면 훌륭한 시가 되는 것인가? 그러나 어딘가 미진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시는 그 시인만이 지닌 개성적인 맑은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좀 모호하기는 합니다만 어떤 이는 이를 '시정신' 혹은 '시혼(詩魂)'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나는 어느 글에서 시정신을 선비정신과 동궤의 것으로 보고자 하는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시정신은 세속적 욕망을 벗어나고자 하는 승화된 정신입니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개성적인 맑은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시인은 고급의 정신 영역을 향유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시인을 언어를 잘 다루는 장인(匠人)에 앞서 하나의 구도자(求道者)로 보고자 합니다. 시는 바로 이러한 구도자에 의해 쓰여진 글입니다.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이 어 령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그 운(韻)은 출렁이는 파도에서 배울 것이며 그 율조(律調)의 변화는 저 썰물과 밀물의 움직임에서 본뜰 것이다. 작은 물방울의 진동(振動)이 파도가 되고 그 파도의 진동이 바다 전체의 해류(海流)가 되는 신비하고 신비한 무한의 연속성으로 한 편의 시(詩)를 완성하거라.
당신의 시(詩)는 늪처럼 썩어가는 물이 아니라,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詩)의 의미는 바닷물고기처럼 지느러미와 긴 꼬리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뭍에서 사는 짐승과 나무들은 표층(表層) 위로 모든 걸 드러내 보이지만 바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작은 조개일망정 모래에 숨고, 해조(海藻)처럼 물고기 떼들은 심층(深層)의 바다 밑으로 유영(遊泳)한다. 이 심층 속에서만 시(詩)의 의미는 산호처럼 값비싸다.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바다는 대기(大氣)처럼 쉽게 더워지지 않는다. 늘 차갑게 있거라. 빛을 받아들이되 늘 차갑게 있거라. 구름이 흐르고 갈매기가 난다 하기로, 그리고 태풍이 바다의 표면(表面)을 뒤덮어 놓는다 할지라도 해저(海底)의 고요함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고요 속에 닻을 내리는 연습을 하거라. 시(詩)를 쓴다는 것은 바로 닻을 던지는 일과도 같은 것이니….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바다에는 말뚝을 박을 수도 없고, 담장을 쌓을 수도 없다. 아무 자국도 남기지 않는다. 바다처럼 텅 비어 있는 공간(空間)이야말로 당신이 만드는 시(詩)의 자리이다. 역사(歷史)까지도, 운명(運命)까지도 표지(標識)를 남길 수 없는 공간…. 그러나 그 넓은 바다가, 텅 빈 바다가 아주 작은 진주(眞珠)를 키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초승달이 자라나고 있듯이 바다에서 한 톨의 진주가 커 가고 있다.
시(詩)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한 방울의 눈물을 티운다. 그것을 결정(結晶)시키고 성장(成長)시킨다.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 바다처럼 하거라. 바다는 무한(無限)하지는 않지만 무한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
당신의 시(詩)는 영원(永遠)하지 않지만 영원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 위대(偉大)한 이 착각(錯覺) 때문에 거기서 헤엄치는 사람은 늘 행복(幸福)하다.
- 문학세계사 발행. '말'에서 -
시인이 하는 詩評 (시평 2004년 가을호)
달팽이 略傳
「현대시학 」2004년 5월호
서정춘
내 안의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밖으로 빚어 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들쳐업고 명부전이 올려다 보인 뜨락을 슬몃슬몃 핥아 가는 온 몸이 혓바닥뿐인 生이 있었다
아름다운 불행
마경덕
마치 달팽이가 흘리고 간 흔적처럼 시 한 편이 한 행이다. 고달픈 삶의 여정처럼 쉼표 하나 없이 이어져 있다.
달팽이 한 마리를 기억한다. 나선형의 둥근 집, 집이 아닌, 짐이 되곤 하던 그, 가엾은 집 한 채를 기억한다. 배춧단에 딸려온 달팽이 한 마리, 한동안 내 말벗이었던.
물기가 마르면 금세 유골단지가 되어버리는 달팽이의 집. 나는 분무기로 그의 등을 촉촉이 적셔 주었다. 슬픔이 마르지 않도록 그에게 슬픔을 부어주었다. 어느 날 그의 슬픔은 동이 났고 달팽이는 비로소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달팽이는 복족류(腹足類)다. 배가 발바닥인 셈이다. 배를 문지르며 바닥을 기다보니 굼뜨고 느리다. 등에는 평생 지고 가야할 짐도 있다. 가히 '혓바닥뿐인 生'이다. 분명 혀가 아닌 '혓바닥'이다. 혀는 손이나 팔처럼 신체의 일부이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일부러 내밀지 않고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혀다. 대개 몸의 중요한 부위는 은밀한 곳에 숨어있다. 달팽이는 그 혓바닥 같은 몸뚱어리를 내밀어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부드러운 혀로 거친 바닥을 슬몃슬몃 건너가야 한다.
'슬몃슬몃'속에는 조심 조심이란 뜻이 들어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달팽이는 뿔처럼 생긴 두 개의 눈을 탐지기처럼 쉬지 않고 움직인다. 무거운 짐을 지고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의 삶도 달팽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등에 얹힌 껍데기는 이미 한 채의 유골. 혼령의 집엔 골조가 없다. '뼈란 뼈 죄다 녹여'버리고 육체와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달팽이가 평생을 들쳐업고 다녔을 그 집이 이젠 동그란 항아리가 되었다. 유골 한 채가 명부전(冥府殿) 앞에 놓여진 것이다. 명부전이란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유명계(幽冥界)다. 지상에선 명토(冥土)라고 하여 지장보살 염라대왕 등 시왕(十王)을 안치한 전각(殿閣)이다. 명부전의 뜨락에 엎드려 달팽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은 넋의 영생을 위해 극락왕생을 비는 것인가.
시인은 달팽이가 지고 온 무거운 짐을 운명이라 했다. 그 어떤 거부의 몸짓도 없이 고통마저 달게 받아들였다. 시인은 달팽이의 짐을 유골이라 하였고 그 유골을 아름답다고 하였다. 달팽이가 뼈를 녹여 만든 것은 한 채의 유골, 곧 詩이다. 골수를 짜내듯 시를 짓다보니 뼈란 뼈는 다 녹아서 詩라는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이루었을 것이다.
略傳이란 사적(事績)을 간략히 적어서 뒷세상에 전하는 기록인데 시에 표현된 시점이 죽은 뒤의 기록이다. 몸은 삶, 곧 현실에 아직 놓여 있는데 굳이 약전이라고 붙인 까닭이 무엇인가. 저승 세계는 이미 시인의 가시권(可視圈)에 들어와 있다. 詩에게 살과 피를 내주는, 시에 대한 지독한 사랑으로 시인은 껍질만 남은 존재를 확인한다. 시로 인한 깊은 상처로 인해 시인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시로 인한 불행이 시인에게는 아름다운 행복인 것이다.
