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과 나/ 김방주
문학을 30년 넘도록 끼고 살았다는 사람
포도청 앞에서 공장도 다녀보고
이것저것 가게도 식당도 해봤다지만
쫄딱 망해 다 말아먹고
한때는 노동판으로
길바닥에서 붕어빵도 팔아봤다는 그
아는 사람 만날까 눈을 최대한 가늘게 뜨진 않았을까
시장사거리 어묵장사 시절
시를 자존심의 구겨진 모조지에 함께 말아
바닥에다 패대기치진 않았을까
그래야 마땅할 것 같은데, 그는
오밤중 책 읽고 글을 쓰며
눈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오년 동안 길거리에서 시를, 시를 지었다고 한다
문학이란 자기를 곧추세우는 척추 같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일만이 사악한 마음을 구제한다고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이 세상에 늦은 나이란 없다고
나의 가장 큰 후원자는 나라고 말했던
그 시인 때문에 시방 나도 이러고 있는 것이다
새해에는 시적 자존의 깃털 몇
빳빳이 세워
한파도 무더위도
구멍 난 주머니까지도 다 막아낼 수 있기를
그를 만났던 인연의 나도 그러하기를
- 동인지『그림자는 태양을 기다리지 않는다』(문학공원,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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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은 성경뿐 아니라 톨스토이를 비롯해 여러 사람의 입에서 중언부언되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빵은 우리 식으로는 밥이 된다. 이때 밥은 그냥 밥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적이라 칭하고 물질이라 부르는 것, 없으면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의식주의 모든 것, 심지어 육욕 따위도 포함한 개념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문학이, 특히 ‘시가 밥 먹여 주느냐’는 말은 이러한 현실적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시를 도모한답시고 밥 버는 일을 등한시하는 행위나 사람에 대해 비아냥스레 쓰는 언사다. 시가 밥이 되는 시인도 얼마쯤 있기야 하겠지만, 대개는 속수무책 그 속물적 시선의 조롱을 견뎌야할 처지다.
사는 일이 팍팍할수록 사람은 본능에 충실하게 되고, 시대가 어려울수록 문학이나 철학 미학 따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고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내일 당장 먹을 게 없고 가족을 부양하기도 벅찬데 영양가 없는 시를 읽고 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몸을 써서라도 돈을 벌지’라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호의호식 안분지족하는 사람, 혹은 먹고 사는 일에 허겁지겁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체로 영양가 없는 엉뚱한 일에 매진했던 사람들에 의해 진보되었음을 환기한다면 적어도 욕들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짐작컨대 시에서 지칭한 ‘어느 시인’도 유명시인이거나 돈이 되는 시를 쓰는 사람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문학의 척추로 자신을 곧추세웠고, 부단한 시적 사유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구제하여왔음은 분명해 보인다. 시를 액세서리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로 인해 볼품없는 몸뚱어리가 우아한 거푸집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트 리프먼은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할 때,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주체적 자아이기를 포기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꼬집은 그의 한 마디는 사유의 위기를 시사하고 있다. 사유의 위기는 곧 문학의 위기다.
‘어느 시인’을 만난 인연으로 시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시를 배우게 되고, 시인이 한 명 더 늘어난다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 우리 사는 세상, 사유의 위기가 조금 줄어드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권순진
You Will Aways On My Mind / Chris De Bur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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