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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농 이해조의 신소설 『봉선화鳳仙花』(1912년. 신구서림) - 생활상을 중심으로

향기로운 재스민 2012. 4. 6. 15:19

동농 이해조의 신소설 『봉선화鳳仙花』(1912년. 신구서림)- 생활상을 중심으로

-속담, 용어풀이 및 신분타파사상 엿보기


                            김순진



1. 들어가는 말

필자는 포천 출신 작가로 평소 고향 포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당연히 최치원, 최익현, 이덕형, 이항복, 양사언, 유응부 등 포천출신 인물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 또한 큰데, 특히 이해조 선생은 필자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더욱 관심이 가는 분이기에 선생의 작품을 직접 연구하고 만난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 설렌다.
그러나 이해조 선생의 작품이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이 많지 않음에 마음대로 읽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작품을 읽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 함평문학관에 들어가 일일이 한 장 한 장 복사를 뜨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가지고 다닐 때엔 늘 이해조 선생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아마도 이해조 선생의 시공을 초월한 제자가 되고 싶은 필자의 욕심에서 나온 느낌이리라.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가자니 너무도 많은 한자어와 어려운 낱말들이 많이 나오기에 필자는 생각했다. 아, 최소한도 이 책이 앞으로 출간될 기회가 온다면 독자들을 위해 그 말의 해석이라도 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봉선화」에 나오는 모든 한자말과 속담을 적고 풀이하기 위해 사전과 자전, 고사성어집 등을 찾아가며 여러 날 밤을 새웠다. 필자의 이런 노력들이 앞으로 이해조 문학을 널리 알리고 포천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밀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소설은 『봉선화(鳳仙花)』는 동농 선생이 1912년 신구서림에서 간행한 소설로, 고대 소설이 가지는 해피엔드 기법으로 양반과 천민의 캐릭터를 동시에 등장시켜 위기에 처한 양반을 천민이 구출하고 이에 양반, 평민, 천민이 서로 부모형제의 연을 맺는다는 점은 당시에만 가능할 수 있는 근대 과도기적 상황이 만들어낸 시대적 특성으로 볼 때, 신소설로서 시기적절한 소설이었다고 평가한다.
동농 이해조 선생 역시 인조 임금의 세 번째 왕자인 인평대군의 후손으로 대원군 집정기에 득세한 왕족가문이지만, 왕족을 버리고 서민 편에 서서 특히 부녀자들을 위한 신분타파, 개가, 자유연애 등의 소설을 썼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소설은 권선징악의 내용으로 보아 아직 구소설의 범주에서 탈피하지 못한 소설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분차별을 없애자는 주제는 그 시대에 많은 양반으로부터 대단한 도전과 시기를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며 당시 독자들한테는 거의 폭발적 인기를 얻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80년대 초 김홍신 작가가 쓴 ‘인간시장’이란 소설은 주인공 장총찬으로 하여금 불의를 참지 못하고 서민의 등을 긁어주었다는 점에서 10여 권이 연속으로 출간되는 등 대단한 인기를 누렸었다. 그런 점에서 소수의 양반보다는 대다수의 평민과 천민계급사회였던 1900년대 초에 있어서 이해조 작가가 쓴 소설의 주류는 신분타파, 자유결혼, 여성의 재혼 인정, 조혼 반대 등의 당시 사회를 이끌어가던 사람들의 정반대 부분을 주장했기에 아마도 40여권의 작품을 쓸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고, 한 신문에서 몇 년씩 연재할 수 있었던 인기의 비결이란 추측을 해본다. 매스미디어가 그리 발달하지 않은 시대적 상황에서의 그의 소설은 부녀자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소설 구성에 있어서 이야기가 누가 누구를 해하고 원수를 갚는 식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출하고, 삼각관계가 되고 하는 식의 러브스토리에 기인했더라면 더욱 진가를 발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가져본다.
이 소설은 봉선화를 모티브로 하여 발단하고 있지만 내면에 깔려있는 스토리는 봉선화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고 심리와 사건을 위주로 써내려 간 긴박감이 있는 본격소설이다. 주인공이 한 번도 편안하거나 호식하는 일 없이 계속해서 주인공을 핍박으로 몰아세우며 독자로 하여금 극도의 불쌍함으로 몰입하게 하여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나중에는 가해자는 응당(應當)의 벌을 받고, 당한 사람들은 서로 부모형제의 연을 맺어 평화롭게 산다는 소설로 어찌 보면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전에서 깔려있는 구성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는데 그런 점에서는 아직 소설이 현대소설의 기법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맹점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해조의 이러한 소설책들은 좀 더 나중에 나온 심훈, 이광수 등의 소설과 더불어 1960년대 초까지 인기를 구가하면서 부녀자들에게 반짇고리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줄거리를 읽으며 『봉선화』가 우리에게 주는 사상은 무엇이며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 용어를 풀이해가면서 몇 가지 방법으로 분석하여 보자.


