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꽃

믿음에 대하여/최문자

향기로운 재스민 2012. 9. 8.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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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최문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피가 날 때까지 믿는다.

금방 날아갈 휘발유 같은 말도 믿는다.

그녀는 낯을 가리지 않고 믿는다.

그녀는 못믿을 남자도 믿는다.

한 남자가 잘라온 다발 꽃을 믿는다.

꽃다발로 묶인 헛소리를 믿는다.

밑동은 딴 데 두고

대궁으로 걸어오는 반 토막짜리 사랑도 믿는다.

고장난 뻐꾸기시계가 4시에 정오를 알렸다.

그녀는 뻐꾸기를 믿는다.

뻐꾸기 울음과 정오 사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의 믿음은 지푸라기처럼 따스하다.

먹먹하게 가는 귀먹은

그녀의 믿음 끝에 어떤 것도 들여놓지 못한다

 

그녀는 못 뽑힌 구멍투성이다.

믿을 때마다 돋아나던 못.

못들을 껴안아야 돋아나던 믿음.  

그녀는 매일 밤 피를 닦으며 잠이 든다.

 

 

 

*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최문자 시집 중에서....)

 

 

2012. 09.08  향기로운 재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