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시집『자명한 산책』(문학과 지성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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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달랑 세 줄로 된 <삶>이란 제목의 황인숙 시다. 오래전 강금실 변호사가 법무장관시절 한 행사에서 이 시를 낭송(?)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왜 사느냐고 묻고 또 자문하는데 그 답이 ‘외상값’이다. 그렇다면 뭐지? 사는 이유가 외상값을 갚기 위해서란 말 아닌가. 누군가에 대한 빚쟁이로 사는 게 인생이라는. 그 누구는 지금도 이름 밑에 줄 그어놓은 취부 책을 손아귀에 꼭 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어머니의 외상장부에는 물론이고, 이웃들,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그들에게 아직 다 갚지 못한 부채 때문이라니. 외롭다 괴롭다 힘들다 하면서도 꾸역꾸역 뻔뻔하게 사는 이유다.
살다보면 정말 그런 순간이 있다. 지독하게 외롭고 괴로워서 미치고 팔짝 뛰기 일보 직전일 때, 그러나 미쳐지지도 않는 참혹한 지경일 때, 터지는 복장은 어쩌란 말이냐. 자초지종 누구한테 토로할 입장도 아니고, 또 하소연해 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걸 다 들어줄 사람도 없거니와, 설령 누군가 귀를 열어준다 해도 무의미하고 짜증나는 일 아니겠느냐.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그 모든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이 너만 그러겠냐 말이다. 지고 있는 빚을 갚는데도 차례 멀었는데 쌓여가는 이 누적 부채를 누가 대신 감당하고 위로하랴.
그런데 왜 시인은 다짜고짜 위협적인 목청으로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라며 소리를 높이는가, 말이다. 그건 무슨 경우이며, 왜 하필 강인가.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고 했으니 시인도 이미 강가에 몸을 부려놓은 상황일 수 있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강’이 진정 상처를 치유해주긴 할 것인가. 강은 물이 아래로 흐르면서 바위를 비켜가고 돌멩이를 닦아주고 모래를 쓰다듬으며 없는 길을 만들면서 아래로 흘러 바다로 간다.
그래, 정희성 시인도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고 했다.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면 썩은 물에도 달이 뜬다고 했다. 갠지스 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강은 사람의 가슴을 품어주고 마음의 근력을 키워준다. 그러나 기실 강이 위로가 되고 치유제가 되기 위해서는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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