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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체면/김종목 (1938 _ )을 읽고 나서/향기로운 재스민

향기로운 재스민 2014. 2. 28. 07:02

 

Natura - Mar Profundo

 

 

 

 

 

 

 

가장의 체면 

김종목

 

 

가만히 누워 있어도 욕먹는 세상이다

무언가 몸을 움직여 돈푼이라도 벌어 와서

식솔들의 목구멍에 밥이라도 떠 먹여야 할 텐데

꿈이나 잔뜩 베갯머리에 쌓아놓고 누웠으면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마누라 잔소리가 바가지로 쏟아지고

아이들의 눈빛이 번쩍번쩍 칼날이다

가장은 잠시도 등 붙이고 누워 있으면 안 된다

죽자 사자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고

몸이 가루가  될지라도 돈을 벌어 와야 가장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 가장에서 밀려나고

남편이나 아버지라는 이름도 위태위태해진다

발바닥이 불바닥이 되도록 움직여야 하고

체면이고 위신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을 향해 하이에나처럼 돌진해야 한다

그리하여 푸른 배춧잎을 물고 와 방바닥에

주르륵 쏟아 놓고 그  위에 누워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장의 체면이 서고

남편과 아버지의 끗발이 선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욕을 먹지 않으려면

돈 냄새 풀풀 나는 배춧잎 위에

떡하니 누워 있어야 한다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226)  에서....

 

 

"네 아버지는 너보다 어릴 때 결혼하고

너를 낳았다. 스물일곱살, 그 어린 사람하테 돈 벌어오라고,

내 인생을 책임지라고 몰아세운 걸 생각하면,

너무 안됐고 미안하다."  한 친구가 미혼인 아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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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의 체면을 읽고/향기로운 재스민

 

나는 오늘 가장은 아니면서도 어쩐지 이 시를 읽고나니

주부로서 좀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17년전 설마 무슨 특별한 병이 있으려나 하면서

몸이 옆으로 기울며 갑자기 어눌해지는 가장인 짝의 말투로

종합병원 응급실 문을 급히 두드리던 때를 생각나게 한다

며칠간의 병원 입원실에서도

가장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화번호 숫자는 말하지 못해도

전화 번호를 손가락 기억만으로 더듬거리며 누르고는

일을 처리하던 모습은

그후 나도 2년은 반가장인척 같이 사무실에 나가 도왔지만.

 

 

나는 이제 푸른  배추잎은 아니지만

어떠한 일이 다시 내 앞에 생긴다 하드라도

자신을 다스려 나갈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을 구하려고

글을 쓰는, 시를 쓰는 사람이 되려고 공부를 하려고요

가끔 몇시간씩 근처에 없드라도

덜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졌으면 싶어서.......

 

 

 

2014. 02. 28   향기로운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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