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스크랩] 단체사진/ 이성목

향기로운 재스민 2013. 3. 20. 06:15

 

 

 

단체사진/ 이성목

 

나는 왜 늘 뒷줄에만 서 있었을까

누렇게 얼룩지고 빛바랜 흑백사진

눈부시게 터뜨려 주던 플래시 불빛과

좀체 터지지 않던 억지웃음들이

그땐 어쩌면 이렇게도 어정쩡한 자세였는지

앞선 자들에게 얼굴 가려지고

청춘이 반쪽으로 남은 사내

얼마나 더 오래 뒤꿈치를 들고 견뎌야만 할까

세상의 뒷줄들은

 

- 시집『남자를 주겠다』(모아드림,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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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찍는 것은 물론 찍히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아한다. 어쩌다 찍힌 사진도 한번 힐끗 보면 그게 다일뿐 애지중지하지 않아 늘 보관이 시원찮다. 나중엔 어디 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잠깐 잠깐씩 국외로 출장과 관광 목적의 여행을 다녔었지만 깔끔하게 보존된 사진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다른 이의 사진은 사람들이 갖는 호기심 수준만큼 나도 흥미롭게 본다. 그런데 내가 사진을 기피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대체로 사진 찍히는 걸 꺼려하는 사람은 피사체인 스스로가 모델로서의 '자질부족'이라 여기거나, '사진빨'이 잘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준수한 외모임에도 손사레 치는 여성들을 보는데, 그 경우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그 자신 도도한 '왕비과'의 기질 탓이리라. 물론 나는 실제로나 사진빨로나 만족할만한 사진을 얻기엔 애당초 틀린 몸이지만, 그것 말고도 사진에 취미를 갖지 못한 나름의 이유가 있긴 있다.

 

 열둘 이후 서른둘까지의 추억이 고스란히 저장된 앨범 2권을 이사과정에서 통째로 잃어버린 상실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서울 살 때였는데 생의 황금기라 할 20년간의 삶이 동공처럼 뻥 뚫려 빠져나간 이후 사진 자체가 시큰둥해졌다. 그 일이 있기 1년 전 아버지 돌아가신 뒤 유품정리를 하다가 고무줄로 칭칭 묶인 사진뭉치들로 가득한 메리야스 상자 4개를 내다버린 일이 있었다. 내가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하찮은 풍경사진이었고, 평소 '도가 넘치는' 아버지의 사진 취미를 마땅찮게 여겨오던 터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말하자면 인과응보 죄값을 받은 것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사진을 멀리 했고 타고난 숫기 없음도 한몫 거들었다. 어쩌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마지못해 뒷줄에서 '앞선 자들에게 얼굴 가려지고' '청춘이 반쪽으로 남은 사내'의 처지로 '어정쩡한 자세였다. 그러나 뒤꿈치는 들지 않았다. 오래전 삶의 중심이 변방으로 이동한 이후 생에 대한 애착이 떨어졌고, 따라서 남들에게 다부진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사정과는 상관없이 가족사진을 책상에 붙인다거나 지갑에 넣어서 보여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좋아 보였고 부럽기까지 했다. 흔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들 한다. 사진으로 남은 내 인생의 차변은 늘 불편한 진실들로 빼곡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수줍게 한 발짝 앞으로 나와야겠다. 가뜩이나 큰 얼굴 바위처럼 보이거나 말거나. 얼굴이 작게 나오길 희망하시는 분은 괜히 몸을 뒤로 빼지 말고 내 옆에 바짝 붙으시라.

 

 

권순진

 

 

The way it used to be - Engelbert Humperdinck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부드러운 노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