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필(足筆)
이원규
노숙자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볼 수 없으리
바람 불면
투명한 바람의 이불을 덮고
꽃이 피면 파르르
꽃잎 위에 무정처의 숙박계를 쓰고
세상 도처의 저 꽃들은
슬픈 나의 여인숙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
겨우 알 수 있으리
발바닥이 곧 날개이자
한 자루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을
문학 무크 창간호『 시에 티카 』, 〈시와에세이 〉에서
사람은, 극단적인 생각의 오류는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오류의 생각이 어느 관점에서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원규 시인의 「 족필 」을 읽으면서 노숙자와 풀꽃 사이에 형성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노숙자만이 필생의 붓 한 자루 갖고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나 생존의 상태에서 동등한 목숨을 갖고 있다. 노숙자만이 자기 고행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노숙자는 고행을 스스로 모르고, 어쩔 수 없는 고행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선택이 여지가 없다는 것, 입지가 없다는 것, 그것 만큼 큰 고행은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의 노숙자인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 위한 피나는 몸부림은 전체 인구의 절반은 생활에 젖어 있을 것이다. 만사, 자기수행의 몸덩어리가 내 몸이 아니라 느낄 때, 내 몸의 아픔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풀꽃이 풀꽃으로 피고 지는 것, 숙명이리라. 이 세상 누가 내 목숨의 길을 만들 수 없다는 것 알면 모든 사람은 족필을 남기는 것이다. 그 족필을 고행으로 삼아 더 맑은 하늘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한결추천시메일-1909(이원규 시인作 /족필)|작성자 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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