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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제35회 2013년 2월 25일(월)19:00 봉무공원 - 낭독시 주제: 봄비

향기로운 재스민 2013. 2. 25. 20:04

 

 

 

 

 

좋은 시 아름다운 사람

 

『시와 시와

 

제35회 달빛산책

 

 

 

 

 

*장소: 봉무공원 단산지

*일시: 2013년2월25일(월) 19:00

 

 

 

 

봄비

-주용일

 

 

밤새 누에 뽕잎 갉아먹는 소리

자다 깨어 간지러운 귀를 판다

세상 잘못 살아온 나를

어디 멀리 있는 이가 욕을 하는지

귓속 간지러움 밤새 그치지 않는다

잎에서 잎맥으로 잎줄기로 옮겨가며

점, 점, 점, 사나워지는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

내 귓속 간지러움도 달팽이관을 따라

점점 깊은 곳으로 몰려간다

세상 함부로 살아온 나를

이제는 가까이 있는 누가 욕을 하는지

뽕잎 갉아먹는 소리 갈수록 거칠어지고

자다 깨어 죄 지은 사람처럼

무릎 꿇고 앉아 간지러운 귀를 판다

 

  

 

봄비

-장인성

 

 

네가 오는구나

손에 든 초록 보따리

그게 전부 가난이라 해도

반길 수 밖에 없는

허기진 새벽

 

누이야

네 들고 온 가난을 풀어보아라

무슨 풀씨이든

이 나라 들판에 뿌려놓으면

빈 곳이야 넉넉히 가리지 않겠느냐

 

  

 

봄비는 가슴에 내리고

-목필균

 

 

그대가 보낸 편지로

겨우내 마른 가슴이 젖어든다

 

봉긋이 피어오르던 꽃눈 속에

눈물이 스며들어, 아픈 사랑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겨울 일기장 덮으며

흥건하게 적신 목련나무

환하게 꽃등 켜라고

온종일 봄비가 내린다

 

 

 

봄비, 간이역에 서는 기차처럼

 -고미경

 

 

간이역에 와 닿는

기차처럼 봄비가 오네

목을 빼고 오래도록 기다렸던

야윈 나무가 끝내는 눈시울 뜨거워져

몸마다 붉은 꽃망울 웅얼웅얼 터지네

나무의 몸과 봄비의 몸은

한나절이 지나도록

깊은 포옹을 풀지 못하네

어린 순들의 연초록 발바닥까지

스며드는 따스함으로 그렇게

천천히, 세상은 부드러워져갔네

 

숨가쁘게 달려만 가는 이들은

이런 사랑을 알지 못하리

가슴 안쪽에 간이역 하나

세우지 못한 사람은

그 누군가의 봄비가 되지 못하리

 

 

 

봄비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조름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즈러지노니!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없이 내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봄비

 -남진우

 

 

누가 구름 위에

물항아리를 올려놓았나

조용한 봄날 내 창가를 지나가는 구름

누가 구름 위의 물항아리를 기울여

내 머리맡에 물을 뿌리나

조용한 봄날 오후

내 몸을 덮고 지나가는 빗소리

졸음에 겨운 내 몸 여기저기서 싹트는 추억들

 

 

 

봄비

 -원무현

 

 

빈 들에 봄비

혈 꽉꽉 막힌 몸뚱어리에 침이 꽂히네

병든 몸이 허준을 만난 듯

저 들은 믿네 봄비의 침술능력

한 보름 잊고 지내다보면

막힌 혈 활짝활짝 열린 몸에선

쑥이니 냉이니 파릇파릇 돋을 것을 의심치 않네

나는 고것들 눈여겨 두었다가

소쿠리 가득 캐서는 데치고 무쳐서

겨우내 시달린 입 안에 소태 말끔히 씻어내야지

 

빈들에 봄비

깔끔해진 입에서 향긋한 말들이 돋아나길 고대하는 나는

온몸으로 맞이하네 은빛 강림

 

 

 

봄비

 -한옥순

 

 

약속 없이 슬그머니 찾아오던 옛날 애인 같이

그 애인하고 먹던 보드라운 국수가락 같이

그 애인하고 바라보던 자작나무 숲 같이

그 애인하고 함께 듣던 절 집 풍경 소리 같이

그 애인이 주고 간 마지막 편지 글씨체 같이

그때 그 시절을 호우시절이라고 쓴 일기장 같이

그렇게,

  

 

 

또, 봄비

-원태경

 

 

 

목마른 우리들을 위해

밤새 세상이라는 커다란 대접에 떠주시는

맑고 시원한 물 한 그릇

벌컥벌컥 마시다 체하지 말라고

 

후후, 불면서

우물우물 꼭꼭 씹어가며

종일 천천히 즐기라고

 

파릇파릇한 봄싹을

동동 띄워서

 

 

 

출처 : 시와 시와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메모 : 참석하지 못하는 대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