시인은 자기 세계(뜨락)를 슬몃슬몃 핥으며 살아 왔던 달팽이, '온몸이 혓바닥뿐인' 달팽이를 등장시킨다. 여덟 글자로 달팽이의 전 생애를 요약하고 '뿐'이라는 한정어를 덧붙여 보잘것없는 삶을 강조해 놓았다. 이것은 연체동물인 달팽이의 생애 뿐 아니라 평생을 포복하며 사는 인간의 삶을 함축하는 말로, 달팽이의 생이 돌연 인간의 생으로 변하는 접점이 된다.
혀가 하는 일 중 하나는 말을 고르는 일. 평생 언어를 고르고 다듬어야 했던 시인은 혓바닥뿐인 삶이었다. 시인의 삶은 말, 즉 로고스(Logos)와 관계가 깊다. 로고스는 고대로부터 철학이나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존재를 가리킨다. 이 시에서는 사상으로서의 존재보다는 시장바닥처럼 질펀한 존재를 말하고 있다. 혀가 아니고 ‘혓바닥’이기 때문이다. 결국 달팽이의 집은 존재의 집이요 영혼의 집이다.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를 꼭꼭 뭉쳐 엮는 것이 서정춘 시의 특징이다. 그래서 시는 짧아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시인은 등단 28년 만에 첫 시집 『죽편』을 냈다. 시집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렇게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달팽이처럼 더딘 걸음인 것이다.
그러나 느린 것들은 집요하다. 서두르지 않으므로 포기 할 줄도 모른다. 그 느림 속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힘이 숨어있다. 그 힘으로 달팽이는 담을 타고 벽을 넘는다.
서정춘의 시에는 한 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는 옹골찬 힘이 숨어있다. 고은 시인은 좋은 시에는 시적 불운이 필요하다며 시인을 일컬어 "뼈 속에 무덤 기운이 가득하다.“ 고 했다. 그렇다. 「달팽이 略傳」에도 무덤 기운이 넘치지 않는가! 실로 시인과 달팽이가 자웅동체가 된 듯하다.
한국 문단의 4대 비극 / 이승하
제자 중에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이란 것을 받은 이가 있어 시집 출간을 알선하게 되었다. 유명 출판사의 사장님께 편지를 드렸으나 몇 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해보았다. 이런 말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시내 대형 서점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서점마다 시집은 판매대 자체를 없애버렸습니다. 시집 코너가 다 사라진 지금 이 상태에서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바보짓이지요. 요즘 저희는 아동물 출간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닌게아니라 그 출판사에서는 다른 이름을 2개 더 등록하여 실용서와 아동물 출간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출판사를 인수한 사장님은 처음 몇 년 동안 시집과 시 평론집 출간에 열을 올렸으나 재미를 못 보았는지 어느새 '팔리는 책' 출간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기에 이른 것이다. 시와 시 비평을 겸하고 있는 나로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서점에서 시집 판매대 자체가 다 사라져버렸다니. 이것이 현실이라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시집을 다년간 출간해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사에서 시집 출간 종수를 확 줄인 것도 어느덧 5, 6년이 되었다. 문학과지성사·문학동네·문학세계사·민음사·세계사·시와 시학사·실천문학사·창비 같은 출판사에서 시집 출간 종수를 줄인 것은 시장의 논리를 따른 것일 터인데, 무슨 대안이 없는 것일까. 시집이 도무지 안 팔린다고 이런 출판사에서는 울상을 짓고 있지만 이른바 '베스트셀러 시집'은 불황을 모르니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일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여러분 가운데 류시화·서정윤·용혜원·원태연·이정하·이해인 같은 시인의 시집이 몇 판을 찍었는지 아신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자랑하고 있다. 수십 쇄를 넘어 100쇄 넘긴 것이 수두룩하다. 이들이 내는 시집은 예외가 없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놀랍다.
1. 시인에게는 문제가 없는가
시인의 수가 많은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문예지의 폭발적인 증가로 말미암아 해마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시인이 배출되고 있는 것은 문제이다. 기본기를 충분히 닦고서 시인이 되지 않고 창작실기지도를 하는 사숙에 1, 2년 다니고서 시인이 되려고 애를 쓰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시인이 된다. 너도나도 쉽게 시인이 되다 보니 고급독자층이 무너지고 아마추어 수준의 시인들이 시인 행세를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땅 시인들의 쓸데없는 난해함은 시집 독자의 외면을 사게 된 주범이 아닐까. 시인 자신도 뜻을 알고 썼을까 하는 시들이 문예지마다 넘쳐난다. 독자에게 무엇을 말해주고자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독백에 가까운, 자기 고백적인, 혹은 유아독존적·자가당착적인 시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시집 판매의 주고객이라는 청소년층과 대학생층, 그리고 직장여성층은 정통문학권 출판사에서 내는 시집을 읽는 것을 '마침내'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시의 다른 이름이 운문인데 이 땅의 시들이 산문화로 치닫고 있고, 한편으로는 너무 길어진 것도 한 원인일 수 있다. 같은 산문시라도 정진규 같은 분의 시에는 내재율이 있어 겉모습만 산문일 뿐 엄밀히 말해 운문이요 시이다. 그런데 요즈음 많은 시인들이 운율을 버리고 산문을 취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시집의 특징 중 하나는 산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외양은 운문 같을지라도 여러 행 계속 이어진 문장이라 산문과 진배없는 시들도 많다. 기성시인들의 시가 이렇다 보니 백일장에 오는 고등학생들조차 태반이 시를 산문조로 쓰고 있다. 그래서 줄글로 쓰지 말고 행과 연을 적절히 나눠 운문형식으로 써달라고 따로 당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2. 문예지에는 문제가 없는가
웬만한 문학단체마다, 지방 대도시마다 문예지 안 내는 곳이 없어 이제 문예지는 춘추전국의 시대로 돌입하였다. 국민 총수와 문인 총수에 비겨 이렇게 많은 문학잡지가 출간되는 나라가 세계에 또 있을까? 문예지의 수가 많다 보니 거기 실리는 작품들의 수준에 참으로 문제가 많다. 또한 세력 확보를 위해 신인을 뽑지 않을 수 없으니, 충분한 습작기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에 나온다. 예전 같으면 시인 지망생으로서 꾸준히 시집을 사보며 절차탁마 습작을 하고 있을 사람들이 시인이 되었으므로 남의 시를 감상하며 연구하지 않고 자신의 시를 발표하고 있다. 정직한 문예지라면 '신인상 수상작 없음'이라는 사고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문예지는 신인을 내보내면서 책 구입을 강요하여 문제가 된 적도 있는데, 재정상태가 열악한 일부 문예지의 횡포일 테니 이 자리에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수준이 영 안 되는 기성시인의 작품을 되돌려보내는 횡포는 부려도 좋을 것이다. 그런 것을 문예지 제작의 방침으로 삼는 문예지가 있으면 좋겠다. 또한 안면을 배제하고 공정한 시각으로 시인을 선별하여 작품을 청탁하고, 엄정한 신인 배출과 문학상 시상으로 이미지를 잘 가꾸는 문예지가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차피 문예지가 잘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야 정직성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무엇 하러 문예지를 만든단 말인가.
