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라디오에서/ 이규리
어느 날 라디오에서 유명 작곡가들의 미완성작만을 모아 틀어주고 있었다 생이나 죽음도 결국 미완이지만, 어느 날 나 죽은 뒤 누군가가 노트 뒤지고 컴퓨터 찾아내어 일기나 메모를 공개한다면, 미처 못 마치고 멈춘 동작들 보여준다면 어떨까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기록들, 한 번도 통곡한 적 없는 고백들,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없었다 네게 불러주기 위해 노래방에서 3시간이나 연습했지만 불러주지 못한 노래처럼 삶은 부풀어 오른 물집일 뿐이다 그리고 날아간 나뭇잎은 나무의 것이 아니다
나 죽은 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나도 알지 못하는 내 수치가 흘러나온다면, 나 돌아오고 싶을까 헛간에 스미는 뱀처럼 저 몸 빌어서라도 다시 오고 싶을까 오면 안 된다 애면글면 아무리 불러도 돌아오면 안 된다 이미 나를 떠난 노래들, 제가 먼저 놀란다
- 계간 《문학마당》2011년 여름호
* 이규리 시인의 '어느 날 라디오에서'는 처음 읽는 시 이라서 가져옴.
** 언젠일지 모르는 그 날이 오면 ......
2014. 05. 02 향기로운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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