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

욕타임/손 세실리아를 읽으며...

향기로운 재스민 2016. 3. 26. 08:30

욕타임/ 손세실리아


오천 평 농장일도 척척
중증 치매환자인 시아버지 병수발도 척척
종갓집 외며느리 역할도 척척인 여자가 있다
곱상한 외모와 왜소한 체구만 보면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것 같은데
일일 노동량이 상머슴 저리 가라다
그 정도면 신세한탄으로 땅이 꺼질 법도 한데
볼 때마다 환하다 생색내는 법 없다
한술 더 떠 범사에 감사해한다
슬쩍 비결을 물었다

궁금하나? 하모 내만의 비법이 있재 내도 인간인데 와 안 힘들겠노
참다참다 꼭지 돌면 똥차로 냅다 뛰는 기라 거기서 싸잡아 딥다 욕을
퍼붓는 기지 나가 느그 집 종년이가 뭐가 떠받들어도 살지 말찐데
주둥이만 열믄 뭔노무 불만이 그리 많노? 그리 잘하믄 늬 누이들이랑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하지 와 내한테 미루는데? 욕만하는 줄 아나?
쏙이 후련해질 때까정 고함치고 삿대질도 한다카이 그라고나믄 뭍으로
유람 댕겨 와 해가 중천인 줄도 모리고 디비 자빠져 잠든 띠동갑 황소
고집 서방도 불쌍코 공주행세하는 시엄씨도불쌍코 정신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문서란 문서 거머쥐고 호령하는 시아배도 불쌍코……
뭣보다도 쉰 넘은 나이에 체신머리 읎게 욕이나 씨부려쌌는 내 드러븐
팔자도 불쌍코

감귤밭 터줏대감 늙은 개도 꼬리 내리고 납작 엎드려 잠자코 들어준다는



- 시집꿈결에 시를 베다(실천문학사, 2014)

 

*2016. 0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