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2

[스크랩] 지금 장미를 따라-프리다 칼로의 집에서/ 문정희

향기로운 재스민 2011. 9. 7. 06:35

 

 

 

지금 장미를 따라-프리다 칼로의 집에서/ 문정희

 

유명한 여자의 집은

으깨어진 골반 위에 세워진다

 

초겨울 난타하는 카리브 바람 속에

음지식물처럼 소리없이 절규하는

한 여자의 집

머리핀과 레이스 속옷

입술 자국 아직 선명한 찻잔들 사이

가슴 터진 석류가 왈칵 슬픔을 쏟고 있다

 

이마에 박힌 호색한 남편은 신이요 악마

결혼은 푸른 꽃 만발한 고통의 신전

 

피 흐르는 자궁을 코르셋으로 묶어놓고

침대에 누워

그림만 그림만 그리다가

강철같이 찬란한 그림이 된 여자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랑도 광기도 혁명도

무엇으로 쓸어야 이리 없는 것인지

빈 뜰인지

 

시간이 있을 때 장미를 따라

지금은 즐겨라

해골들만 몸 비틀며 웃고 있었다

 

- 시집『다산의 처녀』(민음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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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경우 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비지식이 요구되고, 때로는 인터넷 검색이나 사전을 뒤적여야할 필요도 있다. 이 시는 시인이 중미 여행 중에 실제로 ‘프리다 칼로’가 살았던 ‘푸른 집’을 방문하고서 받은 인상과 느낌이라 여겨지는데, ‘프리다 칼로’라는 인물을 알지 못하고는 시의 꽁무니조차 따라 갈 수 없다. 나도 몇년전 비디오로 빌려본 영화 <프리다>를 기억해내고서야 그녀에 관한 시인 것을 알았다. 

 

 ‘프리다 칼로’는 1907년 태어나 1954년에 죽은 멕시코 초현실주의 여성화가다. 멕시코혁명 중에 출생하고 성장한 칼로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와 열여덟 살 되던 해에 당한 교통사고로 평생을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두 손만 자유로웠던 칼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림뿐. ‘으깨어진 골반 위에 세워진’ ‘강철같이 찬란한’ 좌절과 억압의 자화상을 이 시대 페미니스트 시인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다.

 

 애증의 대상인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과 결혼은 그녀의 영혼을 더욱 멍들게 했다. 하지만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21년 연상이고 난봉꾼이었지만 그녀에게 리베라는 남편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이자 지극한 고통이었으며 희망이자 절망이었고, 연인이자 적이었다.

 

 하지만 칼로는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라고 스스로를 재촉한다. ‘카르페 디엠’ 강철 코르셋을 착용해야 지탱되는 몸으로 ‘시간이 있을 때 장미를 따라’며 자신을 향해 주문헀다. 그렇게 불꽃처럼 살면서 상처받은 자아, 억압받는 여성성을 변주해낸 강렬한 색채와 기이한 환상의 이미지로 가득한 이백 여점의 그림을 남기고 47세의 파란만장한 삶과 이별한다. 그녀의 일기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이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너무 특이한 그림에다 운멷적인 사랑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