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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머니 병실에서/공광규

향기로운 재스민 2013. 10. 8. 12:38

클린 마인드 3~4월호 /어머니 병실에서


글 공광규


암 치료중인 어머니의 요도가 막혔다

간호사가 호스를 꽂는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마른 나무토막을 닮은

어머니의 두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나무토막과 나무토막이 만나는 곳에

아무렇게나 부서진 억새숲을 거느린 말라붙은 샘

샘을 중심으로 나무토막을 담은

헌 가죽부대가 바르르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십 몇 년 전 내가 헤엄쳐 나온 곳

지금은 검은 주름으로 뭉개진 폐광구

며칠 전 썩은 핏물이 쏱아진 폐수구

파이프를 박아야 물을 만나는 가문 논바닥이었다

옛날 아버지가 광폭하게 다녀가시기 전에는

맑은 이슬이 우주에 환하게 비쳤던

보물이 가득한 땅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 「말라붙은 샘」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문예지 《유심》에 보냈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만난 경험을 형상화한 시입니다.

14개월 전 어머니가 말기 암 수술을 하고, 두 달 전부터 복수가 차서 병원에서 살아서 나오가기가 어렵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았을 때, 우리 부부는 어머니의 가방을 뒤졌습니다. 몸빼 한 개와 깨끗한 양말 서너 켤레, 보자기에 싼 지갑이 있었습니다. 200만원이 든 농협저금통장, 100만원이 든 우체국저금통장이 있었고, 만 원짜리 7장과 14장이 들어있는 봉투가 있었습니다. 인감도장과 통장 도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통장도 없고 돈 봉투도 없고 도장도 없습니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놀러다니던 모임의 밀린 곗돈을 일부 갚고, 나머지는 며느리가 가져갔습니다. 봉투에 든 돈은 멀리 사는 여동생에게 주었습니다. 수년전 제가 사서 어머니 앞으로 등기를 해놓았던 시골 땅은 동생들과 다툼이 일어날까봐 얼른 등기 이전을 했습니다.

지금 어머니의 손가방 안에는 아무도 입을 생각을 안 하는 몸빼와 헌 양말, 500원이 든 동전 하나와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든 동전지갑과 텅빈 지폐지갑, 그리고 건강보험카드와 입원해 있는 병원카드가 전부입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털어서 파먹고 텅텅 비워야 하는 게 자식들인가 하여 씁쓸하여집니다.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나서 한 달 동안 아내는 낮을 지키고 저는 밤을 지키다가 몸이 힘들자 간병인을 사용하였습니다. 여동생 셋이 있고 이모가 넷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으나 그것만으로는 가족들이 지키는 간병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사는 문제보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 아내나 동생들과의 심리적 갈등이 더 어려웠습니다. 더한 문제는 오랜 시간 병상의 어머니를 지키면서 갖게 된 인명에 대한 불손과 경시였습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사실로 들어왔으며, 어차피 돌아가실 바에야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속마음, 아침저녁 출퇴근 때 꼭 들리던 병원도 게을리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제하던 외출이나 음주도 평상시와 똑같이 하게 되고, 간병인이 돌아가는 주말을 아내에게 부담시켜 아내와 다투기도 하여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지하철에서 아침 신문을 읽고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불효공직자 사 남매를 처벌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유는 병든 노모를 봉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처벌한 중국 공산당은 “자기 부모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민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꼭 저희 사 남매한테 하는 말 같았습니다.

불효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난 해 11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노모를 공직에 있던 자녀들은 당위원회다 베이징에 갈 일이 있다며 모친의 수발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버려져 있다시피 한 노인을 마을 주민 한 명이 보다 못해 집으로 옮겨 모셨고, 마을 주민들의 조정으로 사 남매가 모친을 어떻게 모실지 가족회의를 했으나 결국 다투기만 하고 헤어졌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간병을 서로 미루고 서로 섭섭해 하는 저희 사 남매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음날 모친은 병원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저는 중국 공산당의 사 남매에 대한 기율처분을 보면서 참으로 공자의 나라 중국의 위대함이 여기서 나타나는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논어』에 이런 공자의 말씀이 있지요. “요즈음은 부모에게 물질로 봉양함을 효도라 한다. 그러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 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여기에 따르지 않으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모임이면서 바쁘다고 핑계를 대며 병실을 지키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매일 한두 차례 돌아보는 아내에게 주말에도 병실을 맡기고, 약속이 있다며 온갖 핑계를 대는 여동생에게 동기간 우애를 포기해버린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대집경』에 “만일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시거든 부모를 잘 섬길지니, 부모를 섬기는 것이 부처님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병든 부모는 병원에 내팽겨치고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 절을 수백 배 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어머니는 돈으로 산 간병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여느 때와 똑같이 술집에서 노래방에서 가무를 즐기는 것이 무슨 인간이겠습니까. 저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출처 : 시와 차 한잔의 저녁
글쓴이 : 소주병 원글보기
메모 : 다시 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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