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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첫눈(新雪) / 이언적

향기로운 재스민 2012. 2. 10. 14:33

 

 

 

첫눈(新雪)


회재. 이언적(李彦迪)

 


新雪今朝忽滿地(신설금조홀만지첫눈 내린 오늘 아침 땅을 가득 덮었으니

怳然坐我水精宮(황연좌아수정궁황홀하게 수정궁에 나를 앉혀 놓았구나

柴門誰作剡溪訪(시문수작섬계방사립문에 누군가가 섬계(剡溪) 찾아왔으려나

獨對前山歲暮松(독대전산세모송앞산에 소나무를 나 혼자서 마주하네

 

 


------  회재 이언적선생의 첫눈(삼도헌의 한시산책 184)


흰눈이 밤새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면 황토빛 땅은 은세계가 된다.

그래서 시적화자는 황홀하게 자신을 수정궁에 앉혀 놓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세 번째 구(句)는 서성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인 왕휘지(王徽之)에 읽힌 고사이다.

왕휘지가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자신이 거주하던 산음에서 먼 섬계(剡溪)에 살고 있던 친구인

동진의 문인화가 대규(戴逵)가 그리워서 배를 타고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밤새 배를 저어 정작 친구의 집 앞에 이르자 배를 돌려 돌아왔다.

다른 사람이 그 까닭을 묻었고, 그의 답변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원래 흥을 타서 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가는 것이니(乘興而來 盡興而反)

어찌 꼭 친구를 볼 필요가 있으랴".

따라서 세 번째 구에서 회재 또한 '내 친구 중 누가 왕휘지처럼

지난밤에 흥이 나서 나를 찾아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았을까'하는

은근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자기를 찾아와 줄 생각을 하는

고상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구에서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가 연상된다.

한해가 다 저물고 햇살이 적어지면서 수목들은 나목이 되어간다.

여름철 잎이 풍성할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시린 겨울 에 잎이 모두 낙엽되어 떨어진 뒤

눈밭에 홀로 서 있는 처지가 되니 찾는 이가 없어진다.

그러나 많은 나무 가운데 소나무는 홀로 푸른 기상을 잃지 않고 있다.

작자는 여기서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소나무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일수록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운 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겨운 벗이 있다면 얼마나 훈훈해 질까

이 시를 읽으신 뒤 오늘은 왕휘지처럼

그리운 벗을 찾아 정겨움을 나누시기 바란다.



이언적(李彦迪1491~1553)

문신. 학자. 자 복고(復古). 호 회재(晦齋). 본관 여주(驪州).

사간(司諫) 재직시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 그 일당에 의해 파직된 뒤,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심했다.

김안로 일당이 거세된 후 재등용, 좌찬성. 원상 등을 역임했으나,

윤원형(尹元衡) 등의 모함으로 강계(江界)로 유배,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

성리학자로서 퇴계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회재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출처 : 유진과 함께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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