2.「봉선화」의 줄거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초여름 여승지 집, 박씨부인의 몸종 은례는 꽃모종을 얻어가지고 대문을 들어선다. 그런데 여승지의 세 번째 부인의 딸인 난옥이는 본래 욕심이 많은 아이로 은례가 박씨부인을 주려고 얻어온 꽃모종을 모두 뺏어다가 자기와 엄마인 구씨, 그리고 그 몸종인 추월이가 사는 곳 뒤뜰에다 심는다. 은례는 억울한 마음으로 돌아오다가 마루위에 떨어진 봉숭아 모종 한 개를 주워 박씨부인 방 앞뜰에 심고 날마다 물을 주며 정성으로 기르지만 채란이가 빼앗아서 심은 화초들은 심어만 놓았지 관리가 전혀 없어 물은 구경도 제대로 못 하고 말라가는 데다 병이 들어 자라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은례가 심은 봉숭아에는 싹이 무성하고 꽃이 많이 피었는데 난옥과 그의 몸종 추월이가 모두 뜯어가 버린다.
이를 안 은례는 난옥에게 자조지종을 물으나 이를 난옥은 엄마 구씨에게 일러바치고, 구씨는 이를 빌미로 시어미를 우습게 여긴다며 박씨를 모함하고, 추월을 앞세워 은례를 구박하고 급기야 아들 경현을 일본에 유학을 보내고 박씨를 쫓아낼 계략을 꾸민다.
여승지는 전실부인 사이에 아들 경현을 두었으나, 전실부인이 병으로 죽게 되어 구씨를 첩으로 들여 난옥을 낳는다. 세월이 흘러 경현의 나이 2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박 씨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박 씨는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셨으나, 구씨는 박 씨가 전실 소생의 아내라는 이유로 모진 구박을 받는다.
구씨는 박 씨를 아주 내쫓을 작정으로, 몇날 며칠을 경현이의 보약을 먹이는 등 위하는 척을 하더니 여승지에게 경현을 동경으로 유학을 보내자 하여 이를 기쁘게 생각한 여승지의 허락에 곧 경현은 동경으로 유학을 간다.
경현이 동경으로 떠난 후, 구씨는 며느리를 더욱 박대하고 급기야 박씨부인은 몸살을 앓게 된다. 구씨는 미리 분위기를 잡아 며느리 박씨가 돈을 쓴다는 둥, 남정네가 울타리를 넘어 도막을 간다는 둥 분위기를 잡아 여승지가 며느리를 의심케 만든다. 그리고 박씨가 심한 몸살이 걸려 몸져누워 있는 사이 구씨는 추월에게 계책을 묻고 박씨에게 패독산을 먹이고 하혈한 것처럼 돼지 선지를 이불 밑에 넣고 미리 준비하였던 쥐의 껍질을 벗겨 두었다가 여승지를 박씨의 방으로 데려가 뱃속 아이가 자란 것처럼 핏 속에서 쥐새끼를 꺼내 보이며  박씨에게 간통죄를 뒤집어씌운다.
이에 여승지는 박씨를 교군에 태워 친정으로 쫓아냈으나, 구씨는 한걸음 더 나아가 구두쇠를 시켜 박씨를 새문안 최가에게 팔아넘기려 한다. 박씨의 몸종 은례는 구씨의 계교를 눈치 채고 박씨의 무죄함을 호소하지만, 구씨는 오히려 평소 은례를 탐하던 구씨가 번번이 퇴짜를 맞는 것을 알고 이에 구두쇠를 시켜 모진 문초를 하여 여승지 댁에서 은례마저 쫓아낸다.
은례는 박씨부인이 친정으로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박씨부인을 찾아다니다가 이평보의 집에 머물게 되되는데 수일 후 이평보가 집을 비운 사이 우체부가 은례에게 편지 하나를 전 해주기에 그 편지를 몰래 펼쳐보니 이평보가 구씨의 이종사촌이라는 것과 자신을 돌봐주고 있는 것도 구씨의 계책이라는 것을 알고 이웃집 과부 아들 차두형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차두형은 은례와 장래를 약속하는 한편 그 날부터 박씨부인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한편 쫓겨난 박씨부인을 태운 교군(가마)를 지고 산중으로 가던 중, 구두쇠와 교군꾼들이 잠시 목을 축인다며 근처 주막에 간 사이, 박씨부인은 구두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예쁜 새가 폴폴 날며 울기에 가마에서 나오니 그 새는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유인하여 큰 바위 뒤로 가게 되고, 가마가 있던 곳으로 돌아오던 교군꾼들로부터 자신을 최가에게 팔아넘기려 한다는 말을 엿듣고는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 길도 없는 산을 넘어 탈출한다.  다행히 박씨부인은 산을 넘어 한 외딴집에서 머물자고 하는데 그 집 주인 내외 또한 자기를 갈 서방(갈춘영)에게 팔아넘기려 한다는 것을 알고, 또다시 그 집을 도망 나온다. 박씨부인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한 생각이 들어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으려 했으나 뒤쫓아 온 갈 서방이 박씨부인의 목숨을 구하하지만 또다시 팔아넘길 것을 약속하는 갈서방 내외의 계락을 듣고 탈출을 생각하는데, 이 때 차두형은 박씨부인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남문 밖 막걸리 집에서 박씨부인이 자신의 사촌 갈씨의 집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길로 갈씨의 집을 찾아간다. 차두형은 갈씨에게 자초지종을 말한 후, 박씨부인을 만나게 해 줄 것을 청했으나 박씨부인은 낯선 사람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겁을 먹고 또다시 도망을 간다.
구두쇠 일행은 달아난 박씨부인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수색하던 중에 박씨부인이 갈 씨집 뒷문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박씨부인을 붙잡고 이때 차두형과 갈씨 또한 박씨부인을 찾아 근처를 수색하던 중 구두쇠 일행과 마주치게 되어구두쇠 일행과 차두형 일행은 박씨부인을 두고 싸움을 벌이고 동네 사람들은 차두형 일행을 도와준다. 차두형과 갈씨(이후 춘영)는 박씨부인을 그들의 집으로 데리고 와 극진히 보살피고 그녀와 의형제를 맺는 한편, 구두쇠를 모질게 문초하여 모든 사실을 밝혀낸다.
  새문안 최가는 구두쇠가 박씨부인을 잡으러 갔다가 춘영의 집에 붙잡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양주군수인 그의 고모부를 찾아가 구두쇠를 구해줄 것을 청하고 포졸들이 춘영의 집에 들이닥쳐 박씨부인과 갈춘영, 차두형을 관가로 끌고 간다. 군수는 춘영과 두형을 옥에 가두는 한편 박씨부인은 최가가 맡으라는 판결을 내리는데, 박씨부인은 너무나 분하여 머리를 땅에 찧으며 자해를 하고 구두쇠와 최가는 박씨부인이 죽었다는 생각에 도망을 간다. 이에 군수는 박씨부인을 처치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서울로부터 자신의 해임소식을 듣고 두형과 춘영을 풀어주고 양주에는 새로운 군수가 부임하게 된다.
두형과 춘영은 박씨부인을 집으로 데려오고 이들의 극진한 간호로 인하여 금방 회복된다. 한편, 구두쇠와 최가는 박씨부인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박씨부인이 머물고 있는 객주집을 찾아갔으나, 사령들이 몰려와 두형일행과 구두쇠 일행을 모두 관가로 끌고 간다.  이평보는 은례를 처리할 방법을 찾던 중에 양주 읍내 노좌수가 젊은 첩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그 노좌수에게 은례를 팔아넘긴다. 은례는 죽으려 하지만, 노좌수가 과거 자신이 친아버지처럼 따르던 사람임을 알고 자신의 전후사정을 자세히 말한다. 이에 노좌수는 관가를 찾아가 최가와 구두쇠 일행을 낱낱이 고한다.
최가와 구두쇠는 군수 앞에서 거짓 증언을 하였으나 곧 은례가 나타나 모든 사실을 증언하고 신임군수는 은례의 증언을 통해 모든 사실을 짐작하여 구두쇠와 최가를 옥에 가두는 한편 차형과 두형을 풀어준다. 이후 박씨부인은 노좌수에게 은덕을 사례하고 노좌수의 양녀가 되고 은례 또한 노좌수의 양녀가 되어 두형과 혼인을 한다.
구씨는 구두쇠를 기다리다 못해 추월의 오라비 홍갑에게 박씨부인의 소식을 탐지해오게 한다. 박씨부인은 홍갑에게서 박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술과 격검이 뛰어난 홍갑의 처남 조선각을 찾아가 박씨를 살해해줄 것을 청한다.
조선각은 그 이튿날 박씨부인을 찾으러 가다가 지지대 고개에 이르러 친정으로 돌아가는 박씨부인 일행을 만나게 되는데 조선각은 두형과 춘영에게 구씨의 간악함을 일러준 후 박씨부인으로 하여금 친정에 피신해있도록 권하고 조선각은 큰 개 한 마리를 죽여 그 개를 보자기에 싸서 홍갑의 집으로 가지고 간다. 그리고 구씨부인과 추월을 홍갑의 집으로 불러들여 박씨의 목을 잘라왔노라 말하며 추월이가 구씨와 짜서 청부금을 주지 않고 자신을 살해하려던 계책을 알아차리고 추월과 구씨를 살해하고 벽에다 ‘조선각’이란 글씨를 크게 써 놓고 달아나고, 홍갑은 구씨와 추월의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서에 이를 신고를 한다.
이 때 여경현은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왔다가 집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알게 된다. 여경현은 여승지에게서 박씨가 앙심을 품고 구씨를 살해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건의 내막을 탐지하기 위해 양주로 갔다. 여경현은 한 객주집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차형과 두형, 박씨가 구씨를 살해했다는 말을 듣고 즉시 경찰서로 가 자신의 처였던 박씨부인을 고발한다.
며칠 후, 차형과 두형, 박씨부인과 은례는 경현의 고발로 인해 경찰서로 끌려가게 되고, 경현은 박씨부인 일행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를 찾아간다. 경찰서장은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박씨부인과 은례를 모질게 문초하는데 조선각이 경찰서로 찾아온다. 조선각은 자신이 구씨와 추월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 그 자리에서 자결하는데, 이에 서장은 박씨부인 일행의 무죄를 인정하여 모두 풀어준다.  
노좌수는 덕이 많은 사람으로 평소 은례를 딸처럼 여겼는데, 은례와 혼인을 한 차두형은 노좌수를 부모로 모시고, 박씨부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여준 은례와 형제의 연을 맺기로 하였기에 노좌수를 부모로 모시고자 하는데, 평소 일 점 혈육 없이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홀로 외롭게 자라온 갈춘영은 은례와 두형, 박씨부인과 형제로 지냄과 부모를 모시게 됨을 부럽게 여겨 자신도 자식으로 받아줄 것을 청하니 노좌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허락이 떨어지고 동네 사람들은 노좌수의 복을 이구동성으로 칭송한다.
여승지는 경현에게서 모든 사실을 전해 듣고 박씨부인에게 사죄를 하는 한편, 채란을 정참의 아들에게 출가를 시키지만 구씨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죗값을 받느라고 과부가 되어 온갖 고초를 받으며 살게 되고 경현은 이웃에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은례 내외를 살게 하였고 서산 갈춘영과 친형제처럼 지낸다.


