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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개개개개/ 변영희

향기로운 재스민 2013. 1. 23. 07:11

 

 

 

 

개개개개/ 변영희

 

네잎 클로버, 세잎 클로버에

의미를 부여한 당신

행운을 찾으며 행복을 짓밟고 있다는

토끼풀처럼 흔한 말일랑 하지 마

세잎 네잎 클로버 호주머니에 넣어둔 채

근엄한 얼굴로 말하지 말라구

차라리 아무 말 하지 마

질문 하나 할까

개개개개, 개개비소리 들려오는

갈대밭 제방을 걷다

다섯 잎 클로버를 보았어

다섯 잎 클로버가 의미하는 것은 뭐지

어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여섯, 일곱 잎은?

네잎 클로버에

탄성을 지르며 뛰어오르는 소리에 놀란 게

게걸음으로 달아나더군

제길, 탄성이라니

 

게 풀 뜯어먹는 소리 말라구? 엥?

 

- 계간『스토리문학』2012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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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버는 본래 유럽의 목초지나 개간지에서 거름에 쓰기위해 재배되던 것이 전 세계로 이식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구한말 기독교신앙과 함께 교회나 선교사 사택의 화단 관상용도로 들어와 담벼락을 넘어 야생으로 번진 것으로 짐작된다. 수로가나 집 근처 공터에 왕성한 번식력으로 퍼져나간 클로버는 개체의 크기가 작아 가축의 먹이로 이용하기에는 별 볼일이 없고, 겨우 고사리 손을 통해 사육되던 토끼의 먹이나 되어 '토끼풀'이 되었던 것이다.

 

 클로버는 성패트릭이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선교할 때, 국왕과 귀족들 앞에서 클로버의 세 잎으로 삼위일체를 비유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 클로버는 아일랜드의 국화가 되었으며, 혹자는 클로버의 세 잎을 믿음, 희망, 사랑에 비유하기도 한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은 곧 ‘행복’을 뜻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는지 세 잎 클로버의 돌연변이인 네잎 클로버를 우리는 ‘행운’이라 떠받들며 기형적으로 열망하고 있다.

 

 시인은 행운을 찾으려 곁에 널린 수많은 행복을 짓밟고 있다는 근엄한 교훈을 오히려 ‘흔한 말’이라며, 그 정도로는 성이 안 차는지 이를 나무라듯 말한다. 열일곱의 나이에 견습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자동차회사의 설립자가 된 크라이슬러도 비슷한 명언을 남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출세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회가 문을 두드릴 때 뒤뜰에 나가 네잎 클로버를 찾기 때문이다" 

 

 네잎 클로버는 세잎 클로버 약 만 개당 하나 정도라고 한다. 유럽인들도 네 번째 잎은 하느님의 은혜를 나타낸다며 우리 못지않게 좋아한다. 다섯 잎 클로버는 네 잎보다 훨씬 드물어 더 많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세계기록은 18장까지 발견되어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한다. 과연 그걸 발견한 사람은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었을까? 행운의 클로버를 찾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품을 들이는 사람들을 위해 요즘에는 유전자조작을 이용해 네잎 클로버를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장까지 생겼다.

 

 행운도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시인은 그런 세상을 ‘게걸음’ 보폭과 ‘개개비’의 목청을 빌어 조롱하고 있다. 초여름 순천만 등지의 갈대숲 사이에서 ‘개개개개’ 지저귀는 여름철새 개개비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으면서 갈대 이삭 끝에 앉아 ‘키요, 키요, 쯔끼, 쯔끼, 개, 개, 개, 개, 씨이’ 하고 되풀이하여 주절댄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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