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김순진
형광등이 눈을 깜빡거리며 뜨네
수고를 받쳐주던 침대는 휴식 떠밀어내네
급경사를 달리던 안경이 어둠의 속도를 좌절시키네
나처럼 독수공방한 화장실 문을 여네
빛들이 달려들어 움츠린 냄새들의 얼굴을 매만지네
옹달샘은 군말 없이 하루치 근심을 먹어치우네
바다가 잘 있다며 신호를 보내오네
풀리며 춤추는 화장지는 가난해질수록 경쾌하네
맑은 생각으로 채워진 정수기가 생기를 쏟아내네
은박지에서 사면된 혈압약 한 알 자유를 품고 퍼지네
얘들아, 열대어가 새끼 낳나봐
아이들을 깨우며 계란 세 알을 깨뜨려 넣네
프라이팬이 온돌방 좋아하는 아내처럼 지글대네
냉장고의 묵은 김치 냄새가 서양식 인사를 건네네
앉은뱅이상다리가 어둠을 딛고 오금을 펴네
플라스틱 구금에서 풀려난 반찬들이 두부를 먹네
잘 하고 와, 아이들을 챙겨 보내네
널린 신문과 옷가지를 주섬주섬 줍네
밤샘한 아내가 떼꾼한 눈으로 퇴근해 들어오네
아내의 안부는 밖으로 갇히고 나의 안부는 안으로 갇히네
출처 : 김순진 작가 블로그
글쓴이 : 김순진 작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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