문예지의 또 다른 문제점은 논점이 없거나 논쟁이 없다는 것이다. 월간 {현대문학}이 한때 '죽비소리'라는 코너를 마련해 화제작이나 유명 문인의 신작에 대해 죽비를 내려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반박의 목소리를 두려워해 익명으로 글을 올림으로써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무렵에 "문예지에서 읽을 만한 글은 {현대문학}의 '죽비소리'밖에 없어"라는 말을 여러 사람한테서 들었다. 그만큼 우리 문단에서는 '사심 없는 비판'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문학적 경향이나 이념이 다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대담을 가지면 좋은 방안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지나친 욕심일까? 오래 전 {문예중앙}에서는 김정환과 이인성의 대담을 실었는데, 대단히 신선한 느낌을 받았었다. 아직도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 두 분의 화려한(?) 설전이 잊혀지지 않는다.
3. 문학평론가에게는 문제가 없는가
나 자신 간간이 비평류의 글을 쓰고 있기에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이겠지만 문학평론가들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 문학평론가들은 대개 다소간의 권력을 지니고 있다. 가령 어느 문예지에서 특집으로 '9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 10인의 시 세계'란 것을 마련했고, 어느 문학평론가가 그 일에 관여했다면 그는 분명히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의 권력은 신인 등용과 문학상 심사에 관여하면서도 나타나지만 작품 청탁을 하거나 특집을 정하는 일, 시집 출간을 결정짓거나 각종 평문을 쓸 때도 나타난다.
첫 번째 문제는 '식구 의식'에 대한 것이다. 내가 활동의 무대로 삼고 있는 문예지 혹은 문학단체의 일원이 아니면 작품을 읽지도 않고 논하지도 않는 문학평론가들이 있다. 달리 말해 '우리 식구'이면 작품의 수준에 대해 양심적으로 논하지 않고, 대개의 경우 칭찬을 일삼는다. 해설이나 서평은 애당초 한계를 지닌 글이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사사건건 우리 식구만을 감싸고도는 비평적 행위가 만연해 있다. 그래서 '주례비평'이니 '골목비평'이니 하는 욕을 먹고 있지 않은지.
두 번째 문제는 권력을 가진 문학평론가들이 사실상 두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에 몸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겁이 많다. 그 한 예가 유명 문인의 태작에 대해 비판을 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아예 입을 봉하고 있는 것이다. 몇 개월 전, 장석주 씨가 김춘수의 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을 읽었는데 솔직히 큰 감동을 받았다. 재야에 있는 분이어서 그런 용기를 발휘한 것일까, 오랜만에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 글을 읽었다. 그 글은 이렇게 끝난다.
시와 삶은 따로 가지 않는다. 그것은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가지이다. 김춘수의 백일몽에서 나온 이미지들이 머금고 있는 의미들은 심약함, 패배주의, 소외, 존재의 고독, 불안, 자기분열이다. 김춘수는 자신의 뜻없는 말놀이들의 시들을 두고 '무의미 시'라고 명명하지만, 그것은 타자와의 소통이 차단된 자의식에 갇혀버린 자의 자기분열과 심약함을 드러내는 기표에 지나지 않는다. 김춘수의 언어들은 실재의 세계로부터 끝없이 도피하는 언어, 그 내부로부터 의미를 지워감으로써 현실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상상적 유희로 환원해버리는 비본래적인 언롱(言弄)의 세계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김춘수의 시에서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하며, 그를 이미지 조형술의 천재, 혹은 수사의 달인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지언정 감히 큰 시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언롱의 한계와 파탄], {시경}(2004. 상반기)에서
와병중이신 시인에게는 외람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글을 읽고 내심 '옳은 말씀이로고' 라며 쾌재를 불렀다. 대가일지라도 명작만을 쓸 수는 없다. 대가이기에 양지만을 골라서 걸어온 문인이 있다면 작품의 음영을 따지는 문학평론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문학은 발전할 수 있다. 장석주 씨 같은 용기 있는 평론가가 이 땅에는 불행히도 많지 않다.
젊은 문학평론가 최현식 씨는 계간 {파라 21} 여름호에 발표한 [질문의 실종과 포에지의 응고]라는 글에서 한국 현대 시단에서 각광받고 있는 최승호·안도현·김용택·고재종의 최근 시들을 '현실을 회피하는 신비주의'라는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 글을 시인 당사자가 읽었다면 기분이 나빴겠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을 것이다. 최현식의 말마따나 "시인의 시적 직관과 통찰이 상투화·범속화되고" 있는 이 때, 그것을 지적하는 용기 있는 발언은 시인이 정신을 차리는 데 일조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세 번째 문제는 두 번째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문예지 혹은 출판사라는 더욱 큰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문학평론가가 갖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문학평론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기댈 언덕, 혹은 비빌 언덕에 대해 너무 골똘히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명 출판사에서 문학평론집을 못 냈다고 하여 누가 그를 멸시하는가? 천하를 호령하던 조연현의 평론을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읽고 있단 말인가. 문학평론가가 권력을 두려워하거나 권력에 아첨하면 상갓집의 개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4. 독자에게는 문제가 없는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급독자나 문학애호가들이 튼튼한 층을 이루고 있지 않고 너나없이 시인이며 소설가, 수필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스스로 글을 쓰려고 들지 남의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읽고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고 잽싸게 쓴 글로 재빨리 인정받으려 한다.
독자들은 또한 아픔과 슬픔의 세계를 굳이 외면하고 기쁨과 즐거움의 세계를 찾으려 든다. 딱딱하면 배격하고 심각하면 외면한다. 시건 소설이건 베스트셀러의 경우, 인생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짧은 즐거움과 위안을 제공한다. 혹은 최루성을 띠기도 한다. 독자층이 있기는 있되 PC통신문학과 환타지소설에 열광한다. 좋은 작품을 좋다고 하고 나쁜 작품을 싫다고 하는 양식 있는 독자층이 없다면 정통문학의 앞날을 결코 밝을 수 없다.
