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d In The Clowns
그래서, 그리고?/ 이상훈
복싱을 하며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고 하자 웬 주먹질이냐고 했다 제대 후 고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자 공장에나 다니지 뭔 공부냐고 했다 6개월 만에 시험에 합격하자 저 놈이 머리는 좀 되는 놈이라고 했다 연극을 시작하자 밥 빌어먹기도 힘든데 웬 연극질이냐고 했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자 넌 연기 체질이라고 했다 연극을 그만두고 신학 대학에 간다고 하자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다고 했다 졸업 후 호떡 장사를 하자 그럼 그렇지 니가 무슨 목사가 되겠냐고 했다 목사가 되어 거리와 전철에서 설교를 하자 돈키호테 같은 놈이라고 했다 십년 후 무신론자가 되어 김밥장사를 하자 그냥 이상한 놈이라고 했다 시를 쓴다고 하자 연구대상이라며 시집이나 하나 달라고 했다
- 시집『가재가 부르는 노래』(namebooks,2014)
나비야 나비야/ 이상훈
키가 큰 기린 우체부가 솟을대문 지붕 위에 편지 한 통을 놓고 갔다
소인국 나라의 가난한 시인 달팽이님 귀하 앞으로 배달된 편지는
나비 나라 별정우체국장의 소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외출 시 자물쇠를 걸고 문패를 바꿔달고 나가는 습관을 가진
집주인 달팽이는 오랫동안 집을 비워두고 문상을 갔다
수취인 부재중으로 되돌아온 편지에는
전국 나비연합회 원로 일동 올림이라고 적혀있었다
약도가 그려진 부고장을 한 장 달랑 들고 장례식장에 갔다
상주는 슬피 울면서 망자는 3년 전에 이미 출상했다고 말했다
물어물어 무덤까지 찾아가는데 또 3년이 걸렸다
달팽이 영감은 무덤의 높이를 재기 위해서
양손에 수평과 먹줄을 들고 꼬리에 그림쇠를 묶고서
현장을 답사하고 도형을 측정하는데
그가 걸은 걸음은 무려 1억3천5백 리 75보 였다고 말했다
*이상훈 시인을 찾아보다가.....'그래서, 그리고' 를 읽고
2014. 03. 01. 향기로운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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