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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인은 언제나 / 권순진

향기로운 재스민 2011. 10. 31. 07:42

 

 

 

시인은 언제나 / 권순진

 

꽃의 총체적 모습이기보다는

꼬부라진 암술이거나 수술의 꽃밥입니다

무지개와 구름과 비에 머무는 시선만이 아니라

무지렁이와 함께 섞여있는 한 줌 진흙입니다

잉잉거리는 바람과 봉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도

밥이 넘어가지 않고 복받치는 울음입니다

사막을 걷는 자의 수통에 남은 마지막 물 한 방울이며

오염에 더욱 선명한 저 강 물비늘의 표정입니다

 

- 시집 『낙법』(문학공원,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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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11월 1일은 제25회 ‘시(詩)의 날’이다. 1908년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 왜 꼭 그날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8월 1일이 아니라 11월 1일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시인의 날도 아닌 시의 날에 시인이 무슨 치하를 받거나 위로받을 일은 전혀 없다. 달력에 수두룩 빽빽한 무슨 날 무슨 기념일이 있지만 달력에도 표기되지 않는 시와 시인에게 영양가 없는 날이다.

 

 단지 시인협회로서는 이날을 그냥 넘기지는 못할 것이므로 약소한 행사를 갖긴 갖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와 시인, 시와 독자의 소통 통로를 넓혀가는 장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으로 아는 바는 없다. 올해는 과거 실내에서 협회 시인들끼리 모여서 치룬 행사와 달리 밖에서 시인과 독자들이 허물없이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으로 꾸민다고 한다. 기대는 되는데 그런다고 시와 시인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시가 어려운 입지에 처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와 시인은 세상을 주도하거나 조명을 받는 위치에 있거나 밥이 되지는 않았다. 물질 만능주의의 확산으로 사람들은 정신과 감성을 담당하는 시를 멀리하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만으로 시와 시인의 ‘별 볼일 없음’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시절 등 역사 속에서 시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에 견주어 시의 위기를 설명하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를 살리자고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쩌면 시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이나 시인의 역할을 피차 오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시는 물질이 지배하는 곳이건 과학이 삶을 점령하는 지점에서건 눈치 보지 않고 그 시대의 정수리에서 산소량을 재는 측정기 역할을 해왔다. 시인은 무지렁이와 함께 섞여있는 한 줌 진흙인 동시에 잠자지 않는 촉수이고 밤에도 깨어 있는 정서의 불침번이기도 하다.

 

 시인은 언제나 음지에 존재하며, 추수를 마친 뒤 쓸쓸한 밭이랑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노인의 늙은 연민과 늙은 우수 같은 것이다. 그러다 밥이 넘어가지 않고 복받치는 울음으로 나오는 것이 시다. 시는 스스로의 높이를 의식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주의 총량을 떠받치는 진지한 열망이며, 공존의 염원이기도 하다. 다만 독자로서는 시적인 진지한 사색을 통해 삶이 좀 더 융숭 깊어지고 따스해지면 되리라.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시의 날이 내일이라란 것을 잊지 않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