대학로에 가서 놀란 것이 있다. 장식품이며 선물용 물건을 파는 가게가 곳곳에 눈에 뜨이고 액세서리를 파는 행상도 즐비한데 서점은 도무지 눈에 안 뜨인다는 것이었다. 그런 가게마다 사람들이 빼곡한데 어느 한 서점에 갔더니 사람이 한두 명만 있었다. 독자는 어디로 갔는가? 독자는 다 사라져버렸는가?
한국 문단의 4대 비극을 더 이상 보게 되지 않기를 갈망하지만……. 나는 시인이면서 문예지 편집에 관여하고 있고, 문학평론 유의 글도 간간이 쓰고 있고, 또한 문학 독자이기도 하다. 이 모든 비극적 진단에서 나만은 그렇지 않다고, 나만은 독야청청하다고 변명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껴안고서 좀더 나은 문단 풍토, 문학 풍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을 뿐이다. (2004. 11. 20)
이승하 시인
제1회 가림토문학상 당선작
초여름 일기 외 2편 / 이정원
한낮은 뭉근하다. 푸른 잎사귀들이 더위에 제 몸을 내어 주고 달아오르는 동안 아이와 팔베개하고 드러누워 클클 대며 만화책을 읽었다. 사그락 사그락 마르는 빨래, 바람이 휘저으며 노는 소리, 쓰레기통은 한참 부화중일 테지. 살충제를 들고 일어나는 순간 아이의 잠이 툭 떨어진다. 어느새 아이는 어미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듬지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인가. 몸이 뿌리로 박혀 꽃으로 환생할 어디쯤 곤충의 애벌레같이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아이의 잠을 베게에 올린다. 아이는 놓쳐버린 꿈을 움켜쥐려 한번을 더 뒤척이고, 땅속의 모든 벌레들이 돌아눕는 소리, 땅의 껍질을 깨고 튀어 오른다. 쓰레기통은 닫혀있다. 마른 잎이 물을 끌어당길 동안 빨래집게에 꽂힌 햇빛 한줌 마악 잎사귀에 내려앉을 판이다. 주룩주룩 설거지물 하수구에 쏟아져 내린다. 아이의 덜 닫힌 잠의 창으로 한줄기 소낙비 시원스레 퍼 붓는다. 뭉근해진 한낮이 조리개 속으로 풀어진다. 풋여름이다.
가림토 문학상 심사평
시인은 눈 하나가 더 있다. 보이지 않은 것까지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이가 시인이다. 상상력은 곧 시의 힘이다. 신인들의 응모작품에 어떤 상상들이 담겨있을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응모작 3000여 편의 작품 중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들이 많았다. 시의 소재가 단순하거나 시의 주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신인다운 패기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힘도 부족하였다.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도 눈에 띄었지만 자신의 주장으로 끝나거나 많은 것을 담으려는 욕심이 지나쳐 시가 어지럽고 지루하였다. 언어는 넘치지만 생각은 빈곤하였다. 적절하지 못한 은유와 공감하기 어려운 생경한 표현도 눈에 거슬렸다. 묘사보다는 설명에 가까운 작품들. 높고 깊게 확산되지 못하고 일차적인 생각에서 그치거나 익숙한 소재에 안이한 표현, 또는 지나친 기교로 난해하고 작위적인 시가 많았다. 기대했던 작품도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부족해 일부 좋은 표현도 빛을 잃고 말았다. 대부분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이 얕고 단순해 아쉬움이 남았다. 응모 작품의 수준이 편차가 심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두 번의 예선을 거쳐 세 사람의 작품이 최종까지 남았다. 그 중 이정원 씨의 <초여름 일기>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나른한 아이의 잠을 베개 위에 올려놓듯, 시가 따뜻하다. ‘아이의 잠이 뚝 떨어진다’는 표현은 풋여름 만큼 상큼하다. 아이가 잠깐 낮잠을 자는 사이 초여름은 빵처럼 부풀어오르고 몇 번의 즐거운 상상이 스쳐간다. 그럼에도 시의 서사를 한 군데로 모으는 데는 부진했다.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신인다운 패기와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잠재력이 엿보여 손을 들어 주었다. <일회용 눈물>은 영정 사진 앞에서도 손수건 하나 젖지 못하는 현대인의 무관심, 늘 싱싱한 눈물의 준비해야 되는 현대인의 강박감을 재미있게 표현하였고, <노인의 실종>에서는 사라져 가는 孝心, 소외된 노인들의 아픔을 그려내었다. 라면과 때묻은 장난감을 통해 버림받은 노인,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대비시켰다. 바퀴자국마저 사라져 버려 사건은 결국 미궁으로 빠진다. 물질만능시대의 단면을 잘 나타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와 유사한 시들이 여러 차례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신인을 배출할 땐 잘 다듬어진 작품보다 새로운 작품을 원한다는 것을 당선자도, 이후의 응모자도 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주현미 씨의 <308호 남자>는 카운터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장기 투숙객인 한 사내를 관찰한다. 308호 사내가 액자 속의 잉어를 바라보는 동안 모니터는 24시간 사내를 감시한다. 사내가 묵고 있는 308호, 즉 액자 속에 갇힌 연못과 끝방은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한다. <308호 남자>는 모텔 장기투숙객인 외로운 사내를 통해 감시카메라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시대의 불안감과 불신을 다루었다. 긴장감이 부족한 것이 흠이었으나 <나무가 된 여자>와 <솟대>에서는 흔한 소재였음에도 한 줄로 꿰어나가는 다부진 힘이 보인다. 김산 씨의 시에서는 꾸준히 쌓아온 습작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 응모자의 시선은 어둡고 구석진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바라보는 눈은 긍정적이며 건강하다. 아파본 적도 없는 사람이 중병에 걸린 것처럼 엄살을 떠는 경우가 흔한데 김 산 씨의 시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글이 경직되어 있다. 행간과 행간을 이어가는 연결고리가 매끄럽지 않다. 쓸데없는 힘을 빼고 시에게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마경덕 (시인)
늦동이를 위하여 : 조영학의 <탄생서곡> / 이찬
나는 조영학 시인의 <탄생서곡>을 아주 좋아한다. 내가 그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시 자체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시 속에 등장하는 한 생명의 탄생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조영학 시인의 <탄생서곡>은 그의 늦동이 딸이 태어났을 때, 그 늦동이 딸 윤빈이를 위해 쓴 시다. 나는 7년 전 <탄생서곡>을 처음 읽으며 시인 아빠를 둔 딸, 특히 그 딸의 탄생을 위해 시를 써 준 시인 아빠를 둔 딸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긴 세월이 지나 그 딸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었을 때, 설혹 그 딸이 시인이 되지 않았다 해도, 그 딸은 자신의 탄생을 위해 아빠가 지은 <탄생서곡>을 읽으며 자신의 자식을 위해서도 시를 짓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를 이어가며 새로운 의미와 생명을 얻게 될 조영학 시인의 <탄생서곡>을 읽으면 나는 늘 커다란 부러움과 더불어 시의 생명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된다.
