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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시간의 저 쪽 뒷문/이영춘

향기로운 재스민 2014. 1. 7. 06:42

 

 

 

들풀

 

이영춘

 

 

세상이 싫고 괴로운 날은

바람 센 언덕을 가 보아라

들풀들이 온기종기 모여

가슴 떨고 있는 언덕을

 

 

굳이 거실이라든가

식탁이라는 문명어가 없어도

이슬처럼 해맑게 살아가는

늪지의 뿌리들

때로는 비 오는 날 헐벗은 언덕에

알몸으로 누워도

천지에 오히려 부끄럼 없는

샛별 같은 마음들

 

 

세상이 싫고 괴로운 날은

늪지의 마을을 가 보아라

내 가진 것들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한 순간.

 

 

*스토리문학 85 에서  메인 스토리

 

 춘천의 대표 여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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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저 쪽 뒷문

 

 

어머니 요앙원에 맡기고 돌아오던 날

천 길 돌덩이가 가슴을 누른다

 

 

"내가 왜 자식이 없냐!" 절규 같은 그 목소리

돌아서는 발길에 칭칭 감겨 돌덩이가 되는데

 

 

한때 푸르르던 날 실타래처럼 풀려

아득한 시간 저 쪽, 어머니 시간 속으로

내 살처럼 키운 아이들이 나를 밀어 넣는다면

 

 

아, 아득한 절망 그 절벽...

나는 꺽꺽 목 꺾인 짐승으로 운다

 

 

아, 어찌해야 하나

은빛 바람결들이 은빛 물고기들을 싣고 와

한 트럭 부려 놓고 가는 저 언덕배기 집

생의 유폐된 시간의 목숨들을

 

 

어머니의 시간 저쪽 뒷문이 자꾸

관절 꺾인 무릎으로 나를 끌어당기는데

 

  _2011 <시와사람>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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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특집 자선 대표시

컵라면

오글오글한
머리들이 모여 있다
혹은 웃는 듯도 하고
혹은 우는 듯도 한
그 얼굴들은
마치 내 동생이
직공 생활을 하면서
야간 학교를 마치던
마산 어느 공단의 여공들 얼굴 같아서
감히 나는
컵라면을 먹을 때마다
목줄기가 배배 꼬여진다
마치 내 동생의
피와 살이
내 건강한 폐부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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