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어 말년기 11년을 보낸 서울 성북동 22-1 심우장을 지난달 30일 스님과 불자들이 찾았다.(사진) 불교환경연대 대표이자 화계사 주지인 수경 스님과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탁연 스님, 대한불교청년회(대불청) 김익석 회장, 그리고 청와대불자회(청불회) 회장인 서주석 통일외교안보수석 등 10여명이었다.
이들은 심우장 안에 흉물스런 시멘트 건물이 방치돼 있는 등 제대로 복원되지도 못한 채 이 일대 재개발 등으로 자칫 더 훼손될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온 이들이었다.
이들이 먼저 들른 곳은 심우장에서 300여미터 떨어진 ‘최순우 옛집’. 국립중앙박물관 4대 관장이던 최순우가 1984년 별세할 때까지 살던 120평 대지의 한옥집이었다. 이 집은 개인에게 팔리기 직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인수한 뒤 깔끔하게 복원해 지난해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시민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곳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심우장도 작지만 정갈하고 아름다운 한옥이다. 하지만 심우장 마당엔 20~30평은 됨직한 시멘트 건물이 방치돼 있었다. 심우장엔 만해의 외동딸인 한영숙씨가 살았으나 이 집 건너편에 일본대사관저가 들어서자 “꼴 보기 싫다”며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 뒤 서울시 문화재인 심우장의 땅을 1999년 서울시가 매입했으나 시멘트 건물은 여전히 한씨 소유이며, 한 관리인 가족이 살고 있다. 서울시는 광복절이 낀 지난 8월 심우장을 ‘이달의 문화재’로 정하기도 했으나, 개방시간조차 일정치 않아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닫힌 문틈 사이로 보이는 흉물스런 시멘트 건물만 보고 되돌아서야 하는 때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더구나 이 일대는 재개발이 급물살을 타고 있어 심우장 보존 대책이 더욱 시급하다.
내셔널트러스트 회원으로 최순우 옛집의 프로그램에 참여해온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최원일 행정관은 “심우장은 문화재 가치로서 어느 곳보다 더욱 더 소중한데도 ‘최순우 옛집’ 등과 비교해볼 때, 너무할 정도로 방치되어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경 스님은 “한국 불교계의 한심스런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1919년 만해가 조선 불교청년들의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는 산실로 설립해 초대 총재를 맡았던 청불회를 현재 이끌고 있는 김익석 회장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건물 소유주와 협의 및 보상을 통해 시멘트 건물을 허물어 원래대로 복원하고 만해의 삶과 사상을 전하는 시설로 가꾸어가겠다”고 말했다. 총무원도 이를 위해 서울시 및 성북구청과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성북구청 박상준 문화재팀장도 불교계가 나선다면 구청으로서도 심우장을 보전지구로 지정해 재개발이 되더라도 심우장을 보존하고 스카이라인 등을 고려하는 방안을 강구할 뜻을 내비쳤다.
만해는 일제에 호적을 올리지 않고 배급도 받지 않은 채 이곳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살다 생을 마감했다. 당시 총독부는 이 일대 20만평을 주겠다며 회유했으나 만해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총독부의 사주를 받고 돈보따리를 들고 온 청년의 뺨을 때려 돌려보낸 일화가 전한다. 또 서로군정서 참모장을 지낸 일송 김동삼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으나 총독부의 눈이 무서워 아무도 주검을 인수해 가지 않을 때 만해가 직접 업고 와 5일장을 지낸 곳이기도 하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