1
하느님은 너를 그림자로 축성하셨고 가난한 집에 시집 온 어머니는 설움을 눈물로 엮어 네 목에 걸어주셨고 나는 소문으로만 떠도는 행복을 수수께끼로나 그려줄까
2
얘야 여기가 네 땅이다 어머니의 태몽 속에 꼬깃꼬깃 접은 하늘을 열고 나와 한 뼘씩 한 뼘씩 더듬어야 할 하늘의 약속 너 외의 어디에도 중량을 주지 않는 성장의 무게로 질기디 질긴 호흡을 끊어내며 너는 이제 한낱 가능성이 아니다 하느님이 네 손에 꼭 쥐어주신 이 땅은 구체성 출발의 어느 구석에서도 알지 못하고 스핑크스의 퍼즐을 풀어 어머니 곁으로 가고자 했던 얘야, 가슴 가득 용서해야 할 네 땅이란다 네 나라 아아, 너의 신화는 네 커가는 울음소리를 재차 확인해야 하는 역설로 목 메이고 눈 멀고
조영학, <탄생서곡> 전문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여러분에게
이승하(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아래는 시인 이진우 씨가 운영하는 문학 웹진 시인학교(www.poetschool.net)에서 퍼온 글입니다. <이오.李烏 >라는 분이 올린 것이고, 제목은 '위선환 시인의 방에서 옮긴 글'입니다.
1) 한 작품에 많은 사연을 담지 말 것. 한 편의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정서든 이미지든 하나여야 하고, 다른 모티프들은 그것이 뿜는 자장(磁場)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이때 시는 통일성을 얻는다.
2) 비유와 상징을 아낄 것. 비유는 아낄 수 있는 데까지 아껴야 오롯한 품위를 갖는다. 상징은 시인이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숨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3) 긴 시를 경계할 것. 시의 참된 맛은 행간에 있다. 행간에는 침묵의 언어와 정서의 긴장이 깃들여 있다. 긴 시는 행간을 매립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4) 시상을 풀어 가는 수단으로써, 분명하게 몸으로 감촉 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할 것. 불투명한 관념이나 감정을 시 비슷한 문법으로 채색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
5) 정서의 결을 잘 다듬을 것. 몇 번의 침전과정을 거친 그리움이라면 슬픔 따위가 개운하게 세척된 상태라야 한다. 물기가 없이 잘 마른 상태라면 더욱 좋다.
6) 구문이 거추장스러운 것, 관형구나 부사구가 무거운 것은 금기다. 줄기가 가지를 지탱하기 어렵다. 관형어나 부사어가 상쾌하게 오려진 문장은 조촐하고 산뜻하다.
7) 시로 삶의 각성이나 잠언적인 의도를 노출시키지 말 것. 시는 철학이 아니라 미학이다.
<노트> [시안] 2002년 봄호에 실린 글을 축약해둔다. 시를 쓰면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일들을 찬찬하게 지적해주었다. 두고 읽을만 하다.
<추기> 다음은 <시안)2003년 봄호에 실린 박남희의 신인상 예심평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심사과정에서 제외된 작품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결점을 안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1)알맹이는 없이 장식적인 어구를 구사하고 있는 경우 2)미처 객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감상성이나 관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는 경우 3)생각이 너무 단순하고 너무 빤한, 평면적인 상상력에 기대고 있는 경우 4)치기 어린 사랑시에서 못 벗어나 있는 경우 5)너무 낯익고 관습적인 묘사나 비유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 6)시와 산문의 차이점을 모르고 평면적인 서술로 일관하고 있는 경우 7)<-하노라> <-구나> <-어라>등과 같이 의고체나 감탄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경우, 등인데 8)개중에는 앞부분의 몇 작품은 괜찮은데, 중 후반부의 작품들이 편차가 너무 심해서 제외된 경우도 있다.
<추기) <현대시> 2002년 5월호에 실린 오세영 시인의 다음 말에도 귀를 기울이자
첫째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시는 무의미다, 유희다, 그런 입장과 변별되지요. 시는 일단 진지하게 쓰는 거라는 것이 나의 첫째 원칙이예요. 둘째는 시의 원리는 건강성이라고 보는 거죠. 시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 기여해야지, 인간의 존재를 해체하고 감수성을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건강한 정서는 시의 아름다운 덕목 아닐까요? 셋째는 아름다운 것을 쓴다는 입장이예요. 아름다운 것만 가지고 써도 다 못 쓰잖아요. 굳이 혐오스럽고 추한 것까지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문제고요. 마지막으로 넷째 원칙이 있다면 쉽게 써야 한다고 봐요.
....독선적으로 문학이 아닌 하나의 이념을 고수한다든지, 시류에 속박되어 버린다든지 하는 것은 대단히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가령 한바탕 포스트모더니즘이 휩쓸고 지나갈 때도 그러했지만, 요즘도 젊은 시인들의 시를 보면, 앞선 시인의 아류적 모방이거나 시류적 타협의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맹목적으로 시적인 기류에 섞여드는 것은, 창조적 상상력을 오히려 구속하고 억압하는 획일화의 한 예가 될 수 있지요.(... 획일화된 사유는 안됩니다.)
<추기>평론가 박재열은 <포에지>2001년 겨울호에서 멜로우 포에츄리의 예로서 다음 몇 가지를 들었다.
1)잠언이나 금언 경구 같은 것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 * 시인 황동규는 서정시학 2002년 여름호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아포리즘으로서 유머와 슬픔의 반경 안에 들어 있다고 평가되는 이정록의 "슬픔"의 전문인, '열매보다 꽃이 무거운 생이 있다'를 들어 보이면서 '그러나 이 멋진 아포리즘은 시의 근원인 노래에서 멀어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2)대상 자체의 물질성이나 즉물성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자신이 즐겨 쓰는 시어에 의탁하여 통속적인 정서를 불러내는 것 3)이미 여러 시에서 도식화해 놓은 등장인물, 주제, 시적 언어들을 사용하는 것 4)도식적으로 소재를 인식하는 것, (양식화한 자연관, 이분법적 사고와 고식적인 태도를 포함한다)
<추기> .......그(윤동주)는 한 마디의 시어 때문에도 몇 달을 고민하기도 했다. 유명한 <또 다른 고향>에서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라는 구절에서 '풍화작용'이란 말을 놓고, 그것이 시어답지 못하다고 매우 불만스러워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그대로 두었지만, 끝내 만족하지를 않았다.....
