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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너에게 묻다.1/ 김나혜

향기로운 재스민 2012. 1. 19. 04:03

 

 

 

너에게 묻다.1/ 김나혜

 

 

뼈를 드러낸 낙타의 뒷모습에

붉은 해가 흐른다

 

한발 한발 내 딛는 걸음

수많은 슬픔과 좌절이 지나가고

끝없이 내려앉은

그 캄캄한 능선

 

해를 업은 베르베르가

기인 그림자를 끌고

가파른 길 오르다

뒤 돌아보지 않는 것은

상처의 앞모습이다

 

눈물이

소금이 되는 시간은 얼마일까

 

누울 자리

바람벽 하나 없이 버텨온

붉은 가슴으로

사랑할 날은 얼마일까

 

 

계간 <스토리문학>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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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과 낙타를 소재로 한 시가 적지 않은데 대개는 갈증, 적막, 고독, 인내, 삶의 무게, 묵묵한 순종, 절망 또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은 다시 태어난다면 낙타가 되어 평생을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다시 돌아올 때는 무슨 재미로 세상 살았는지 모르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등에 업고 길동무 되어 돌아오겠노라고 했다. 낙타를 번잡한 세상사를 초월하고 달관의 삶을 살아가는 순수하고 순연한 존재로 보고 동일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사람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묵묵히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선량함은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의 판단일 뿐이다. 낙타의 관점에서 비켜서 생각하면 낙타는 어리석은 고통을 한없이 감내하는 짐꾼에 지나지 않는다. 낙타는 어떤 부당한 명령에도 거부할 줄 모르고 저항하지 않는다. 낙타는 얼핏 착해 보이지만 그들은 어찌 보면 노예의 굴종을 내면화한 존재다. 그들은 결코 울부짖지 않는다. 왜냐하면 견디며 살만하니까. 그들은 웃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만큼 행복하지는 않으므로.

 

 그 낙타들을 줄로 묶고서 사막의 ‘끝없이 내려앉은 그 캄캄한 능선’을 가로질러가는 베르베르(사하라의 유목민)의 삶도 그와 다를 바 없다. 낙타가 사막의 배라면 그들은 그 배를 탄 사막의 선원이다. ‘해를 업은 베르베르가 기인 그림자를 끌고 가파른 길 오르’는 모습 자체가 비루한 삶의 무게이다. 따라서 지나온 삶의 궤적이 모두 상처다. ‘뒤돌아보지 않는 것은 상처의 앞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외롭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기 위해 사막에서 뒤로 걷는 인간처럼.

 

 번지수도 도로도 없는 막막한 사막에서 사랑은 어찌 구할 것인가. 어린왕자가 말했던가. 그래도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누울 자리 바람벽 하나 없이’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붉은 가슴으로 사랑할 날’이 오기 때문이라고. ‘눈물이 소금이 되는 시간’만큼이나 견뎌야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우물은 발견될 것이고 사랑은 어딘가에 존재하리라고.

 

 

권순진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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