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스크랩] 광대 이야기/ 김순진

향기로운 재스민 2012. 3. 28. 17:21

 

 

 광대 이야기/ 김순진


전깃줄 위 구르는 달을 꾸지람하며

정작 저는 고무줄놀이를 한다.

그렇게도 어깃장 난 삶을

꿰어 맞추는 퍼즐게임

그리도 까불대던

어느 광대의 겨울 문틈엔

별 하나 둘 뜨고

구경꾼 모두 집으로 간다.

세월이란 비수를 들이대며

세월의 강도가 자백한다.

"난 그저 웃기려 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막이 내린다.


- 시집 『광대이야기』(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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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진 시인은 공교롭게도 성은 다르지만 나와 이름이 같다. 남들이 이름만으론 가끔 여자가 아닐까 오해하는 일도 있지만 둘 다 명백한 남자다. 또한 그 이름의 인연 때문은 당연히 아니었으나 1년 전부터 그가 발행하는 월간 문예지에 편집 일을 돕고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과 성함이 모두 같은 여성으로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있긴 있다. ‘놀부보쌈’으로 유명한 김순진 회장으로 한때 직업 군인(하사관)이었던 남편의 퇴직 무렵 시작한 조그만 신림동 보쌈식당을 연매출 7천억의 종합외식기업으로 키워낸 억척 여장부다.

 

 그러고 보니 김순진 시인도 이런 '놀부'신화를 탄생시킨 그 김 회장과 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꿈이 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뚝심이 있다. 게다가 광대와 같은 끼가 있으며 준수한 꼴이 받혀준다. 그러면서도 토속적인 체취가 풍기며 소박하다.

 

 이 시집은 경기도 포천이 고향인 시인이 전방 철원에서의 군 복무 시절 엮은 처녀 시집이다. 본인은 습작시절에 낸 시집이라 다소 미숙하고 날 것의 감성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도 있다고 쑥스러워하지만 한편으론 그 순수한 열정과 애정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한 것 같다. 첫 시집이 나온 지 만 2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시인과 문예지 발행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소설도 쓰고 출판사도 경영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에서의 ‘광대 이야기’는 해 기운 뒤 파장 무렵의 정경을 인생에 견주어 쓸쓸히 보여주지만 그는 지금 숱한 ‘어깃장 난 삶을’ ‘꿰어 맞추는 퍼즐게임’의 팔 할쯤은 완성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제 앞만 보고 줄 위를 가만가만 걸으세요. 옆도 보지 마시고요. 조금만 힘내세요.’ 누군가의 입 나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광대란 좀 무거운 이름을 제 스스로 협소하게 하기위해 웃긴 것일 뿐 “난 그냥 일 없이 웃기려 한 것은 아니었다.”는 외침이 들린다. 비 그치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린다. 별 하나 둘 뜨는 어둠 속에서 그 소리 더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ACT4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김순진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