위와 같이,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2년 후배인 정병욱씨가 1976년 <나라사랑> 23호에 발표했던 회고담 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강인한 시인은 "시의 어법이 결국은 합리적, 보편적 상식과 바른 문장 표현으로부터 출발한다" 는 점을 강조했다.(현대시 2002년 7월호)
<추기> 시인 송수권은 자선시집 <여승>에 실은 배한봉 시인과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시는 사유재산이고 비밀재산이에요. 그런데 대중을 상대로 유통언어를 얼마나 많이 뿌리는가요? 그런 시를 나는 '뽕짝조' 타령이라고 부르거든요. 그것이 카페정서지 민족정서라곤 볼 수 없어요. 대학 강단에선 언급도 안되는 시들이 바깥 세상을 얼마나 오염시키는가요. 베스트셀러 시집들의 속성이 그렇잖아요. 말초적 감각을 흔드는..., 그래서 잘 팔리는 시인들이 따로 있지요. 이런 현상은 저널리즘이 문제입니다. 아카데미즘이 아닌...., 시를 보는 눈이 천박한 독자 수준을 넘지 못해요. 문창과 신입생들에게서 이 유통언어를 걷어내는 데 1년이 넘게 걸려요. 또 사회교육원 시 전문반만 해도 뽕짝조에 물들어 자기 사적인 비밀언어를 무덤 쓰고 살아요. 시가 기본수준도 안되는 원인이 이 때문인 줄 모르니 여고생 때 썼던 시를 평생 쓰고 있는 우스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추기> 시인 유용주의 다음 "고백"을 들어보자
.....참 부드럽고 아늑하고 겉보기에 풍성한 곳을 많이도 찾아 다녔다네. 사근사근 혓바닥에 구르는 당의정처럼 독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연애시의 마을, 자기가 쓰고도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른 해독 불가능한 난해시의 패거리, 요설과 장광설 하나로 포스트모던의 적자임을 강조하는 외국 입양을 못해 안달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임, 엄살과 광기로 얼룩진 반장들 동네, 공식을 만들어 놓고 언어를 조립하는 조립식 건축업자들의 단체,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도사풍의 시, 끊임없이 남의 시를 조금씩 베끼는 쥐새끼들의 시, 주제만 너무 주장하다가 그 주장에 치어 저도 감당하지 못할 말을 주저리주저리 동어 반복하는 사람들까지 수 없는 마을과 동네를 기웃거렸다네. 한때는 그 사람들과 들고나면서 만고풍상을 겪었지만 결국 문학이란 사람살이에서 오는 눈물겨움 아니던가. 잘 드러나지 않은 그늘의, 배면에 깔려 있는, 생명 있는 것들의 안쓰러움 아니던가. 모시고 섬기는 일에 너무 인색해. 모두들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지금 말한 내 말도 내가 그런 과정을 거쳐 오면서 부화뇌동했다는 고백을 하기 위함일세. - 서정시학 2002년 여름호
<추기>오늘의 우리 시를 읽는 대중들은 김소월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박한 수준임에 비추어 정지용 이상의 수준은 잘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의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시들을 한두 편 예로 들면 대체로 이런 부류의 시들이다. ①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 뛰어든 / 나는 / 소금인형처럼 / 흔적도 없이 / 녹아 버렸네
② 그대를 만나던 날 /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 착한 눈빛, 해맑은 웃음 /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도 / 따뜻한 배려가 있어 / 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 오래 사귄 친구처럼 /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①은 류시화의 '소금인형' ②는 용혜원의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라는 시들이다. 그래도 류시화의 경우는 깊이 있는 명상을 동반하는 시이므로 나은 편이지만 용혜원의 경우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겨냥한 얄팍한 감상주의의 옷을 입고 있으며 그것을 한 꺼풀 벗기면 에로틱한 연애편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글에선가 이승하 시인이 지적했듯이 류시화의 시는 이 땅의 현실이 완전히 제거된 신비주의적 명상 내지는 잠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가 있고, 목사 시인인 용혜원의 시는 소녀적인 감상을 포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둘 다 상업적인 전략의 차원에서 쓰여진 시라 할 것이다
- 강인한 '시와 시인, 독자와 시의 거리'―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에서
<추기> 시는 언어예술이기에 시인은 말을 잘 부릴줄 알아야 한다. 또한 시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이른바 진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시는 새로워야 한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참신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시와는 다른 목소리와 모습을 지녀야 한다. 그런 것들이 또다른 시와의 변별성이며 개성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의 모험을 해야 한다.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이 시의 독창성이며, 시의 진실이며, 시의 감동이며, 시의 진정한 모습으로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이다. - 제13회 <시와 사람> 신인상 심사평 중에서
<추기>...딸의 신발이 작다고 신발을 벗기고 발가락을 자르는 아버지, 내 몸을 둘둘 말아 접시에 올려놓았더니 나를 집어먹으려는 어머니, 몸이 기우뚱거리지 못하도록 아버지에게 자신을 쾅쾅 박아달라는 딸..., 그러나 여성시에 관한 한 이런 진술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조말선의 시에는 박서원의 자기 신체 훼손, 노혜경의 카니발리즘, 김언희의 도발적 상상력 등 선배 여성시인들의 언어가 큰 변주 없이 한 집에 모여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의 낡음이 사유의 낡음과 무관하지 않다면, 언어의 답습은 적지 않은 결함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한국시에 관한 한, 서정적 경향의 시라고 분류되는 것에는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이 존재한다. 대체로 자연친화적이고, 복고적이며, 전근대적 삶에 향수를 느끼고 있고, 세계의 불화나 갈등 보다 화해나 조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안이한 감상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문단에서 여전히 주류를 점하고 있는 이러한 시들의 생산은, 정치적 현실로부터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던 제도권 문학의 탓도 있지만, 최근 생태주의적 인식의 대두에 고무되어 목소리를 더 높이는 경향이 있다...안이한 서정시일수록 세계의 복잡다단함과 폭력성을 직시하기보다는 대상과의 합일이 가능하다는 사고에 기울어지는 추세가 있다. 그를 위해 순진무구한 자아를 설정하거나, 세계와의 합일이 가능한 시대나 지역이라고 생각되는 전근대 또는 문명화되지 않은 영역이 등장하는 경향이 한국 서정시에 빈번하다. - 정문순 (다층 2002년 겨울호 '2002년 시를 점검한다' 중에서)
<추기> 요즘 읽는 시들 중 많은 것은, 비록 말장난의 시라도 말할 수 없는 것까지도, 표현이라는 개념도, 대화라는 개념도 없다. 중언부언 도대체 요령부득인, 그래서 안이하고 탄력없는 시가 새로움이란 가면을 쓰고 난무한다. - 신경림, 시집<뿔>에 실은 '시인이라 무엇인가' 중에서
<추기> 다음은 시의 문장에 관한 이희중의 글이다.
