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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가을/이성복

향기로운 재스민 2014. 1. 21. 07:39

 


Ballad No.1 in G Minor Op.23

 

 

 

그해가을/  이성복

 

 

 그해 가을 나는 아무에게도 편지 보내지 않았지만
늙어 군인 간 친구의 편지 몇 통을 받았다 세상 나무들은
어김없이 동시에 물들었고 풀빛을 지우며 집들은 언덕을
뻗어나가 하늘에 이르렀다 그해 가을 제주산 5년생 말은
제 주인에게 대드는 자가용 운전사를 물어뜯었고 어느
유명 작가는 남미기행문을 연재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여기 계실 줄 몰랐어요
그해 가을 소꿉장난은 국산영화보다 시들했으며 길게
하품하는 입은 더 깊고 울창했다 깃발을 올리거나 내릴
때마다 말뚝처럼 사람들은 든든하게 박혔지만 햄머
휘두르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 그해 가을 모래내 앞
샛강에 젊은 뱀장어가 떠오를 때 파헤쳐진 샛강도 둥둥
떠올랐고 고가도로 공사장의 한 사내는 새 깃털과 같은
속도로 떨어져내렸다 그해 가을 개들이 털갈이할 때
지난 여름 번데기 사 먹고 죽은 아이들의 어머니는 후미진
골목길을 서성이고 실성한 늙은이와 천부의 백치는
인골로 만든 피리를 불며 밀교승이 되어 돌아왔고 내가
만날 시간을 정하려 할 때 그 여자는 침을 뱉고 돌아섰다
아버지, 새벽에 나가 꿈 속에 돌아오던 아버지,
여기 묻혀 있을 줄이야
그해 가을 나는 세상에서 재미 못 봤다는 투의 말버릇은
버리기로 결심했지만 이 결심도 농담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떨어진 은행잎이나 나둥그러진 매미를 주워
성냥갑 속에 모아두고 나도 누이도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 그해 가을 나는 어떤 가을도 그해의 것이
아님을 알았으며 아무것도 미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비하시키지도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그해 가을 나는 살아 온 날들과 살아 갈 날들을 다 살아
버렸지만 벽에 맺힌 물방울 같은 또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가 흩어지기 전까지 세상 모든 눈들이 감기지
않을 것을 나는 알았고 그래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이
이장을 끝내고 소풍 갈 준비를 하는 것을 이해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그해 가을. 가면 뒤의 얼굴은 가면이었다

 

 

* 다시 읽어보는 시.......

 

정든 유곽에서

 

 

 

 

 

 

누이가 듣는 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南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雜草 돋아나는데, 그 南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와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地下의 잠, 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伐木

 당한 女子의 반복되는 臨終, 病을 돌보던

 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者는 누구인가

 日本인가, 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와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裸身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 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昇天하면

 나는 죽음으로 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디마다 더욱

 붉어지는 呻吟,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戰爭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革命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行進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祖國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後世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口味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韓族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