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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 인연이 다른 인연에게 / 박창기

향기로운 재스민 2012. 1. 19. 04:02

 

 

 

한 인연이 다른 인연에게 / 박창기

 

악수는 따뜻했네

마주잡은 손바닥 사이로

밀어가 숨어들었네

밀어는 별이 되었네

서로를 비추어주는

별 이야기는 두고두고 할 것이네

별의 소망을 좇아 긴 여행도 할 것이네

함께 간다는 건

보다 밝은 촉광을 비추어 주는 것이라네

어느 날은 몇 만 촉광이었다가

몇 십 촉광이기도 할 것이네

모순의 들판을 걸어야 하고

오해의 다리를 건너야 하고

편견의 울타리를 넘어야 하고

무관심의 바다를 헤엄쳐야 하리

명멸明滅하는 촉광 같은 인연이라

유리琉璃의 나날이긴 해도

상처 밖의 길이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네

인연의 사슬을 지키다 죽으면

그 누가 상처를 뒤집어 말려주리

인연이라는 빛에 말려 보고 싶네

 

- 시집 『그 바다에 가고 싶다』(그루,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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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은교 시인은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고 노래했으며, 정희성 시인은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라며 서로의 온기로 꿈꾸는 사랑을 소망했습니다.

 

 아름다운 호시절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때가 오더라도 그와 함께라면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피력한 시입니다. 그런 꿈이 이루어진다면 기다림, 침묵, 외로움, 슬픔 그리고 겨울의 혹한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겠다는 다짐입니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아픔을 보듬고 위로하고 이해하고 조화를 이룬다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큰 사랑과 화합의 양식으로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것이 무언지를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인연이란 또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처음 맺은 인연의 악수는 누구에게나 따뜻했을 것입니다. ‘마주잡은 손바닥 사이로 밀어가 숨어들었’으며, 그 ‘밀어는 별이 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고, ‘한 폭의 비단’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함께 간다는 건 보다 밝은 촉광을 비추어 주는 것’이지만 ‘어느 날은 몇 만 촉이었다가 몇 십 촉광이기도 할 것’입니다. ‘모순’과 ‘오해’와 ‘편견’과 ‘무관심’이 명멸하는 가운데서도 ‘상처 밖의 길이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첫 인연의 그 따뜻했던 악수를 기억한다면 알 수 없는 반목, 근거 없는 미움, 까닭모를 적개심, 대면대면한 낯가림, 시기와 질투 따위가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온기 없는 벽난로 옆에서 오돌오돌 침묵하는 것은 꿈을 위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인연의 사슬’을 지키기 위한 사랑의 시련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면서 달궈지는 열기는 미온에 불과합니다. 많이 늦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인연이라는 빛'에 상처를 제대로 말리고 싶습니다.

 

 

권순진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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