3. 등장인물의 성격
- 여승지 : 양반신분으로 집안의 가장이며 구씨의 남편. 본처는 병으로 죽었음. 집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무능한 가장으로 술이나 먹고 허송세월 하는 인물
- 구씨 : 상민출신으로 여승지와 재혼한 여승지의 세 번째 부인. 재산을 차지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처.
- 난옥 : 여승지와 구씨 사이에서 난 딸, 채란이라고도 함. 천방지축이며 못 된 성품을 지녔으나 소설 내부에서의 역할은 극히 미약함
- 추월 : 구씨와 난옥을 따르는 몸종으로 구씨와 함께 경현을 일본으로 유학 보내고 그 사이 며느리 박씨를 남의 아이를 가진 것처럼 꾸며 박씨를 내쫒고 재산을 차지하려는 계교를 꾸미나 실은 구씨도 추월의 손에 놀아나는 것임.

-여경현 : 여승지의 아들. 효성이 지극하고 성품이 바른 사람. 추월이와 구씨의 계교로 영문도 모르고 일본 동경으로 유학 간 사이에 사건이 일어남.
-박씨 : 양반집 규수로 여경현의 처. 주인공으로 당하기만 하는 캐릭터.
-은례 : 박씨의 교전비(몸종)로 박씨를 위하여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의 충복
-구두쇠 : 여승지 집을 드나드는 하인으로 구씨의 몸종 역할을 함. 은례를 넘보지만 은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음. 나중에 그것에 앙심을 사서 은례를 회초리로 마구 문초하게 됨.
-최가 : 구씨에게 큰돈을 주고 박씨부인을 사서 후취로 맞이하려 하지만 박씨부인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돈만 날림, 나중에 쫓겨난 양주군수가 그의 고모부임.
-이평보 : 구씨의 이종사촌으로 원래 사공이었으나 구씨가 여승지의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면서 구씨가 재산을 빼돌려주어 먹고 노는 건달이 됨. 은례를 잡아서 노좌수에게 팔아넘기기 위해 수작을 부림.
-차두형 : 이평보의 이웃집 사람으로 은례와 혼인을 약속하고 은례 편으로 활동함
-갈춘영 : 박씨가 도망하여 있던 집 주인으로 박씨가 무고한 사람임을 알고 차두형과 함께 박 씨가 목매달아 자결하려는 것을 발견하고 박씨를 도와 누명을 벗겨주는데 결정격인 역할을 함.
-노좌수 : 평소 은례와 부모자식처럼 지내던 사이이나 홀아비로 이평보에게 젊은 아낙 하나를 사서 장가를 들려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은례로 부드러운 분위기로 반전시키는데 역할을 함.
-조선각 : 홍갑의 처남으로 일본에서 유도와 검도 등 무예를 익힌 사람. 구씨와 추월이가 박씨를 죽여 달라 시킨 하수인이었으나 나중 둘의 나쁨을 알고 구씨와 추월이를 살해하고 자신도 법정에서 자결함.
-홍갑 : 추월의 오라비로 안동(지금의 안국동) 네거리에서 권련장사를 하는 사람. 조선각을 소개함.
-양주군수 : 최씨의 고모부로 부정하고 무능한 행정으로 백성의 원성을 사 파직당함.
서장 : 경찰서장으로 처음에는 박씨의 억울함을 모르고 박씨를 다그치나, 조선각이 나타나 사실을 말하고 자결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밝혀낸다.



4. 「봉선화」에 나오는 속담

* 윗물 흐리면 아랫물 흐린 것 정한 이치라. : 윗사람이 잘해야 아랫사람이 본받는다는 말.
* 동냥은 안주고 쪽박을 깨뜨린다.  : 동정은커녕 오히려 못된 짓을 함.
*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다. : 십년 공들인 것이 수포로 돌아감.
* 개밥에 도토리. :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 대접을 받지 못함.
* 개천 나무라면 무엇 하리. 소경된 내 죄지. :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함.
* 뜬쇠도 달면 어렵다. : 녹이 슨 쇠도 달구면 무서운 무기가 된다.
* 무럼생선 같은 : 해파리처럼 뼈가 없는, 성질이 없는

* 칼로 찌르거든 칼로 받고, 총으로 놓거든 총으로 받는다. : 상대방에서 하는 대로 대항함.
* 상전의 빨래를 해도 발뒤꿈치가 희다. : 홀로 사는 상놈보다 양반에게 붙어사는 상놈이 팔자가 났다는 말.
* 한 노래로 긴 밤을 새다.  : 한 가지 일로는 지루해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음.
* 기자(飢者)에 감식(甘食). :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맛이 있음.
* 팥이 풀어져도 솥 안에 있겠지. : 어디 가봐야 숨을 곳이 없다는 말.
* 나무라도 깎아 세우고 돌이라도 다듬어 세우라 한다.  : 대신 다른 것(다른 사람)이라도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 입으로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 자식을 아주 귀하게 기름.
* 염주도 목목이요, 쇠뿔도 각각이라. : 염주도 따로따로 되어 있고 쇠뿔도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남남이라는 뜻.
* 천하에 눈썹만 빼도 똥이 나올 위인.  : 털끝 하나만 빼도 똥이 나온다는 뜻으로 더럽고 치사한 사람을 말함.
* 저런 천참만륙하여도 죄가 남을 계집. : 저런 천 번 내리찍고 만 갈래로 찢어도 죄가 남을 계집. 죄를 씻을 수 없는 사람에게 하는 악담.
*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 비밀이 없다는 뜻.
* 상덕이 있지 하덕이 있겠습니까? : 윗사람에게 덕을 입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덕을 입히지 않는다는 뜻.
* 옹이에 마디. : 옹이는 나뭇가지가 있던 곳에서 생김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을 뜻함.