시에 쓰이는 문장이 모두 통사적으로 완벽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까다롭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그래야 한다도 대답할 수밖에 없다.일상의 말도 마찬가지이지만, 자명하게도 시가 요구하는 통사적 완성은 표현을 제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 요청된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히 표현할 통사구조를 구하지 못했을 때, 또는 정확한 전달을 원하지 않을 때, 통사적 완성을 포기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은 이를테면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도 깊은 뜻을 눈치채지 못할 때도 생기므로.
<추기> 다음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3년 3,4월호에 실린 평론가 이재복의 글이다.
요즘 젊은 신인들의 가증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시어의 요설과 사설이다. 언어를 응축하고 갈고 닦아 가려서 조금씩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생각들을 가감 없이 밖으로 쏟아내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시적 환경의 변화가 그 이유일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고 파편화 되어 가는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식의 어법이 더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시어의 요설과 사설로 인해 고전적인 시의 양식이 가지는 응축과 균형의 묘미를 잃어감으로써 운문의 참 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추기> 다음은 산문집 <멀리 보이는 마을>에 있는 최하림의 말이다.
명사나 동사, 형용사만을 중시하지 말아라. 현 편의 시에서는 토씨도 명사나 동사 이상으로 율조에 큰 역할을 하며 울림에 크게 기여한다.
<추기> 다음은 평론가 이형권이 쓴 김선태시 <동백숲에 길을 묻다>의 리뷰에서 발췌했다. 따라서 인용된 시는 모두 같은 책에 실린 김선태의 시이다.
1)오호라, 지천으로 지천으로 물이 올라, 어디를 가도 한참은 정신이 몽롱한 남도의 봄 연애사태여, 그리하여 나도 대지 위에 벌렁 누워 뒹굴고 싶은 아흐, 더는 참을 수 없는 봄의 오르가슴이여 ("봄의 오르가슴' 부분)
사실 감탄사는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거나 그 영향권 내에 있는 시인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감탄사는 명징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거나 지적인 인식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발되는 수준이 아니라면 감탄사는 낭만적 감정이나 서정적 영감을 드러내는 데 여간 유요한 게 아니다. 이 시에서 사용된 감탄사 '오호라'와 '아흐'는 시상을 고양하여 여운은 길게 늘어뜨리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딱따구리 소리 또 한 번 딱따그르르/ 숲 전체를 두루 울릴 수 있는 것은/ 숲의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숲을 지나는 계곡의 울음소리까지가 서로/ 딱,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딱따구리 소리" 부분)
'딱'은 의성어이자 의태어이다. 새가 내는 소리의 한 부분으로 들을 때는 의성어이지만, 아귀가 잘 들어맞는다는 뜻으로는 의태어 구실을 한다. 이것은 일종의 음성상징어로서 '숲 전체'를 구성하는 것들인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물소리'등이 '하나'로 조화된 국면을 형상화하는 데 적잖은 효과를 발휘한다.
불과 12단어(혹은 어절)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쉼표가 11개나 사용되었다. 이 쉼표들은 시의 중심 매타포인 '갯고동'의 생리를 적실히 드러내는 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쉼표가 일반적인 용법에서 벗어나 시상의 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추기> 다음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3년 5,6월호에 실린 정한용의 글 중 부분이다.
'깊은 어둠 속에서 힘차게 빨아들이던 희망/ 돌밭에 뿌리 드러내고 아침처럼 서 있는 나무/텅빈 허공을 향해 힘차게 뻗어가는 헛된 뿌리/ 날선 빛들로부터 얻은 굳은 상처/' (시의) 각 시행이 거의 전편에 걸쳐 수식어구와 피수식어로 이루어져 있어 답답하다. 이런 수식은 시인이 대상을 묘사하면서 자의식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데에서 오는 오류이다. 수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상상이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의 감상폭을 옥죄는 감옥이 된다.
<추기> 다음은 [시와 사람] 2003년 여름호에 실린 신인작품심사평의 일부이다.
이상하게도 비슷비슷한 시들이 많다. 겉보기에는 매끈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알맹이가 없고,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대학안팎의 각종 시창작 강의의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쓸것인가는 배워서 아는데 무엇을 쓸 것인가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에 대들어 이렇게 되는 것일까? 요컨데 억지로 만든 시에 삶의 무게가 실릴 턱이 없다.
<추기> 다음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3년 7,8월호에 실린 이승훈시인의 말이다.
따지고 보면 시는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무슨 관념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심낱말을 반복하고 혹은 변주하는, 그러니까 결국은 동어반복의 세계이다. 최근의 우리의 시가 재미없는 것은 이런 미학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안하고 무슨 말들만 많이 하면 시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승훈 시인은 이 글에서 '낱말을 반복하라', '구와 절을 반복하라', '문장과 연을 반복하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추기> 다음 두 글은 [시안]2003년 가을호에 실린 신인상 심사평이다.
세련된 언어감각은 정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사유나 감정이나 관찰이 매우 섬세하고 정확하지 않다면 그것을 드러내는 언어는 허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는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다. 시에서 인정되는 애매모호함이란 것도 실은 단순하게 드러낼 수 없는 의미나 느낌의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한 방식이 되어야 한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언어를 세공하고 조탁하려는 큰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는 곧 사유와 인식의 정확함을 높이는 노력이 될 것이다.(이남호)
시를 쓰는 것은 일종의 창조행위다....따라서 시를 구성하는 데 다른 사람들이 한번은 써먹었음직한 상식적 언술의 사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작품중에는 산문체시를 즐겨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유행처럼 관례화되어 시의 긴장감과 응축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행 구분을 하지 않고 산문시 스타일로 이어가는 것은 병폐라 아니할 수 없다. ....형식의 절제가 필요하다. 긴 시행은 반으로 줄이고 시행의 수도 삼분의 이로 줄여보라. 시는 서정이지 서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시상의 포인트를 중심으로 잔가지를 쳐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있었다>라든가 <-했네>등의 과거형 어사를 남발하는 것도 시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이숭원)
추기> 다음은 현대시 2003년 9월호에 실린 이기와의 말이다.
