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스크랩] 샤갈의 마을/ 김지순

향기로운 재스민 2013. 2. 4. 20:49

 

 

 

샤갈의 마을/ 김지순

 

 

아내가 결혼했다는 말에 다친 밤이야 지붕에서 나팔소리가 떨어지고 있어 또또따따 여자의 입김이 황사지수를 높이고 있어 귓속에서 사르락사르락 자막이 흘러내려 사랑해사랑해 모래알로 서걱서걱 굴러다니고 있어 한발로 녹색지붕을 밟고 다른 한발로 붉은색 지붕을 밟고 있는 두 지붕 한 여자 치마 밑까지 긴 나팔의 관을 심고 있어 햇살은 오늘도 초기화면처럼 지루해 나팔꽃 아가씨 땅속줄기 잡고 올라오는지 또또따따 나발을 불고 있어 세상은 온통 치맛바람에 시달려 녹색지붕의 벽을 바르는 붉은 치마가 보여 붉은 지붕 커튼을 치고 있는 녹색치마가 팔랑거려 큰 교회 첨탑과 길게 양쪽 지붕을 잇는 빨랫줄은 배경이야 잘못 날아온 철새 두 마리 앉아 고갤 주억거려 하나의 사랑을 반으로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또또따따 알뿌리 산술법을 복창하고 있어 모래 바람이 불어 둥근 발 여자가 부풀고 있어 모래 시간이 북동동진하고 있어 그런데 명랑한 사막을 연주하는 지붕 위의 악사는 누구야?

 

- 계간『문학마당』2009년 봄호

.......................................................

 

 지난 주말 대구예총의 ‘예술소비운동본부’에서 마련한 미술전 관람행사를 다녀왔다. 완주 모악산자락의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 전이었다. ‘2012 전북방문의해’에 맞춰 전북도가 기획한 이 블록버스터급 대형 전시회에는 그동안 12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전시된 작품 97점의 가액이 1천억 원을 넘고, 여기에 지불한 보험료만도 1억5천만 원이란다. 마네와 세잔, 엔디워홀에 이르기까지 세계미술의 거장들이 집결한 가운데서도 역시 전시회의 주인공은 피카소와 샤갈이었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서커스의 영혼’을 어설픈 눈으로 감상하는데, 한 여성 관람객이 지나가면서 “여긴 눈 내리는 마을 같은 작품은 없나보네” 그런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혹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두 문학작품과 노래로, 카페의 상호를 통해 입력된 것들이다. 정작 샤갈의 작품에는 이런 낭만적인 제목을 붙인 그림은 없다. 굳이 ‘샤갈의 마을’을 찾자면 그의 러시아 고향 마을인 '비테브스크'가 될 것이다. 유태인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거리, 성당의 종탑들이 뾰족 솟은 비테브스크는 샤갈에게 꿈같은 고향마을이었지만 그는 삶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떠나 살았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늘 고향 비테브스크가 담겨 있다. 사랑하는 ‘벨라’와의 추억이 수북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갈의 옆에서 언제나 다정한 아내 벨라는 샤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벨라를 떠나보낸 샤갈은 '평생토록 그녀는 나의 그림이었다'라고 말해 많은 여성들을 감동시킨 바 있다. 나중에 무척 지적이고 사려 깊으면서 아름다운 ‘바바’를 만나 재혼하였는데, 샤갈은 벨라를 잊지 않으면서도 바바에게 충실했다. 샤갈은 두 여인과의 사랑을 두 배로 키워나갔다.

 

 시인은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와 ‘샤갈의 마을’을 오버랩 시켜가면서 모더니즘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펼쳐보였다. “사랑이 나눠지니?”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는 남편에게 “하나를 반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두 배가 되는 게 아닐까”라고 아내는 담담하게 자기식 사랑을 말한다. 나도 ‘아내가 결혼했다’는 아주 흥미롭게 관측(?)한 영화였다.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제목부터가 그런데다가 “나 사람 있어, 결혼하고 싶어”라고 남편에게 태연히 고백하는 장면,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가 무슨 별을 따달래, 달을 따달래. 난 그냥 남편만 한 명 더 갖겠다는 것뿐인데”라고 천연덕스럽게 떼를 쓰는 장면들이 시를 읽으며 새록새록 떠오른다.

 

 시인은 영화속 대사들을 매개로 새로운 화두를 모색하고 있다. ‘두 지붕 한 여자가 치마 밑까지 긴 나팔의 관을 심고 있’는 정황에 덧붙여 ‘또또 따따 나팔을 불고 있는 지붕 위의 악사’ 두 개의 대비를 통해 미래가 점차 유목적 모계사회로 회귀해가는 환상을 그리고자 하였다. 시의 매력은 조금 난해해 보이지만 이렇듯 상상력의 복잡성과 신선한 감수성에서도 빛을 발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이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나와 있는 말씀이다.

 

 

권순진

Sunrise Sunset - Shostakovich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문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어느 시인과 나/ 김방주  (0) 2013.02.09
낙엽길/김기원  (0) 2013.02.06
희제(운초 김부용) / 관해정 해설  (0) 2013.02.04
[스크랩] 우화의 강/ 마종기  (0) 2013.02.02
[스크랩] 오즈마 캐피탈/ 송기영  (0) 2013.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