5. 한자어 해설

上卷.


분정지두(憤情之頭) : 분한 김에.
장취성(將就性) : 장래성.
전혀(全一)하다 : 모든 것을 주관하다.
극성즉패(極盛則敗) : 너무 크게 성하면 얼마 안가서 망한다는 말.
근리(近理)하다 : 이치에 가깝다.
진선진미(盡善盡美) : 최고의 선과 최고의 미를 추구함.
효유(曉諭) : 알아듣도록 타이름.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꾸어 생각함.
목도(目睹)한 : 목격한.
경성(警醒)을 하여 : 정신을 차리고 깨달아.
도당록군(都堂錄君) :홍문관의 교리를 적던 벼슬.
해거(駭擧) : 괴이한 짓, 해괴한 짓.
전주(傳奏) : 어떤 사연을 다른 사람을 거쳐서 전달함.
이명기불연(以明其不然) : 사실대로 말하지 않음.
사색(辭色)이 없다 : 말에 색깔(私心)이 없다.
몰풍(沒風)스럽다 : 매정하고 매몰차다.
동동촉촉(洞洞燭燭) : 불안하여 발을 강동거리고 손을 비비며.
일호(一豪)도 : 털 한 개도, 털끝만치도.
종부(宗婦) : 종손집의 며느리.
요두전목(搖頭顚目) : 머리를 흔들고 눈알을 굴리면서 몸을 움직임. 곧 행동이 침착치 못함.
파접(罷接) : 책 읽는 모임을 파함.
만득(晩得)으로 : 늦게 얻어.
보비위(補脾胃)를 하여 : 위의 기운을 보양함. 남의 뜻을 잘 맞추어 줌.
백령백리(百怜百俐) : 무슨 일에서든지 영리함.
취모멱자(吹毛覓疵) : 털을 헤쳐 가며 그 속의 흠집을 찾음. 억지로 남의 나타나지 않는 허물을 하나하나 들추어 냄.
육례(育禮)를 행하다 : 성관계를 가지다.
첩경(捷徑) : 지름길.
미타(未妥)히 여기다 :마땅치 않게 여기다.
숙녹피(熟鹿皮)가 되다 : 사슴의 탈을 쓰다.
규각(圭角)내다 : 말이나 행동이나 뜻이 서로 맞지 않다.
기고만장(氣高萬丈) : 기세가 대단함.
속량(贖量) : 종을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함.
객고(客苦) : 객지에서 고생함.
치산(治産) : 재산을 모음.
종용(慫慂)한 시간 : 곁에서 달래고 꾀고 부추길 시간.
매삭(每朔)에 : 열흘마다.
원처(遠處)에다 :먼 곳에다.
장원(長遠)한 계교(計巧) : 길고 먼 모략.
불계(不計)더라 : 계산치 않더라.
계제(階梯) : 계단과 사다리.
칭량(稱量) : 무게를 헤아림.
혼성신성(昏性晨星) : 혼과 성의를 다하여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림.
하례배(下禮輩) : 하래배의 옛 말로 하인들을 이름. 하례배<후래배<후래새끼, 홀아배<호로배<호로새끼
천착(舛錯)하게 :심성이 좋지 않아 꼬이고 난잡스럽게.
용속(庸俗)하게 : 평범하고 속되어 이렇다 할 특징이 없게.
개구(開口)할 때는 없고 : 입 벌릴 데는 없고.
호지부지 : 흐지부지의 잘못된 표기로 원래는 휘지비지(諱之秘之)에서 왔다.
숙불환생(熟不換生) : 한 번 익힌 음식은 다시 날 것으로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이왕 장만한 음식은 먹어치울 수밖에 없다는 뜻.
즉전(卽錢) :바로 주는 돈, 급전은 급한 돈.
치지도외(置之度外) : 내버려두고 문제 삼지 않음. 그렇다 치고 모르는 척 함.

심사수란(心思愁亂) :마음이 뒤숭숭하고 어지러움
함구불설(緘口不設) : 입을 닫고 말하지 않음.
데면데면하다 : 성질이 꼼꼼하지 않고 거칠어 행동에 조심성이 없다.
소세(梳洗)를 하고 : 머리를 빗고 낯을 씻으며.
패독산(敗毒散) : 감기와 몸살을 푸는 한약.
연복(連服)을 시키다 : 계속해서 복용케 하다.
병록(病錄)을 적다 : 병의 내력을 적다.
판관사령(判官使令) : 재판관.
일분부시행(一吩咐施行) : 들은 대로 곧 거행함.
뒷수쇄(收刷) : 뒤에 거두어야 할 일.
장도감(張都監) : 중국 <수호지>에 나오는 말. 옛날 중국 장도감의 집이 풍파를 만나 큰 침해를 입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 함부로 야단을 치며 풍파를 일으키는 일.
교군(橋軍) : 가마.
교군꾼(橋軍軍) : 가마꾼. 가마를 메는 사람
여자유행(女子有行)이 원부모형제라(遠父母兄弟) : 여자의 행복은 친정 부모 형제를 멀리하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말로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음.
차탈피탈(此奪彼奪) : 차일피일.
태화탕(太和湯) : 끓는 물. 언제나 마음이 무사태평함. 싱겁고 뼈 없이 좋은 사람을 조롱하여 일컫는 말.
거거익심(去去益甚) : 점점 더 깊어진다. 갈수록 태산과 비슷한 말.
비부(婢夫) : 계집종의 지아비.
유위부족(猶爲不足)하여 :오히려 모자람.(더러운 누명을 씌우고도 모자라)
자수(自手)로 돌아가다 :자기 손으로 죽다, 자진을 하다.
노수(弩手) : 노 젓는 배의 삯. 요즘 노잣돈의 어원이 됨.
설치(雪恥)하다 : 부끄러움을 씻음. 설욕.
염반(鹽飯) : 반찬 없이 소금에 먹는 밥.
서 : 조, 서숙이라고도 함.
화수분 : 보배로운 그릇으로 한 개를 넣어두면 두 개 세 개 새끼 쳐서 끝없이 나오는 그릇.
호중(湖中) :충청남북도를 일컫는 말. 예를 들면 호서, 호남, 호중 등.
용혹무괴(容或無怪) : 혹시 그럴 수 있다 하여도 괴이할 것이 없음.
호부호모(呼父呼母) : 아버지 어머니 하며 부름.
은휘(隱諱)하다 : 감추다.
군색(窘塞)하다 : 살기가 구차함. 필요한 것이 부족하거나 없어서 딱하고 옹색함.
탐화봉접(探花蜂蝶) : 벌과 나비가 꽃을 탐함.
초로(草路) : 초행길.
소로(小路) : 좁은 길.
설왕설래(設往設來) :오락가락 갈팡질팡함.
의단(疑端) :의심스러운 일의 실마리.
피육불관(皮育不關)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음. 즉 남남을 이르는 말.
진소위(眞所謂) 전하심(前何心) 후하심(後何心)이오. : 진심으로 위하노니 앞을 봐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뒤를 봐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인적부도별유천지(人跡不到別有天地) : 사람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별난 세상.
경상(景狀) : 경치.
무인공산(無人空山) :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산중.
혼승백강(琿昇魄絳) : 혼백이 오르내리며 흩어짐.
권도(權道) :수단은 옳지 않으나 목적은 정도(正道)에 부합하는 처리방식.
자래(自來)로 : 자고이래(自故以來)로, 예부터 지금까지
조석공궤(朝夕供饋) :아침저녁으로 어른의 식사를 떠 올리다.
골육지친(骨肉之親) : 뼈와 살이 섞인 부모.
조장원(鳥葬垣) :시체를 내어다 놓아 새들이 파먹게 하는 중국의 장사의 일종.
인기세리지도(因其勢利導之) : 세상이치에 맞게 행동함.
기직일 : 기직을 매는 일, 기직은 짚으로 엮어 만든 돗자리. 지직은 틀린 말.
꿀물중으로 지내다. : 말 못하고 지내다.
호패(號牌) : 성인이 되면 허리에 차고 다니던 패, 지금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임.
별건곤(別坤乾) : 다른 땅과 하늘, 즉 별난 세상.  
초취(初娶) : 첫 부인.
방돈(放豚) : 제멋대로 자란 아이를 빗대어 이르는 말.
상하지분의(上下之分義) : 상하(신분의 고하)에는 나눔과 의리가 있어야 함.
패악무도(悖惡無道) : 사리에 어긋나고 흉악하여 사람다운 점이 없음.
척분(戚分) : 척(親戚)이 되는 관계.
무빙가고(無憑可考) : 사실을 증명할만한 근거가 없어 상고할 만한 것이 없음.
혈성(血誠) : 피 끓는 정성.
설분(雪憤) : 분풀이.  
살여들 : 매(棍杖)를 때리는 사람.
무호동중이작호(無虎洞中貍作虎) :호랑이 없는 동네에 이리(늑대)가 호랑이 행색을 함.
고기(顧忌)하다 : 뒷일을 염려하고 꺼림.
저사(抵死)하고 : 죽기를 각오하고
족불리지(足不履地) :발이 닿지 않을 만큼 급히 달아남.



