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본 얼굴 / 함동선
물방앗간 이엉 사이로
이가 시려 오는
새벽 달빛으로
피난길 떠나는 막동이 허리춤에
부적을 꿰매시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어떻게나 자세하시던지
마치 한 장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한 시오리 길이나
산과 들판과 또랑물따라
단숨에 나룻터까지 달렸는데
달은
산과 들판을 지나 또랑물에 먼저 와 있었다
어른이 된 후
그 부적은
땀에 젖어 다 떨어져 나갔지만
그 자리엔 어머니의 얼굴이 늘 보여
두 손으로 뜨면
달이 먼저
잘 있느냐 손짓을 한다
- 시집「마지막 본 얼굴」(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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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동선 시인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이다. 연백은 38선 남쪽이면서 휴전선 북쪽에 속한 땅이다. 강화도에서 직선거리로 15km 정도라 하니 맑은 날 보면 빤히 보이는 그야말로 지척의 거리다. 그 길로 곧장 달려가면 어릴 때 문지방에서 키 재던 눈금과 안방 문고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고향집에 다다를 것 같다.
그곳 고향에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휑하니 갔다가 다시 온다는 것이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시다. 5남1여 6남매 중 막둥이를 떠나보내면서 어머니께서 하신 “잠깐일 게다. 네들이나 휑하니 다녀오너라.” 그 말씀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하여 시인은 그때마다 목이 멘다.
떠나올 때 어머니께서 허리춤에 부적 하나를 지니게 해 주셨다. ‘잠깐’이 그렇게 긴 이별이 될 줄은 몰랐겠으나 어머니의 손길을 대신하는 방도였던 셈이다. 이별 뒤의 고할 수도 없는 긴 이야기는 어깨를 짓누르는 아픔이 되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아픔이 개인의 아픔뿐만 아니라 고향에 가지 못하는 모든 이의 아픔이고 우리 역사의 아픔이라고 말씀 하신다.
그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라고 시인은 믿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의 시를 그냥 실향민의 시 정도로 이해하고 일축해 버리는 경향도 있으나 특히 근년에는 이 시에서 나타난 바처럼 자연 속에 내재한 사랑의 원리와 더불어 보편성을 지닌 실향의식, 분단의 아픔 그리고 그리움의 시로 꾸준히 재평가되고 있다.
시인은 1958년 미당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이후 중앙대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줄곧 맑고 청빈한 참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다. 특히 선생께서는 한국 문학비 연구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 곳곳에 산재한 문학비를 탁본하고 사진 찍고 비문을 채록하고 연구하여 한국문학사상 최초로『한국문학비』제1집, 2집, 3집을 차례로 간행한 바 있다. 이 또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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