우리의 생각은 모두 불완전한 메타포로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라는 것이지요. 현실에 상상력의 양념을 쳐서 맛깔스런 시의 요리가 완성된다기 보다, 상상력도 관념의 일종이라고 볼 때, 관념 투성이인 우리네 생각들이 현실이라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양념을 얻어 시의 요리가 완성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불완전한 상상력에다 현실이라는 옷을 입혀야 공감할 수 있는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상상력은 현실의 옷을 입지 않고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넘치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에 따로 더 과다한 상상력을 욕심 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현실을 상상력으로 끌어올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호한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작업이 요즘 난해한 시를 쓰는 젊은 시인들한테 특히 요구될 것이라 봅니다. 저를 비롯해 요즘 사람들은 그냥 자리에 앉아 머리로 모든 일을 해치우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드라마틱한 현실의 체험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공허한 상상력으로 조합된 시들이 무성하게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에 목숨 걸지 맙시다(웃음)
<추기> 다음은 월간 [현대시] 2003. 10월호에 실린 이은봉 시인의 말이다. 시인은 프로시인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지만, 구태여 프로시인에게만 한정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프로시인은 절제된 가운데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시를 쓰려면 무엇보다 시인이 저 자신의 고유한 언술방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읽어도 누구의 작품인지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가령 신경림 시인이나 고은 시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시의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 이승하 (시인 , 중앙대교수)
21세기가 된 지도 1년이 지났다. 우리 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문예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일반 독자는 좋은 시가 없다며 문예지와 시집을 외면하고 있다. 간혹 큰 서점에 가보면 시집 코너는 늘 한산하고, 간혹 손님이 계산대에 갖고 가는 시집은 그 이름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베스트셀러 시집'을 펴내는 시인의 시집이다.
문학평론가에게 부과된 의무가 있다면 매달 매 계절 쏟아져 나오는 문예지에서 '좋은 시'를 찾아내어 제대로 평가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인의 등단 지면·발표 지면·안면·학연·지연 등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공정한 입장에 서서 평가하기란 기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옛 사람의 지혜로운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 자신을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매다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시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탁자(琢字)와 연구(鍊句)에 숙달하는 일과 사물을 본뜨고 정서를 묘사하는 미묘한 일들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자연스러움이 첫째의 어려움이요, 깨끗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두 번째 어려움이다.
정약용이 {與猶堂全書}에서 한 말이다. 다산은 시어를 조탁하고 시구를 연마하는 것이나, 사물과 정서를 잘 묘사하는 일이야 웬만큼 수련하면 가능하다고 보았다. 좋은 시 쓰기가 어려운 것은 지나친 꾸밈새로 말미암아 자연스러움에서 자꾸 벗어나기 때문이며, 깨끗한 여운을 남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일 터인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서거정이 {東人詩話}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시는 마땅히 기절(氣節)을 앞세우고 문조(文藻)는 뒤로 해야 한다." 시인의 기개와 절조, 즉 시정신이 중요한 것이지 언어 조형력, 즉 기교가 그에 앞서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동양의 시학이다.
서구의 상징주의와 주지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이후 우리 시는 '정신의 시'를 버리고 '기교의 시'를 열심히 배우고 학습했던 것이 아닐까. 정말 좋은 시는 양자의 선미한 결합, 다시 말해 기법에 있어서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요 정신에 있어서는 사무사(思無邪)의 경지에 이른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보들레르의 만물조응(萬物照應)이나 랭보의 견자(見者)의 시학이 오로지 기교에만 국한된 시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보들레르는 시인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 특히 사물에 대한 감각과 사물과의 교감에 대해서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랭보는 보편적 영혼에 이르기 위한 착종의 감각을 중시한 견자의 시학을 들려주었다. 글쎄, 정신의 깊이가 아니라면 감각의 눈부심, 이미지의 떨림을 전해주는 시가 나와야 될 터인데 그런 시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6·25전쟁이 터진 가을 12살 오빠는 시골 큰아버지 집 더부살이였는데 끼니때마다 큰아버지가 밥 많이 먹는다고 소리쳐 무릎이 곪고 부은 발로 낙엽을 밟으며 사라졌다. 친척들 집에 자식들을 나누어 맡기고 며칠마다 둘러보던 어머니가 오빠를 찾아 정신없이 폭탄이 떨어지는 빈 도시 집으로 가보니 오빠는 호두나무 밑에서 호두를 까먹고 있었다.
'12살 오빠와 호두나무와 쌀 한 가마'란 부제가 붙어 있는 차옥혜의 시 [밥]({시와 생명}, 2001. 겨울)의 전반부이다. 1945년 생 시인의 작품이므로 아마도 시 내용의 거의 전부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 싶다. 이 시에서 시적 기교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난 일을 별다른 감정의 이입이 없이, 즉 담담히 술회하고 있을 뿐이다. 6·25를 만나 일가가 뿔뿔이 흩어진다. 열두 살 오빠는 시골 큰아버지 집으로 피난을 갔는데 큰아버지가 밥을 많이 먹는다고 소리치자 다시금 자기가 살던, "정신없이 폭탄이 떨어지는 빈 도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 집에는 호두나무가 있었던가 보다.
어머니가 다시 큰집으로 데려가려 하자 오빠는 호두나무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전쟁터 집에 머물렀다. 얼마 후 12살 오빠는 국군들 잔심부름하는 소년병으로 지원하면 가족에게 쌀 한 가마 준다는 말에 어머니가 잠든 사이 얼어터진 발로 떨어진 고무신을 신고 눈을 밟으며 집을 떠났다.
제목과 부제를 다시 새긴다. 밥, 12살 오빠, 호두나무, 쌀 한 가마. 설움 받고 살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소년, 가족이 얼마 동안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도 좋다고 생각한 열두 살 소년의 마음이 심금을 울리는 바가 없다면 그 독자는 이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 이 시에서 비유의 참신함이나 시적 형상화의 진경을 찾아볼 수 없다고 누가 수준 미달작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말에 반대할 것이다.
시적 진정성은 소재의 특이함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이 시처럼 주제의 힘에서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감동은 흔히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열두 살 오빠의 착한 마음과 그 마음을 잘 이해하고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누이의 착한 마음이 '깨끗한 여운'을 남긴다. 아쉬운 것은 지나치게 진술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 시의 마지막 6행은 문장이 다소 길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자, 여기에도 그럴듯한 소재가 있다. 두 다리 없는 사내가 바퀴 달린 판자 위에 엎드려 있다면 그럴듯한 소재가 아닌가.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동전 바구니가 보이고, 사내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런 소재를 갖고 시를 쓸 때, 즉 타인의 고통을 시의 소재로 갖고 올 때, '소재주의에 머문 작품'이라고 욕을 먹기가 쉬운데……. 작년에 등단한 신인 윤성택의 시이다.
지친 배를 시멘트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세상을 품고 산다는 뜻일까 언젠가는 그의 꿈이 부화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밤마다 고무 속에서 완성돼 가는 희고 단단한 다리로 生의 건널목을 건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한낮 노래를 읊조리며 가장 낮은 세상을 굽어보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