下卷.

강잉(强仍)히 대답을 한다. : 힘주어 자신 있게 대답을 한다.
일호도 식사가 없는 : 털끝 하나 만큼도 가식이 없는.
연치(年齒) : 나이. 짐승은 이빨을 보고 나이를 판별함.
위대: 나이의 많고 적음.
단련(鍛鍊) : 달구고 두드림.
지재지삼(之再之三) : 두 번 세 번.
사구류(私拘留)하며: 개처럼 여기며
애민여자(愛民女子): 백성과 여자와 어린이를 사랑함.
작배(作配) : 남녀가 짝을 이룸, 배필을 정함.
청백미(淸白眉) : 푸른빛을 띠는 아름다운 눈.
재서열녀(再序烈女) : 시집을 두 번 가고도 열녀소리를 들음.
노주간(奴主間) : 노비와 주인 간.
곡호(曲護) : 곡비(曲庇)와 같은 말로 힘을 다하여 비호하여 줌.
불선불후(不先不後) : 앞 뒤 가리지 않고.
장파(狀罷) : 죄를 저지른 원을 감사가 임금에게 고하여 벼슬을 떼는 일.
편전같이 : 떡과 부침개처럼 마음대로. 편은 떡의 점잔한 말.
의세(倚勢)를 하여 : 의심을 하여.
내정들입 : 내정간섭.
형한양사(刑漢兩司) : 형조와 한성부에 속한 두 법관.
불문곡직(不問曲直) : 옳고 그름을 묻지 않음.
군수의 귀웅전을 뜯으며 : 군수의 밥그릇을 빼앗으려 하며.
현령(懸鈴)소리 : 기둥 같은 데 달아놓고 끈을 잡아 당겨 소리를 내어 알리던 방울. 옛날 집  밖에서 집 안의 사람을 부르던 수단.
무정지책(無情之責) : 인정머리 없이 대함.
혼뜨임 : 사람을 홀림. (순 우리말)
전인급보(傳人急報) :사람을 시켜 급하게 알림.
저서(抵死)하고 : 죽기를 각오하고.
정구지역(定求地域)을 하여 : 갈 데를 정하여.
생량(生凉) 때 : 찬 이슬 내릴 때.
생사지폐(生死之弊) : 살거나 죽거나 결판이 남.
솔권(率眷)하여 : 식솔들을 데리고.
피봉(皮封)을 보니까 : 봉투를 찢어 보니까.
공초(供招)를 받을 터이다 : 대대로 죄가 따라다닐 것이다.
노평(老平)하나를 : 늙은 평민 하나를.
명정지하(明政之下) : 밝고 명쾌한 정치 아래에.
풍편(風便)으로 듣자온 즉 : 돌아다니는 말에 의하면.
겁어위풍(怯於威風)하여 : 겁을 모르고 기세가 등등하여.
외타점(外打點)하여 : 눈에 보이게 점을 찍어.
불고염치(不告廉恥) : 염치 불구하고.
낯바대기 : 얼굴을 깎아내려 하는 말 경기 북부 지방의 사투리.
둔사(遁辭)로 : 얼 띤 말로. 떠듬떠듬.
폭백(暴白) : 자백을 쏟아놓음.
부동(附同)을 하여 :附和雷同 하여 부화뇌동은 자기주장 없이 무조건 따라감.
무인공산 소로(無人空山 小路)에다 : 아무도 없는 산중 좁은 길에다.
유술(柔術) : 유도.
격검(擊劍) : 검도.
불폐풍우(不弊風雨)하고 : 바람과 비를 무릅쓰고.
재하자(在下子)되어서는 : 하인 된 도리로는.
여반장(如反掌)이요 : 손바닥 뒤집기요.
지빈무의(至貧無衣)하여 : 너무 가난하여 옷 한 벌 없이.
객지에서 서설을 한다하니 범백사가 여북 군색하겠소 : 객지에서 서리와 눈을 맞이한다 하니 모든 일이 얼마니 궁색하겠소.
네뚜리로 알고 :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소부지(無所不地)하여 :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
얼레발을 치며 : 소란스럽게 떠들며.
무두무미(無頭無未)히 : 머리도 꼬리도 없이. 즉 아무 생각 없이.
정장(呈狀) : 소장(訴狀)을 관청에다 바침.
낙송(落訟)하여 : 송사(訟事)에서 져.
근리(近理)치 아니하여 : 이치에 맞지 않아.
거미기에 들었던 : 시장기가 들었던, 또는 해가 질 무렵에.
심복지인(心腹之人) : 믿는 신하, 부하.
표표(表表)한 기상으로 : 눈에 띄게 잘 생긴 얼굴로.
천참만륙(天塹萬戮) : 천 번 참수하고 만 갈래로 찢음.
면면상고(面面相顧)하다가 : 서로 쳐다보며 말없이 원망하다가.
용혹무괴(容或無怪) :혹시 그럴 수 있다 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음.
한미(寒微)함 : 구차하고 지체가 변변치 못함.
기출(己出) : 자기가 낳은 자녀.
골육(骨肉)보다 :부모형제보다.
호아송무지(乎我訟無之) : 무어라 송구한 말씀을 드릴 수 없거늘.
구규(舊規) : 오래된 규범.
서랑(壻郞) : 동서와 신랑.
일조일석(一鳥一石) : 돌 한 개를 던저 새 한 마리를 잡음.
백골난망(白骨難亡) : 은혜를 죽어 백골이 되어도 잊지 않는다는 말.
군도(軍刀)소리 : 군인들이 칼을 차고 다녀서 나는 소리.
드난을 하고 : 들어갔다 나갔다 하고.
민자건(閔子騫) : 논어에 나오는 사람. 공자보다 15살 연하인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손  (損)이고 자는 자건(子蹇)이다. 공자가 매우 사랑하던 제자 민자건은 효자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계모였는데 계모는 자기가 낳은 아들 둘에게는 극진한 반면 민자건에게는 혹독했다. 아버지가 밖에 나갈 일이 있어 민자건에게 수레를 몰게 하였는데 몹시 추운 겨울이라 수레를 잡고 있는 손이 떨려 수레를 몇 차례 놓쳤다고. 아버지는 이상히 여겨 민자건의 옷을 만져보니 속이 짚으로 채워져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계모소생의 두 아들을 불러놓고 옷 속을 살펴보니 따뜻한 솜으로 채워져 있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계모를 불러놓고 호되게 꾸짖으며 내쫓으려 하였다. 이에 민자건은 아버님을 만류하며 “어머님이 계시면 저만 고생하면 되지만 어머님이 쫓겨나시면 세 아들이 모두 헐벗게 됩니다.” 라며 만류하였다. 이에 아버지는 차마 쫓아 내지 못하고 계모도 민자건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다시는 차별하지 않았다고 한다.
살보다 빠른 : 화살보다 빠른.
기선(汽船) : 기적을 울리며 들어오는 큰 배.
낙역부절(落役不切) : 연락이 끊어짐.
대서특서(大書特書) : 큰 글씨로 특별히 씀.
필유곡절(必有曲折) :반드시 곡절이 있음.
편발(編髮) 때에 : 시집갈 무렵. 또는 시집가려고 머리를 따는 일.
거거익심(去去益甚)하여 : 점점 더 심하여
엄적(掩迹)을 하려고 : 잘못된 흔적을 가려 덮으려고.
세세 명대가(歲歲 明代家) : 대대로 이름난 큰 집안으로.
불공대천지심수(不共戴天地深讐) : 등을 마주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이 아는 깊은 원수지간.
일편지언(一偏之言) : 두 편 중에 한 쪽으로 쏠린 말.
압상훈령(押上訓令) : 조사하여 올리라는 상부의 명령.
요처(妖妻) : 간사한 마누라.
갑진시월지변(甲辰十月之辨) : 1904년(광무 8년)에 동학신도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추진된 근대화운동. 같은 해 2월에 일본은 한국 및 만주에 대한 이해관계로 우리 강토에서 러일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때 일본에 있던 손병희(孫秉熙)는 동학의 제3대 교주로서 조국의 정세에 깊은 관심과 반응을 보였다. 1904년 6월 24일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동학신도의 활동이 활발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손병희가 일본에서 국내외 신도들에게 재빨리 지령을 내려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같은 해 4월부터 동학신도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동학의 민회운동(民會運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 민회운동은 사회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사회를 개혁해나가는 운동이었다. 강령은 1.황실을 존중하고 독립기초를 공고히 할 것, 2.정부를 개선할 것. 3. 군정, 재정을 정리할 것. 4.인민의 생명 및 재산을 보호할 것. 등이다.
백사지(白沙地) : 모래밭, 백사장
구명도생(苟命徒生) : 근근이 목숨만 부지함.
여출일구(如出一口) : 나갈 곳은 한 군데, 즉 방법은 한 가지란 뜻.
적악(積惡)하고 : 남에게 악하게 하고, (반대말) 적선하고.
허신(許身) : 남녀가 몸을 허락함.
제 낭택(郎宅)만 채우고 : 제 친정만 채우고, 제 친정으로 빼돌렸다는 뜻.
노류장화(路柳墻花) :길에 버드나무를 심고 담장에 장미를 심음. 곧 집 안팎을 가꿈.
반자 : 천장.
수인사 : 악수.
백옥무하(白玉無瑕) : 백옥처럼 희고 하자가 없는.
요얼(妖孼) : 요사스런 귀신.
화란동거(禍亂同居) : 화(禍)나 난리와 함께 삶. 즉 근심마를 날이 없다는 뜻.


6. 소설에 나타나는 당시 생활상과 공간적 배경

(1) 생활상
  “분홍적삼에 반물베치마를 강둥하게 입고 그 의에 노랑 행주치마를 바싹 눌러 띤 계집아이가 머리에 지삿갓을 쓰고 한 손에는 짚신을 벗어들고”

- 하인 은례의 의복으로 당시 여자 하인은 분홍적삼, 반물베치마, 노랑행주치마, 지삿갓(종이로 만든 삿갓), 짚신 등의 의복을 입었음.

  “안방문 열리는 소리가 덜컥 나더니, 한산세저(韓山細苧) 다홍치마에 황관사 께끼적삼을 입은 열 두어 살 가량쯤 되어 보이는 색시아이가 대청마루로 똥똥 건너오더니”
- 당시 부자의 아이들은 한산모시에 황관사로 만든 께끼적삼을 입었던 것으로 보아 서울사람들의 생활은 넉넉하게 보인다.

  “한 손에는 여러 가지 화초 모종을 들고 삼청동 개천 언덕 위 남향 기와집으로 들어가 건너방 뒤꼍으로 돌아가며…”
- 가내에서 화초를 심음, 당시 서울의 양반집은 기와집이 주를 이루었음.

  “바느질을 바느질고리에 첩첨접첨 접어놓고”
- 여인들은 주로 바느질을 하였음.

“구씨가 먹던 담배를 툭툭 떨어버리고 의자에 의지하여 소설책을 펴 들고 소리 없이 두어 장 보다가 손예 들었던 책을 스르르 힘없이 떨어뜨리고 잠이 들어 토를 고는지라”
- 여인네들도 곰방대나 긴 담뱃대에 담배를 피웠음. 소설책 읽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음.

  “간수라도 먹고 죽을 터이야요.”
- 죽음의 수단으로 두부를 만드는 간수를 먹기도 하였음.

  날마다 전백(錢百)씩이나 착실히 벌어 지내는 놈이 그렇게 여러 날 장사를 못하면 남의 월수(月收), 일수(日收)는 무엇으로 물어가고 처가속은 무엇으로 먹여 살리잔 말이냐고, 바로 마님께서 넉넉히 처분을 하셔서 전만이나 행하를 하신다면 모르거니와…
- 월수, 일수 등의 고리대금업이 성했음.

  “그러고 보면 다른 것들 눈에 띄우기도 쉽고 장황스럽기도 한데, 내 친필로 성사 후 일만 냥 출급이라는 표를 써 줄 것이니 갖다 주려무나”
“에그 망측스러워라. 마님께서 아랫것들에게 수표가 다 무엇입니까?”
_ 개인이 수표를 발행하는 제도도 있었음.

  추월이가 즉시 제 오라비를 가보고 이르기를
  “오라버니 그까짓 권련장사를 고만두고 이번 일만 잘 보아. 그리면 한 번 수가 날 터이니 아무쪼록 힘써 잘 알아보고 오시오.”
- 당시 담배가 들어와 일반인들이 담배를 피웠고 권련(가치담배)를 말아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음.




  “제 집과 통호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허리의 호패(號牌)를 떼어주며
- 1900년대만 하더라도 남자들은 호패를 차고 다녔음. 號牌(O) 戶牌(O) 둘 다 쓰임.


(2) 공간적 배경

  친정으로 내려가는 것이 다 무엇이냐, 전모 구두쇠가 교군을 메고 자꾸 어느 산골로만 데리고 가기로 내가 묻기를 충청도로 가자면 종작이강을 건너야 할 텐데…
- 동작이강은 동작동 쪽에 있는 샛강을 말함.

  내외가 모정 위에서 나란히 앉아 장안을 내려다보니 만호(萬戶), 천문(千門)에 등불은 휘황하고 남촌(南村), 북리(北里)에 거성은 낙역한데 비 끝에 잦은 안개가 목멱산 중허리로 한일(一)로 그은 듯이 띠었더라.
- 서울 장안은 만호 천문에 등불의 휘황하였고 남촌에서 북리로 이어지는 큰 성은 끝도 없이 이어졌으며 목멱산(지금의 남산)에는 안개가 띠를 둘렀다.

  양반이 창피하게 왕십리 똥거름장사 딸더러
- 왕십리엔 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음

  경인전차시간을 대어가느라고 상오 여섯시 이른 아침밥을 먹고
- 서울과 인천 사이엔 기차가 다녔음.

  인정 없는 인력거꾼이 앞으로 수굿하고 겅둥겅둥 뛰어 순식간에 남대문밖 정거장에 왔더라. 살이 시위를 떠나며 과녁에까지 가는 것은 면치 못할 사세라, 경현이가 인력거에서 내려 치차를 한 번 타매 인천 항구에 와 벌써 내렸고 항구에서 윤선(輪船)을 한 번 타매 하관에 와 벌써 내렸고…
- 당시 양반들은 인력거를 타고 다녔고 남대문 밖에는 인천으로 가는 기차가 다녔음. 그리고 일본으로 가는 수단으로는 순환여객선을 타고 다녔음.

  추월이 오라비는 안동 네거리에서 담배장사 하는 홍갑이라.
- 안동은 지금의 안국동임

  “어머니 아버지께서 호중(湖中)에 가 계시니까 어서 가 뵈오려고 그래요.”
- 호중은 충청도를 말함. 호남, 호서 등. 여기서 호는 호수를 말함.

  “저 물 건너 감은돌이랍니다.”
- 감은돌은 고인돌의 고어 형식이라 하는 설도 있고 돌이 검다는 뜻에서 왔다는 설도 있는데 마포를 말한다.

  사면 연비를 하여 새문안에서 유기전 차인 냉 팔십 원은 마님께 드리고 이십 원은 중비로 없어졌는데…
- 새문안은 광화문임, 새로 문인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



7. 이 소설에 나타나는 신분타파 사상

  박씨부인은 노좌수의 은덕을 못내 사례하고 인하여 수양딸 되기를 원하니, 노좌수가 자기 처지의 한미(寒微)함을 말하고 재삼 불가하다 하나, 박씨는 한사코 딸이 되기를 자원하여 좌수 내외에게 부모의 예로 뵈옵는지라, 좌수 내외가 할 일 없이 허락하니
- 노좌수는 본래 평민으로 천민인 은례와는 부모자식처럼 지냈기에 노좌수 부부에게 딸이 되고저 함.

  박씨가 또 은례를 불러 이르는 말이라.
  “이애, 은례야. 너는 나에게 골육보다 더한 은인이라. 예전에는 노주(奴主)계급으로 지냈거니와 어찌 은인을 그같이 대우할 수가 있느냐. 오늘부터 네가 내 아우가 되어라.”
  은례가 깜짝 놀라며
  “아씨께서는 천만부당한 분부를 하나이다. 소비(小婢)가 용렬하온 탓으로 아씨께서 이처럼 고생하신 것도 하정의 호아송무아지하옵거든, 더구나 은인이라 분부를 하옵시고 또한 아우가 된다 하시니 소비가 바로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외람히 그 분부는 봉행치 못하겠나이다.”
  박씨가 다시 은례의 손목을 잡으며
  “이애, 그렇지 아니하다. 너는 어찌하여 나의 하인이 되었고, 나는 어찌하여 너의 상전이 되었는지 그는 다 일시 지난 일이라 다시 개론할 바 아닌 즉, 지금 와서는 너와 나 사이에 정의로만 말할 것이요. 또 한 가지 그렇지 아니한 것이 있으니 나를 죽을 땅에서 구제하시던 차두형 씨는 곧 나의 오라버니니라. 오라버니의 아내는 곧 너인 즉, 나와 형제의 항렬이 분명한지라. 어찌 일시 상하지분을 고집하여 하늘이 정하신 윤리를 위반하며, 너의 수양보모 되시는 이 댁 주인어른은 또 나를 살러주신 터인 즉, 나를 낳으신 이도 부모요, 나를 살리신 이도 부모라. 그리고 보면 한 부모를 같이 섬기게 된 터에 어찌 형제 되기를 싫다 하느뇨? 쓸데없는 고집 말고 나의 말을 좇을지어다.”
  은례가 하릴없이,
  “황감하오나 분부가 이 같사오니 종금 이후로 아씨를 형님으로 섬기오리다.”
- 은례는 천민, 박씨부인은 양반으로 서로 신분에 관여치 않고 형제의 연을 맺음.

  하고 그 연유를 노 좌수에게 고하니 좌수 내외가 기꺼움을 이기지 못하여 즉시 잔치를 베풀어 두형과 은례를 정식으로 성혼케 한 후, 각기 잔을 들어 노 좌수 내외의 백세 향수를 축수할 새,
-  두형은 평민, 은례는 천민으로 부부가 되어 결혼식을 올리고 노좌수의 사위와 딸이 되기로 함과 동시에 박씨부인마저 딸로 삼음.


  춘영이가 잔을 받들고 자리 앞에 꿇어앉으며 노좌수를 향하여,
  “시생은 일찍이 부모가 하세(下世)하시매 고혈한 단신이, 천지의 무너진 한이 항상 가슴에 서리어 있사오니 만일 미거함을 혐의치 아니하시면 오늘부터 양위분을 부모로 섬기고자 하나이다.”
  노좌수 : “그는 만만 불가하온 말씀인가 하나니, 당신은 세사 사족(士族)으로 이 시골에서 모두 우러러보는 처지시고, 이 늙은이는 누대 이속(吏屬)으로 향족지위에 지나지 못하나니 어찌 감히 부자의 의를 정하리오까?”
  갈춘영 : “이는 소생을 의대하옵시는 말씀이라. 어찌 부패한 규규로 인하여 진정한 정의를 막으시나이까? 오늘이 이 좌석으로 말씀하오면 영양(令孃) 형제와 서랑(壻郞)이 회집하여 변시 가족이 모인 자리어늘, 홀로 소생을 객(객)으로 의대하옵시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오리까?”
  노좌수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가 어찌 그대를 의대하리요. 나로 인하여 명분이 괴패할까 저어함이러니, 그대가 이다지 말을 하니 다시 고집치 아니하고 피차에 좋도록 할 것이니, 나의 외람됨은 부디 개의치 말으오.”
  노좌수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니 춘영은 손에 들었던 잔을 공손히 노좌수에게 올리고 부친 뵈옵는 예로 꿇어 절을 하니, 만좌가 모두 기꺼운 웃음을 마지아니하며

- 갈춘영과 노좌수는 서로 평민출신인지만, 부자의 연을 맺음으로서, 은례, 박씨 등과 가족관계를 맺음.


  이웃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모두 입에 침이 없이 말하기를.
  “에그, 좌수님은 어쩌면 복이 저리 좋으신가? 슬하에 일 점 혈육이 없어 날로 한탄하시더니 일조일석에 그림 같은 따님 두 분과 단아한 사위와 준수한 아드님이 생기셨네. 아무리 수양따님 수양아들이라도 저렇게 잘 둘 지경이면 기출(己出)이 아니면 일호나 섭섭할 것이 무엇이 있나?”
- 은례와 두형 부부, 박씨, 그리고 갈춘영까지 모두가 노좌수 부부를 부모로 모시고 부모자식의 연을 맺고 이웃사람들이 칭찬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은연중에 긍정하여 줌.


8. 결론
  이상에서처럼 필자는 동농 선생의 소설「봉선화」를 면밀히 살펴보니 봉건사화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말투, 그리고 언어의 사용 폭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이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신분타파사상’이며 이를 조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몇 가지의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첫째, 서울의 배경은 매우 윤택하여 만호 천문에 불빛이 휘황하고 기와집을 짓고 살았으며 전차와 기차가 다녔고 아낙들은 가마를 타고 다녔던 것을 알 수 있다. 한산모시는 당시에도 유명한 특산품이었고,  천민 평민들은 주로 짚신을 신고 다녔으며, 아낙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콩기름을 먹인 종이로 만든 지갓을 우산 대신 쓴 것으로 보인다.
  둘째, 길가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담장에 장미를 심으며 뜰 안에 꽃을 심어 집 안팎을 가꾸기도 하였고, 양반집 아낙들은 소일거리로 주로 바느질을 하거나 소설책을 읽었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엄을 나타내기도 했던 모양이다. 서민사이에서는 일수, 월수 등의 고리대금업이 성행하였고, 지금처럼 개인이 수표를 발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릇된 생각은 사람을 잡아다 팔아먹을 수 있다는 데 심히 개탄과 우려를 함께 보낸다.
  셋째, 이 소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양반과 평민 천민 등 신분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지만, 이 소설이 나올 시기에는 그러한 계급이 무너지고 있었고, 은례와 박씨부인이 형제의 연을 맺고, 노좌수와 양반집 규수 박씨부인이 부모자식의 연을 맺는 등, 신분 지휘의 고하보다는 정(情)이나 의리가 중요시되는 사회로 옮아가고 있음이 고무적이다.
  넷째,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면치 못할 만고의 진리지만 하나같이 내용이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전처럼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 결말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아직 고대소설의 티를 벗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다섯째, 현대 소설은 인간이 사건을 해결해주지만 고대 소설은 인간이 아닌 전혀 색다른 구조자가 나와 사건을 해결한다.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 점이 좀 안타깝다. 심청전과 장화홍련전에서 주인공이 물에 빠졌는데 연꽃으로 환생한다든지, 콩쥐팥쥐전에서 잔치에 가야하는 콩쥐에게 계모가 마당 한 가득 벼를 찧으라고 하지만 참새 떼가 날아와 볍씨를 다 까준다거나,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다 부으라고 시켰을 때 두껍이가 나타나 등을 받쳐주어 물을 길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여승지 집에서 쫓겨나 친정으로 향하던 박씨가  잠시 교군꾼들이 막걸리를 먹으로 주막으로 간 사이 새 한 마리가 박씨부인을 가마 밖으로 나오게끔 유인하고 폴짝폴짝 날아가며 최가에게 박씨부인을 팔아넘기려는 구두쇠 일행을 따돌릴 수 있게 하는 과정은 고대 소설과 다를 바 없음을 지적한다.
  여섯째, 이 소설이 출판되어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나 당시 한문을 주로 쓰는 사회였으므로 굳이 시비할 필요는 없지만 소설 전체에서 주류를 이루는 한자와 한자말들은 그 독자층을 평민이나 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반이나 공부를 많이 한 독자층을 향한 소설이었음을 지적한다. 그 내용이 천민, 평민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천민, 평민이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면 그 사상이 아무리 위대해도 상대적인 효과는 반감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주었고, 몇 가지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봉선화」가 우리에게 주는 거룩한 의미는, 당시 아무도 제기하지 못하던 양반과 천민의 주종관계를 탈피하여 형제의 관계로 옮아갈 수 있다고 썼기 때문이다. 양반출신 박씨가 평민 노좌수 부부를 부모로 모실 수 있다고 썼기 때문이다. 신분을 철폐하고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사람으로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이처럼 평등한 사회를 주장한 동농의 정신이 이제 점점 더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 새로운 주종관계가 성립되어가는 현대사회, 노동자(勞動者)와 사용자(使用者) 간에, 특히 임금체불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한 업주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기 바란다.
양반의 신분으로,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난 이해조 선생이 이처럼 매 맞는 천민을 보고 가슴 아파했던 것은, 인신매매가 성한 사회를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백성의 아픔을 감싸 안으려고 했던 것은, 선생은 당시 최고의 엘리트로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선각자(先覺者)요 선지자(先知者)로 그러한 동농선생이 우리 포천 출신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은 자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포천사람이라면 자랑 이전에 그 분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태도부터 우선해야 한다. 이번에 「봉선화」를 읽기 위하여 우리 포천출신 작가의 흔적을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개설한 ‘함평문학관’ 사이트에 들어가서 읽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하루 빨리 <이해조문학관>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40권에 이르는 모든 소설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여러 번씩 연구되고, 모든 작품들이 홈페이지에 올려져, 읽고 싶은 사람으로 하여금 읽고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끝)

출처 : 한국스토리문인협회
글쓴이 : 김순진 원글보기
메모 : 양이 너무 많아 옮겨 놓고 조금씩 익혀야 할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